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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햇살이 초여름 날씨처럼 눈부시던 날 인천시 연수구 선학동 주민자치센터를 찾았다. 이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전 10~12시에 다문화 가정 외국인을 위한 한글교실이 열린다. 한국 생활 12년차인 필리핀인 벨(46)씨는 한글교실의 학생이다. 한국에서 살아온 햇수만큼 말하는데 불편함은 없지만 글쓰기가 아직도 어렵게만 느껴진다.

 

필리핀으로 일 때문에 왔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인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분명한 인천시민인 그녀는 현재 주부로서 연수구 선학동에 거주하고 있다. 2남 2녀의 어머니인 벨씨는 한국에서 살면서 뚜렷한 사계절을 무척 좋아한다.

 

"한국은 예쁜 꽃들도 많고 나무들도 많아요. 계절이 다양해서 좋아요."

 

그녀가 가장 잘하는 요리는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해장국과 된장찌개, 김치찌개다. 하지만 아직 양념을 잘하는 것은 힘들다. 시댁식구들을 비롯한 남편은 집안 일을 잘 도와줄까?

 

"우리 남편은 잘 도와줘요, 설거지도 해주고. 회사일로 바쁘지만 집에 있을 때는 잘 도와줍니다."

 

한국에 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우선 아이들 교육문제가 어렵습니다. 제가 집에서 영어는 좀 가르치고 있는데 워낙 경기가 어렵고 또 아이들 학원도 보내야 하는데 그게 만만치가 않아요. 그래서 여기 한글교실처럼 아이들에게 무료로 공부를 가르쳐 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 교육문제가 가장 걱정입니다. 그리고 많이 배우기는 했지만 아직 한국말이 서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더 많이 무료 한글교실이 운영됐으면 합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특히 한국에 정착해 가정을 이룬 이들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많기도 하거니와 심각한 측면도 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 경제적 곤란 등은 이미 일상적인 문제가 됐다.

 

이주여성들이 느끼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더 남다를 수 있다. 한국인 남편과 그 가족의 문화와 정서에서 괴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2세가 태어나면 교육문제로 자녀와 서로 상처를 입게 된다. 하물며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부부의 인연을 맺은 경우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극과 극일 수 있다.

 

벨씨는 경제적인 문제를 가장 크게 걱정했다. 그녀는 필리핀에서 들은 한국생활과 막상 와보니 다른 경우가 종종 있고 때로는 오자마자 생계유지를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 이들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러한 사례들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안겨주고 있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벨씨에게는 이뤄지기 어렵겠지만 간절한 꿈이 있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이 다 함께 모여 살고 싶다는 소망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은 함께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벨씨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다 말하지 않아도 그 표정에서 그간의 어려움과 마음고생을 읽을 수 있었다.

 

머나먼 이국에서의 생활로 얻은 정신적 고통을 치유할 전문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마음의 병을 덜어줄 상담을 포함한 사회복지서비스가 강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벨 씨는 또한 그들끼리만 어울릴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이웃으로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인천시가 그들을 낯선 이방인으로 둘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인천시인터넷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필리핀, #이주여성,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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