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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웅 할아버지가 미법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배정웅 할아버지가 미법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문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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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을 간다는 것은 늘 설렘과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인천섬마을 조사단원들은 제3차 답사지로 서검도와 미법도를 지난17일부터 18일까지 다녀왔다. 그 중에서 '미법도 사건'에 휘말려 섬 전체 주민들이 안기부에 끌려가 감내할 수 없을 만큼의 고문을 당했던 미법도 노인회장 배정웅(78)씨의 이야기를 풀어 내려 한다.

미법도에 가려면 강화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행을 타고 내려 다시 석모도 '하리' 선착장에 가야한다. 그곳에서 '서검도행' 배를 타야 한다. 서검도 가는 길에 잠시 미법도 선착장에 들러 승객을 내려주고 여객선은 다시 서검도로 출발한다.

선착장 입구에서 눈에 띄는 것은 '1996년도 범죄없는 마을' 지정표지판이다. 선착장엔 위급환자발생시에 사용하는 헬기장 표시가 그려져 있다. 좁다란 길을 따라 마을입구로 들어서니 멀리서 온 손님이 반갑다고 강아지가 반갑게 꼬리를 친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끝까지 간 곳에 '미법사'란 절이 있다.

그 곳에서 부처님처럼 큰 보시를 베풀어 준 '덕우' 스님 덕분에 짐을 풀고 마을 조사에 나섰다. 간간히 갯바람이 비릿하게 불어오고 빗줄기가 오락가락했다. 자신의 텃밭에서 가을 김장에 쓰일 '쪽파'를 심고 계신 배정웅 할아버지를 만나 옹기종기 11가구가 모여 사는 미법도(아미다불 미자를 사용한다고 함)의 이야기를 들었다.

출생과 미법사와의 인연

배정웅 할아버지는 보문사 근처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교를 믿었고 염불도 잘해서 스님보다 잘한다는 이야길 들었다. 12세 때부터 화성 용주사에서 지냈었고 그때 만난 친구(서경스님)와 함께 '미법사' 절을 세우고 15년 동안 관리를 하셨고 미법사 근처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다.

절을 지을 때 재원은 서경스님이 마련했고  배정웅 할아버지가 총괄 감독을 맡아서 지었다고 한다. 지금 미법사엔 순주상주뻘 되는 '덕우'스님이 머물고 있다. 덕우 스님이 미법사에 머물게 된것은 집안의 장손이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서울에 머물고 있는 서경스님을 대신해서 (배정웅할아버지와 함께 미법사 세움) 오게 되었다.

'미법사'란 절은 고려시대 때부터 내려 오는 절이라 한다. 흔적만 남아 있는 절터엔 묘1기가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다. 예전엔 '신당'이 있어서 마을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미법사'란 절이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고 했다. 배정웅 할아버지가 이곳에 왔을 때에만 해도 산에 가면 사람의 해골을 볼 수 있었고 그 당시에는 45가구 정도가 살아 학생들도 많은 때엔 50~60명 정도가 됐었다.

그러나 점점 학생 수가 감소함에 따라 이곳에 있었던 '삼산국민학교분교'는 폐교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 폐교 입구엔 무궁화 꽃이 활짝피어 이곳의 학교였음을 짐작케 해주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많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던 '미법사'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현재는 '미법사 란 이름을 가진 절이 원래의 위치가 아닌 다른 곳에 세워져 지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기독교도 섬에 들어 오려 했으나 자신들만의 종교를 강요하는 바람에 불심이 깊었던 섬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들어서지 못했다.

"어느 종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은 그 마음이 중요한 거야 . 기독교든 불교든 난 그렇게 생각해."

흔적만 남은 미법사 근처에 보물이 많다고 임진왜란때 금불상을 우물에다 숨겼다는 이야기도 소문이나 도굴꾼들이 많이 들어왔다. 현재의 미법사 주변도 많이 파헤쳤다. 보물을 찾을려고 절을 지을 때 어려움이 많았다.

서울에서 공수해온 기왓장을 신도들이 일일이 머리에다 이고 날랐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생각도 못할 것이다. 길을 내는 데도 신심이 두터운 불교신자들은 선뜻 내어 주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요만큼도 안 내주고 그것 때문에 속도 많이 상했다. 조금만 뭐가 무너지면 길 때문이라고 고쳐달라고 그랬다.

지금은 이곳에 산 지 25년이나 됐고 이장도 하고 노인회장도 하고 있어서 그렇지만 처음 이 섬에 왔을 때는 그런 어려움들이 많았다. 예전엔 이곳에서 나오는 '소금'이 유명해 일본사람들이 좋아해서 수출했다고 한다. 이젠 경제성이 떨어져서 염전이었던 곳을 매립해 논으로 만들었다. 처음 3년은 논에 염분이 많아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주 비싼 땅이 되었다. 서검도엔 그렇게 해서 만든 논이 15만평이나 된다.

미법도 주민 간첩단 사건

1965년 10월 29일, 미법도 주민 109명이 비무장지대에 있는 황해도 은점벌에서 조개잡이를 하던 중 남북됐다가 11월 20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이것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1976년 납북되었던 어민들은 고정간첩 혐의로 줄줄이 감옥에 갔다. 마을의 민방위 소대장이었던 한 어민은 '인천제철 폭파 공작' 협의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미법도 주민 정씨는 1982년 가혹한 고문 끝에 '북한에서 포섭돼 간첩활동을 했다'는 취지의 자백을 한다. 아내와 동생도 고문끝에 '정씨가 간첩 행위를 했다'고 허위 진술하고 만다.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기소된 정씨는 1984년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5년 복역 후 1998년 8·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 후에도 감시는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대표적 공안조작 사건의 하나인 '미법도 간첩사건'의 전말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 섰던 정씨는 지금 이세상에 없다.

"옛날에는 황해도가 38선 이남이었지. 6·25전에는 그러다 6·25가 나면서 황해도 사람들이 많이 넘어와 45가구가 된 거야. 전쟁 후라 서로가 어려웠지만 오손도손 잘 살았어. 서로 조금씩 도와 주면서 사람들이 너무 착해서 그런 일도 겪은 거야. 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교통편이 연평도 가는 배편을 상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불편해. 실제로 배가 뜰 수 있는데도 연평도 상황이 안 좋으면 배가 안 뜨거든. 그게 제일 불편하고 병원이나 약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요즘엔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저 선착장에 헬기장을 만들어 놔서 헬기로 가기도 해. 여기 물맛은 정말 좋아. 서검도 사람들이 제일 부러워 하는 게 물이야. 지하수를 펌프로 끌어다 쓰는데 물맛도 좋고 가움에도 물 걱정은 안 하지. 그러니 살 만한거야."

인터뷰를 정리하고 흔적만 남은 학교터와 '미법사' 터를 둘러보기 위해 일어서려는데 "떡국이라도 끓여 주어야 하는데 내가 몸이 불편해서, 저기 마을 회관에 가면 라면 있을 거니까 그것이라도 끓여 먹어!"라고 권하시면서 못내 아쉬워 하셨다.

배정웅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이런 당부를 전했다.

"서검도라는 데는 중국서 올 때 검문소나 마찬가지였어. 배가 또 돌아서 송장을 치르는 일이 있어서 미법사 절을 지어놓고 명복을 빌은 거지. 이렇게(조사단을 가리킴) 학생들이나 탐구하는 분들이 있어야 또 역사가 바로 잡혀지는 건데, 이해가 가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으니 다들 먹고 사는 것이 바빠서 이런 역사에 무관심 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 그동안 문화재청이나 어떤 연구기관에서도 아무도 안 왔어. 그런 사람 다니는 거 본 적이 없어."

텃밭에서 쪽파를 심고 있다.
▲ 배정웅 할아버지 텃밭에서 쪽파를 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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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이 학교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있다.
▲ 무궁화꽃 이 곳이 학교였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궁화꽃이 활짝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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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터로 남아있는 삼산국민학교분교
▲ 학교 터 빈 터로 남아있는 삼산국민학교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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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만 남은 절터 중앙엔  묘1기가 자리하고 있다.
▲ 미법사절 터 흔적만 남은 절터 중앙엔 묘1기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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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법도 선착장에 응급수송용 헬기장이 있다.
▲ 헬기장 미법도 선착장에 응급수송용 헬기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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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지어진 미법사의 모습이다.
▲ 미법사 전경 새로지어진 미법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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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미법도 , #미법도 간첩사건, #문경숙, #두레박 천사, #섬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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