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정수가 쓴 <다리미를 든 대통령> 겉 표지
 김정수가 쓴 <다리미를 든 대통령> 겉 표지
ⓒ 이윤기

관련사진보기


삼성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불법 의혹을 폭로하였을 때 언론과 대중의 가장 큰 관심을 유발한 부분은 '떡값 검사 의혹'이었다고 한다. 지난달 10일출범한삼성 비자금 의혹 특별검사에 의하여 이 사건 수사는 현재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이번 설날에는 늘 주던 떡값이 사라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선물상자에 담긴 현금과 상품권이 ‘떡값’이란 이름으로 건네지고 있지는 않을까?

아침신문에 사진으로 실렸던 의원회관에 가득 배달된 선물 상자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이미 많은 국민들이 수 없이 반복되는 뇌물 사건을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사과 상자에는 2억4천만 원, 골프백에는 1억원, 간고등어 상자는 3천만 원, 곶감 상자는 2천만 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더군다나 지난 대선 때는 이런 ‘떡값’ 담는 상자로 부족하여 이른바 ‘차떼기’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다리미를 든 대통령>을 쓴 김정수는 ‘떡값’의 유래를 3공화국 당시 명절 무렵 공무원들에게 지급한 ‘효도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 이 돈이 방앗간에서 떡을 맞추면 딱 맞아서 ‘떡값’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막걸리, 밀가루 같은 것들이 선거 때 뇌물로 돌았고, 떡이 제사상에 오르는 귀한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떡값이 뇌물을 상징하는 말로 등장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더군다나 ‘떡값’이라고 하면 그 느낌이 왠지 뇌물 같지 않고 작아 보인다는 장점 때문에 ‘뇌물’이라는 용어 대신에 자주 사용되는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불법 의혹 폭로에 행동을 함께 하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는 ‘떡값’ 대신에 ‘뇌물’이라는 정확한 용어사용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사회적 지위에 따라 뇌물 기준도 다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뇌물과 부패의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다리미를 든 대통령>에는 한 월간지에 나왔던 기사를 인용해서 다음과 같은 기준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의원 5천만 원, 대학교수 2천만 원, 차관 또는 구장 1천만 원, 경찰 1백만 원이 기준액이었다고 한다. 이 기준선을 넘어서 돈을 받으면 범죄 행위로 구속되고 이 이하로 받을 경우에는 관행적인 ‘떡값’으로 인정되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다.”(본문 중에서)

지은이 김정수는 <다리미를 든 대통령>에서 94년에 있었던 대학교수들의 교재 채택 비리에서 실제로 2천만 원을 기준으로 구속과 불구속이 나누어진 적이 있다는 근거와 한보 사건 당시 5천만 원을 받은 국회의원들이 구속을 피하였다는 정황을 들어 상당히 근거 있는 주장이라고 인정한다.

아마 모르긴 해도 이번 설 명절에도 이런 사례들을 기준으로 다양한 명목의 떡값들이 배달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은이 주장처럼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의 잣대가 철저하고 엄정하지 않으며 직위와 액수,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편의적인 경향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 찌든 뇌물과 부패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더라도 이것의 톨레랑스(관용)수준, 다시 말해 참고 봐 줄 수 있는 임계점을 끊임없이 낮추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리미를 든 대통령>을 쓴 지은이 김정수는 한국투명성기구 정책실장을 거쳐 지금은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부정부패와 관련하여 ‘드러내는 것은 사라지고 감추는 것은 남는다’고 한다.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안심하고, 덮음으로써 피해왔던 부패라는 한국 사회의 치부들은 은폐와 억압의 반창고를 떼어내자마자 곪은 상처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부정부패는 하나둘 세상에 그 추한 몰골을 드러내면서 오히려 치유의 방법을 찾는 길에 들어서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부패라는 긴 동굴을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청렴과 용기 밖에는 없다고 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청렴과 용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이 책을 썼다는 것이다.

김정수가 쓴 <다리미를 든 대통령>에는 부패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좁은 의미에서 볼 때 대체로 공익을 무시하고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사적 이익이나 특수한 이익을 위하여 (또는 어떤 사람이니 집단의 불이익을 위하여) 자신이 가진 권한을 남용하는 것을 일컫는다.”(본문 중에서)

아울러 부패는 한자로 풀이하면 썩어 부스러진다는 뜻이며 영어로는 ‘완전히 부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총체적인 파멸로 나아가는 것을 부패라고 정의할 수 있다는 것. 부패(corruption)의 용법을 보면 corrupt는 ‘젊은 여인을 꾀어서 타락시키다’, ‘공직에 있는 관리를 유혹하다’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부패는 총체적 파멸에 이르는 길

지은이는 책을 통해 다양한 부패 사례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가 대부분 기억하고 있는 이철희 장영자사건, 삼풍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사건, 혹은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전직 대통령 비자금 조성사건, IMF 경제 위기의 도화선이 된 한보사건, 김영삼 김대중 전직 대통령 아들 비리에 이르기까지 단군 이래 최대 기록을 갈아 치우던 굵직굵직한 사건에서부터 일반인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크고 작은 여러 사례를 적절하게 인용함으로써 부패 문제의 본질을 조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국민들을 참담하게 하였던 전직 대통령들은 어마어마한 비리를 저지르고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후임 대통령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거나 혹은 자식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키려고 하는 후안무치한 행동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이렇게 쉽게 그들의 잘못을 잊어가는 것은 국민들 역시 크고 작은 부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 밖에도 한국 근대사에 있었던 대표적인 부패 사건인 국민방위군 사건, 사사오입에서 4·19까지의 부패와 선거부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고, 1990년대 정태수 회장의 한보비리가 IMF 사태의 도화선이 된 과정도 밝히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는 조선의 왕에서부터 하급관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백성들을 수탈하였는지 특히 일본의 침략과 국운의 쇠퇴로만 이해하였던 조선의 멸망에 관리들뿐만 아니라 고종임금과 명성왕후의 부패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도 소개하고 있다.

“고종은 명색이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임에도 뇌물과 재물, 국고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매천야록에 대신은 물론 무당, 심지어 백정까지 돈을 싸들고 고종주위를 맴돌았다고 적혀 있을 정도로 부패가 심각했다. 무당을 궁궐에 들여 인사권을 쥐게 하고, 특정 지역과 성씨를 궁궐에서 배척하는 편중인사는 예사였다. 조선 말엽 광산 채굴권이 모두 외국인의 손에 넘어가게 된 것도 그들의 뇌물 덕분이었다.”(본문 중에서)

이 책을 통해보면 명성황후의 매관매직은 상상을 초월한다. 민씨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을 당시 전국 관료 가운데 일만여 명이 여흥 민씨였다고 한다. 명성왕후는 아들을 얻기 위한 기도비용으로 일본 상인들로부터 많은 돈을 차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죽기 전까지 가무를 즐기며 국고를 탕진하였다.

고종과 명성황후 = 부패한 왕과 왕비

또한 규정에 없는 과거 시험을 남발하여 뇌물을 받고 합격 시키고 “뇌물을 받고 보낸 지방수령이 남대문을 벗어나면 더 많은 뇌물을 바친 자를 뒤이어 보낼 정도로 뇌물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김정수가 쓴 <다리미를 든 대통령>에는 그동안 있었던 가슴 답답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패하면 왕도 폐위시켰던 고구려에서부터 신라, 백제 그리고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다양한 부패방지 정책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의 반부패정책 변천사도 요약 정리되어 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부패문제에 관한 종합보고서라 할 만한 책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전혀 딱딱하고 어렵지 않다. 그것이 이 책이 가진 뛰어난 장점이다. 지은이는 청소년들도 이 책을 널리 읽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사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역사에 기억되는 인물들에 대한 우리가 가긴 많은 편견을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철학자 베이컨이 부패한 관료였다는 것, 청백리로 이름난 황희도 뇌물을 받았다는 것 등이 바로 그런 사례들이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책의 제목이 <다리미를 든 대통령>인가? 심지어 지인에게 이 책을 소개했더니 “다리미로 다려서 부정부패를 편다는 이야기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리미를 든 대통령은 누구인가?

<다리미를 든 대통령>은 2002년에 한국을 방문하였던 타르야 카리나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의 호텔직원들을 경악하게 만든 검소함에서 비롯된 제목이다. 그는 핀란드 자기 집에서 쓰던 다리미를 가져와 객실에서 손수 옷을 다려 입었을 뿐만 아니라 호텔 전문 미용사의 머리 손질도 거절하였다고 한다.

다리미를 든 가장 청렴한 나라 대통령

핀란드는 국제투명성기구 부패인식 지수에서 3년 연속으로 청렴도 1위를 차지한 나라이며, 국가 경쟁력에서도 2001년 1위, 2002년에는 2위를 차지한 나라라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은 일 년에 한 번 소득과 자산변동내역을 철저하게 공개하고 언론은 공인으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들의 자산변동내역을 세밀하게 추적보도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핀란드 대통령 관저 근처에는 대통령이 나와서 커피를 마시는 노점상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노점상에서도 커피값을 신용카드로 계산 할 수 있으며 수입 중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고 한다. 이 나라 세무당국은 전국 모든 은행계좌는 물론 국민들의 해외재산 내역까지 법원의 허가 없이 검색할 수 있으며, 해마다 국민들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과세내역을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리미를 든 대통령>에는 핀란드 이야기뿐만 아니라 적은 떡값은 물론이고 비행기 마일리지나, 총리실 특별자금조차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는 투명하고 청렴한 선진국들의 놀라운  사례와 부도덕한 기업의 실패사례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들이 재미있게 소개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설날을 맞아 독자여러분도 크고 작은 선물과 떡값을 받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선물과 뇌물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선물과 뇌물을 나누는 기준이 나라마다 얼마나 다른지 아시는가? <다리미를 든 대통령>을 보면 어떤 나라에서는 45달러 뇌물 때문에 공무원이 해고당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36억원을 떡값으로 받아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이 책에 소개하는 어느 기업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빨간 얼굴 테스트’를 하는데, 핵심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가족에게 얼굴을 붉히지 않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번 설에 받은 선물과 떡값은 ‘빨간 얼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는가?

덧붙이는 글 | <다리미를 든 대통령> 김정수 지음 - 민들레/ 254쪽, 8500원



다리미를 든 대통령 - 부패 없는 사회를 위하여

김정수 지음, 민들레(2006)

이 책의 다른 기사

부패 한 그릇, 얼마나 될까?

태그:#부패, #떡값, #다리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