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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해, 딸 유빈이가 6학년이 되어 첫 등교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현관에 서서 둘이 꼭 안고 기도를 한 후 항시 걱정많은 엄마가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혹시 성격이 삐뚤어지거나 사나운 친구를 만나더라도 피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아라.

나는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딸이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좋은 길로 인도해 주도록 해."

 

엄마의 당부를 가만히 듣고 있던 유빈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엄마, 성격이 나빠서 모든 친구들이 다 싫어하는 아이도 사실은 자기 자신이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을거야. 그리고 어쩌면 그 아이도 나쁜 친구를 만나면 어쩌나, 자기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을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도 나쁘다고 볼 순 없어.
성격이 나쁜 친구도 사귀고 보면 다 좋은 친구들이거든."

 

"하이고…선상님, 학교 잘 다녀오셈.^^"

 

지금은 성격밝고 모범적인 친구들이 수두룩하지만 한 때 유빈이는 왕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3학년 1학기, 그 해는 엄마가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 받느라 기진맥진 힘든 때였는데 유빈이는 유빈이대로 혼자 쓰라린 고초를 겪었던 것입니다.

 

매사에 오만가지 시시콜콜 엄마한테 이야기하는 유빈이가 몸이 아픈 엄마한테 그 말만은 차마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어느날 병원엘 다녀와 기진해서 누웠는데 엄마 옆에서 책을 읽던 유빈이가 한숨을 푹 쉬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바로 나네. 책을 쓴 선생님이 어쩌면 내 마음을 이렇게 잘 알까."

 

책 제목을 보니 <양파일기>. 유빈이가 학교 가고 난 뒤 찬찬히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읽어나가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 양파라는 아이가 당하는 왕따일기가 내 딸의 일기라니! 주여….

 

저녁에 유빈이를 만나 품에 끌어안고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습니다.

 

"응, 엄마. 하루종일 아무하고도 말을 안 하고 수업시간에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는 책읽고 끝나면 혼자서 집에 와."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한 마디도 안 하고?"

 

엄마가 목이 메여 묻는 말에 유빈이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응, 책 읽으면 친구들이랑 이야기 안 해도 외롭지 않아."

 

그러고는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한 명 생겨서 이야길 나누면 **이가 데리고 가 버려. 또 다른 친구를 가까이 하려고 하면 그 얘가 또 데리고 가. 그래서 아예 혼자서 지내."

 

"엄마가 학교에 한 번 찾아갈까? 가서 **이를 혼내 줄까?"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는 엄마 앞에서 손가락으로 방바닥을 이리저리 긋고 있던 유빈이가 말합니다. 

 

"엄마, 엄마가 학교에 오면 오히려 더 나빠질 것 같아. 내가 노력해서 친구들하고 잘 지내볼게. 아마 나도 잘못한 점이 있을거야."

 

그래서 그 3학년 1학기를 이래저래 울며 불며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그 해 여름 방학을 다 보내고 개학을 하면서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빈이와 함께 동행하시며 도우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선생님께 세세히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때 담임이셨던 한상희 선생님은 지금까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유빈이가 찾아가 인사를 드리는 참 스승다운, 심성 고우신 분이십니다.

 

그 분께서 온 반 아이들을 한 명씩 한 명씩 따로 불러 그 일에 대해 가만히 물어보신 후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하게 처리를 해주셨습니다.

 

한 명 한 명 유빈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한 후, 마음을 풀고 서로 안고 화해하도록 따스한 분위기로 유도하며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은 씻은 듯이 해결이 되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예전처럼 활기차고 명랑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노는 유빈이로 돌아왔습니다.

 

성경말씀 욥기에 주님께서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하셨듯이 혹 주님께서 '내 어린아기 유빈이를 유의하여 보았느냐'하시며 아기 유빈이를 단련하여 정금처럼 만들기 위하여 **이를 사용하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유빈이는 '엄마 눈에' 참으로 강한 용사가 된 듯 보입니다. 웬만한 일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친구들이 툭하면 삐지기도 하고 별스럽지도 않은 일로 다툼이 일어나려하면 유빈이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꾹 참는다는 것입니다.

 

귀엽게 튀어나온 앞니를 환하게 들어내고 하하하하 장군처럼 웃으면서 유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 때는 엄마, 속이 뒤집어(^^) 질 것 같지만 꾹 참아. 기다리면 언젠가는 좋은 관계로 다시 돌아오거든."

 

언제나 오래 참지 못하고 안 해도 될 걱정까지 사서 하는 소심한 이 엄마는 그런 말을 하는 유빈이를 보며 주님께 여쭈어봅니다.

 

"오 주여! 이 딸을 정녕 제가 낳았나요?"


태그:#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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