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바닥에 깔린 카페트의 문양이 이채롭다.
▲ 리스본 국제공항 바닥에 깔린 카페트의 문양이 이채롭다.
ⓒ 이태욱

관련사진보기


리스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바닥의 문양이 <알 자지라> 방송의 마크와 비슷해 이슬람의 느낌이 묻어난다. 새벽 5시 부산에서 출발해 프랑트푸르트를 거쳐 리스본에 도착하니 다음날 오전 10시다.

부산 당리동 집에서 출발해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까지 오는데 총 28시간 걸렸다. 인천공항까지 7시간, 인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2시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리스본까지 3시간, 그리고 중간 중간 기다리는 데 걸린 시간이 6시간, 도합 28시간이다.

예상은 했지만 무척이나 지루하고 길었다. 이 지루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준비엔 책이 좋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처럼 어려운 책일수록 더욱 좋다. 책만 펴면 잠이 올 테니 말이다. 내 경험상 비행기로는 비몽사몽 간에 이동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행기에서 보낼 시간을 위해 여행할 나라와 관련된 책 3권을 준비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를 소개한 책이다. 미리 읽어보려다 여행코스와 관련된 인쇄물도 많이 가져왔다. 이걸 다 떼고 도착할 시점쯤 되면 아마 여행에 관해 '반풍수'는 되어 있을 것 같다.

프랑크푸르트까지만 해도 12시간 가야 하는데 책 보고 기내식 먹고, 책 보고 와인 마시고, 맥주 마시고 화장실 갔다 왔다 졸다 깨다를 되풀이해도 아직 4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의 고향 베네치아에서 원나라 수도 베이징까지 오는 데 2년이 걸렸다는데 거기에 비하면 무척이나 양호한 편이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다.

장거리 비행의 고역, 큰 키 그리고 금연

덩치가 작은 나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워낙 키를 중시하는 나라에 살다 보니 내 키가 작아 평소에 서러움을 많이 겪었는데 비행기 탈 때는 무척 유리함을 느꼈다. 일행 중 키가 큰 분이 한 분 있었는데 그에게는 참으로 고역이었다.

이코노미석의 좁은 공간 때문에 큰 다리는 충분히 펼 수가 없었다. 그는 아프고 불편한 다리를 달래려고 12시간 중 7시간을 화장실 옆 넓은 공간에서 서 있어야만 했다.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이 모두 사막으로 변한다고 하더니만 세상에는 항상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골초들이다. 이들은 지루한 게 문제가 아니다. 다리 아픈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만사가 귀찮고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고들 한다. 하지만 어떡하랴!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수도 없으니 참을 수밖에.

비행기로 11시간 반을 타고 와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환승을 기다리고 있다. 3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또 3시간을 더 날아가야기에 이들이 급히 찾는 곳은 흡연실이다. 가이드는 단호히 말한다. "여기에는 흡연실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들은 똥 마려운 강아지가 되었다. 안절부절못한다. "아무리 그렇지만 흡연 장소가 한 군데도 없다니!" 지나가는 청소부에게 가방끈 짧은 영어 실력으로 살짝 물어 보았다.

"실례합니다. 흡연실이 어딘가요?(Excuse me, where is a Smoking Area?)"
"에이 투에니파이브.(A25)"

"A25?"
"A25!"

사진에 보이는 A 13에서 A 25까지 가려면 한참이다.
▲ 프랑크푸르트 공항 사진에 보이는 A 13에서 A 25까지 가려면 한참이다.
ⓒ 이태욱

관련사진보기


찾았다! 국제공항의 흡연실

오, 예스! 모두 신이 났다. 게이트 A25 앞이라면 여기에서 멀어도 한참 멀지만, 시간도 많은데 먼 게 문제가 될까. 게이트 A25 앞 흡연 장소는 매우 좁지만 여자를 포함한 많은 흡연자가 한꺼번에 연기를 내뿜고 있다.

"여기에서는 그냥 연기만 마셔도 충분하겠는 걸."

모두들 농담하며 연달아 몇 개비를 피우더니 이제 살만하나 보다.

해가 지날수록 나라마다 흡연장소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이제 시대가 그렇게 변하니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흡연자라면 정신 바짝 차리고 지금부터 금연하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하지만 아직도 담배를 못 끊었다면 프랑트푸르트 공항을 경유하는 흡연자들은 꼭 기억하길 바란다. '에이 투에니파이브(A25)'

한국시각으로 오전 10시면 리스본은 밤이다. 한국보다 9시간 느리니 여기는 지금 새벽 1시다. 그래서 조용하다. 밤이 야심하니 자야 한다. 잠이 오지 않지만 또 자야 한다. 그래도 먼 길을 와 피곤한데다 미리 준비한 소주를 동료들과 한잔씩 걸쳤으니 쉽게 잠이 올 듯싶다.

덧붙이는 글 | 지난 연말연시에 동료와 함께 둘러 본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에 대한 여행기입니다.



태그:#리스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