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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 숲으로 둘러쌓여 참으로 아름다웠다
▲ 숙소에서 본 바깥 풍경 집들이 숲으로 둘러쌓여 참으로 아름다웠다
ⓒ 이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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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도 아침이 왔다. 리스본은 위도상으로 우리나라의 평양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여긴 해양성 기후라서 겨울임에도 무척이나 온화하다. 우리나라의 초봄과 같은 날씨다.

바깥을 보니 화창하다. 우리의 숙소가 이 나라에서 해변 휴양지로 가장 유명하다는 카스카이스 부근이어서 그런지 숙소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자연과 어우러져 참으로 아름다웠다. 맑은 공기, 온화한 바람, 선명한 풍경,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집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공해에 몸과 마음이 찌든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보기만 해도 그냥 감동한다.

창문 너머 보이는 바깥 풍경을 보고 그냥 감탄해 마지않는 나를 보고 한 동료는 그러한 태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간단히 한마디 던진다.

"뭐, 제주도 같구먼."

듣고 보니 그랬다. 온통 숲으로 둘러싸인 게 풍경 자체는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아침 같았다. 답을 밖에서 찾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직도 이와 비슷한 풍경을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무어인이 지은 오비도스성... 성이라면 최소한 이 정도는 지어야지~

오비도스 성 아래에 있는 또 하나의 무어인 성
▲ 무어인의 성 오비도스 성 아래에 있는 또 하나의 무어인 성
ⓒ 이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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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아침을 맞이한 후 우리는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80여 km 떨어져 있고 한 시간가량이면 갈 수 있는 중세의 무어인이 쌓아올린 오비도스 성을 찾았다.

무어인이란 8세기경 피레네 산맥 아래인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한 이슬람교도를 막연히 부르던 말인데, 본래는 모로코의 모리타니아, 알제리, 튀니스 등지의 베르베르 인을 주체로 하는 여러 원주민 부족을 가리키지만 11세기 이후에는 북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이슬람교도를 통칭한다.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
▲ 이베리아 반도 15세기 경의 지도 이베리아 반도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 그라나다
ⓒ 인터넷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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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 산맥 아래 포르투갈, 스페인은 지금은 기독교의 나라이지만 아직도 이슬람의 흔적이 많은 곳이다. 이곳은 살기가 좋은 곳이라 그런지 역사적으로 많은 종족이 거쳐 갔다. BC 12세기에 페니키아 인으로부터 그리스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서고트 족, 이슬람교도들이 번갈아 지배하던 곳이다.

특히 서기 7~8세기경의 북 아프리카의 무어(Moor)인은 아프리카 최북단의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유럽 땅으로 침략을 시도한다. 결국 이곳을 지배하던 서고트 왕국을 멸망시킴으로써 이곳은 이슬람의 땅이 된다.

그러다가 10세기가 지나자 흩어졌던 서고트족은 다시 힘을 길러 역습에 나서게 되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인 1492년에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 왕국의 수도인 그라나다를 함락시킴으로써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모두 몰아낸다.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비도스는 아주 자그맣고 회반죽을 발라 하얗게 단장한 집들이 소복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이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은 어느 한 여왕에게 주어졌고 이후 600년 동안 포르트갈의 군주들은 오비도스를 결혼 선물로 왕비에게 선사하는 일이 관습처럼 행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견고하게 쌓아올린 오비도스 성벽
▲ 오비도스 성벽 견고하게 쌓아올린 오비도스 성벽
ⓒ 이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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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안에 들어서면 갑자기 천 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느낌이다. 성벽이 앞을 가로막는다. 성이라면 낙안읍성과 같이 아기자기하고 가정집 담보다 조금 높게 쌓아놓은 성벽 아닌 성벽의 모습에 익숙한 우리에겐 생소한 느낌이라서 머리에서 잠시 혼란이 온다.

수비와 방어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너무나 견고하게 잘 쌓은 오비도스 성을 보며 이 방면에 문외한인 내가 봐도 성은 최소한 이 정도는 지어야 이게 성이구나 하는 느낌이 절로 든다. 전쟁은 소꿉장난이 아닐 텐데, 옛날 어느 청문회에서 적과 목숨을 걸고 대치했던 병사에게 같은 동족으로 연민을 느끼지 않았느냐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들었을 때처럼 전쟁 상황을 너무나 단순히 생각했던 나를 되돌아보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아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성벽따라 집들이 이어져 있다
▲ 성벽 아래 골목 성벽따라 집들이 이어져 있다
ⓒ 이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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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따라 가느다란 골목길엔 조그만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집집이 가게를 열고 있는데 포도주랑, 옷이랑, 타일 장식품인 아줄레주랑, 기타 등 기념품을 다양하게 팔고 있다. 성은 이슬람 성인데 고대 로마의 수로교도 있고, 100년이 넘은 고풍스러운 교회도 남아 있다. 이는 이곳 역사의 복잡성을 나타내리라.

오비도스 성 아래 100년이 넘는 교회가 있다
▲ 100년이 넘은 교회 오비도스 성 아래 100년이 넘는 교회가 있다
ⓒ 이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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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성안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줄지어 서있다
▲ 크리스마스 트리 이슬람 성안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줄지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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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임에도 곳곳에 꽃이 피어 있고 집집이 꽃이 핀 화분을 창문 밖으로 내어 장식하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크리스마스트리도 여러 모양으로 장식하여 진열되어 있다.

도자기 장식인 아줄레주
▲ 기념품가게 도자기 장식인 아줄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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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임에도 성벽을 따라 많은 꽃들이 피어있다
▲ 겨울에 피어있는 꽃들 겨울임에도 성벽을 따라 많은 꽃들이 피어있다
ⓒ 이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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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모습에 흠씬 취해, 호기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이곳저곳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다 또 하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그게 바로 화장실 모습이었다. 큰 볼 일이 있어 화장실에 들려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아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변기의 뚜껑이 통째로 없다
▲ 화장실 풍경 변기의 뚜껑이 통째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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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변기의 뚜껑이 통째로 없는 것이었다. 잘못 들어왔나 싶어 옆 칸의 문을 열었다.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나라에서 변기에 뚜껑이 없다니…. 문화란 화장실이 없어도 존재한단 말인가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이러한 풍경은 옛날 중국의 조그만 도시에 갔을 때 한번 본적이 있는데 여기서 재현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긴 중국이 아니지 않은가? 참으로 난해했다. 난감한 가운데 일은 어떻게 치렀는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태그:#오비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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