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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일본드라마)’는 국내 대중문화계를 강타하며 하나의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였다. 우리 젊은이들은 왜 일드에 빠져드는가? 최근 일드 대학생 마니아층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단지 재미로써가 아닌 트렌드로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즐긴다.

일드? It's different

인하공전 항공운항과 박경진(21)씨는 “한국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화면이 구려서도 아니고 스펙타클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단지 중요한 이야기가 빠진 것이 많아서 안 본다”라고 말했다.

한국드라마(이하 한드)는 내용자체는 어느 장르를 택하더라도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의학드라마인데 사랑이 의학을 뛰어넘고, 법률 이야기인데 법률 용어가 나오다가 결국은 사랑으로 끝난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변화에 민감하고 다양한 개성이 있는 대학생들에게 일드가 환영 받는 이유이다. 일드는 출생의 비밀이나 주인공의 불치병 등이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다. 다양한 줄거리와 예상을 뒤엎는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덕에 신선함마저 안겨준다.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전영미(21)씨는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시작했다가 사랑의 포용력이 모든 걸 감싸버리는 한드와는 달리 일드는 독특하고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빠져든다”라고 말했다.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감수성 면에서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많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일드의 인기는 국내 드라마의 고질병에 싫증난 시청자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다. 일드의 장점은 독특한 상상력과 폭넓은 장르성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원작의 드라마화가 보편적인 일본에서는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이색적인 소재의 작품들도 드라마화 되는 경우가 흔하다. 한드․미드와는 또 다른 폭넓은 장르적 상상력이 바로 일드의 인기비결이다.

일드, 난 네게 빠졌어

시리즈 당 10~12부로 드라마의 호흡이 길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에피소드의 완결성이 높아서 극 전개가 늘어지는 일 없이 깔끔하다는 점도 일드의 강점이다.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고수정(20)씨는 “주말에 정말 날 잡아서 약속이나 일없는 날은 하루 온종일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일드는 11화까지가 대부분이라서 하루에 몰아치기가 가능한데, 미드는 어떤 작품하나에 잘못 빠져서 시즌별로 보면 시간이 몇 배로 들어가서 힘들어요”라고 덧붙였다.
        
지난 2006년 후지 TV에서 4분기(10~12월) 드라마로 편성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 <노다메 칸타빌레> 지난 2006년 후지 TV에서 4분기(10~12월) 드라마로 편성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 권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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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는 일드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국내에 정식소개되기 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국내 팬들에게 큰 인기를 모은바 있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강신정(23)씨는 “진정한 마니아라면 남들이 잘 모르고, 재밌는 일드를 발견해서 보는 즐거움이 더욱 커요“라고 말했다. 남들과 같은 길을 가기보다는 대학생들이 자신만의 즐거움과 재미를 일드에서 찾고 있다.

일드에 대한 높은 관심은 일본문화에 대해 달라진 대학생들의 의식변화와 일본문화를 이해하려는 그들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박경진(21)씨는 “일본문화의 정서나 분위기가 일드에 고스란히 묻어있고, 색다른 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본다”라고 말하면서 “실제로 얼마 전 일본여행을 갔을 때 일드를 봤던 것은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라고 덧붙였다. 해외여행지로 가깝고 비교적 수월한 일본이 대학생들에게 선호됨에 따라 막연한 동경이 아닌 경험으로서의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도 일드에 빠져드는 이유이다.

제2외국어에 관심이 높은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영어를 많이 접하는 미드와 함께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일드의 선호도 강하게 나타난다. 단국대 특수교육학과 원민형(25)씨는 “이왕이면 일본어 공부도 하면서 봐요. 제일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자막 없이 보는 겁니다. 일본어를 음미하며 보면, 그 감동의 전율이 더 확실하게 전달됩니다”라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단지 재미보다는 공부도 함께 한다는 생각으로 일드를 본다.

자유분방한 대학생과 일드

일드는 국내에서 아직 미드에 견줄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지상파까지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미드에 비하여, 정치․사회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아직 반일정서가 만만치 않고, <프리즌 브레이크>처럼 확고한 히트작이 국내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이런 일드를 접하는 매체는 어쩔 수없이 텔레비전 보다는 인터넷으로 다운받거나 동영상사이트에서 보게 된다. 시간에 구애받는 케이블보다는 아무 때나 보고 계속해서 볼 수 있는 인터넷을 선호하는 대학생들이다. 학교 수업시간을 마치고 저녁이나 새벽에 시간 될 때마다 일드를 접한다는 선문대 행정학과 윤재열(25)씨는 “언제든 볼 수 있는 인터넷의 편리함 때문에 정규드라마시간에 맞추어 보는 한드는 상대적으로 귀찮게 생각 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주몽이나 태왕사신기 등 사극들의 스케일이 커졌기 때문에 그나마 드라마 경쟁력이 있지만, 그것마저도 점점 식상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라고 순천향대 신문방송 이아름(21)씨가 말했다.

심미선 순천향대(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많은 인기를 끌고 성공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성공요소에는 일드에서 흔히 있는 이야기의 디테일에 있다면서 “일드가 크게 갈등구조 없이 일상의 작은 것으로 얘기하는 디테일하고 감각적인 이야기 구성방식이 대학생에게 어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일본문화의 숭배는 아니라며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안희선(21)씨는 “과거 일본의 만행은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본 전자제품을 안 쓰고, 일본음식을 안 먹거나 하지는 않자나요. 일드를 보는 것도 그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은 복잡하고 진부한 과거사에 얽매이기 보다는 그저 일드를 하나의 문화로서 즐기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일본에 대한 문화적 거리감, ‘독도 문제’같은 외교적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반일 감정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양국의 특수성, 짧은 호흡 등으로 드라마 고정팬들의 인기를 꾸준히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점 등은 일본 드라마가 국내 방송가에서 독자적인 시장을 확보하기 어려운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태그:#일드, #노다메, #노다메 칸타빌레, #일본드라마,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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