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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일요일 오후 6시면 스톡홀름 대학교 부속건물 알휘셋(Allhuset)에 학교 유일의 쇼오케스트라단이 모인다. 악단과 소속 무용단 코르셋텐(Kårsetten)을 합쳐 콜쉬드라겟(Kårsdraget)으로 불린다. 하지만 콜쉬드라겟을 대학 동아리라 부르기는 적절하지 않다. 지역사회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콜쉬드라겟의 단원이 모두 스톡홀름 대학교 '학생'이지는 않다.

내가 이 동아리에 들어갈 때 받은 질문은 단 한가지, 어떤 특기를 가지고 있는가였다. 후에 개인적으로 받은 질문도 한가지, ‘스톡홀름대에서 공부하는가’ 였다. 스톡홀름대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그 학교의 동아리에 참가하는데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점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에서는 동아리가 그 학교 학생을 위한 모임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반대로 생각했을 때 지역사회에 대한 ‘제한’일 수도 있음을 처음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같이 모여서 활동하고자 하는데 반드시 그 범위를 좁게 둘 필요는 없다.

적당한 크기의 도시마다 대학교나 고등기관이 한 두개 있기 마련이고, 기관 내 동아리가 모두에게 열려 있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 오케스트라단에서 드럼주자를 찾는데 드럼을 잘 치는 이가 꼭 학교 학생 중에 있으라는 법은 없다. 지역 내, 예를 들어 부산에서 내가 취미로 드럼을 치는데 다른 사람과 모여 뭔가를 더 해보고 싶다면 부산대를 찾아가 모임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외스트라리알에서의 공연 장면
 외스트라리알에서의 공연 장면
ⓒ 오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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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의무에 가까운 모임참여나 선후배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순수한 자발성으로 부 활동이 이루어 진다. 올해 한국에 나홀로대학생이 늘어간다는 기사가 몇 있었는데,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다면 스웨덴의 이러한 모임형태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이런 발상이 콜쉬드라겟 단원에게는 너무도 당연하다. 단순히 학생신분이냐 아니냐를 떠나 연령대도 다양하다. 프레데릭 함말쉬스트룀(32)씨는 행정법률기관에서 일하지만 일요일에는 오케스트라단에서 지휘봉을 잡는다. 스톡홀름에 오기전에는 웁살라에서도 쇼오케스트라단 폰트라딴 Phontrattarne활동을 했었다.

스웨덴 대학 오케스트라단 연합 SMASK(Sveriges Musicerande Akademikers Samarbetande Kårorkestrar)에 가입된 오케스트라단은 40개가 넘고, 스톡홀름 내에 6개의 단이 소속되어 있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마다 있는 합창단, 운동부 등에서의 활동이 스웨덴 사람들에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스벤 톤크비스트(43)씨는 70년대에 비해 오케스트라단의 인기가 점점 줄고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 졌다고 한다. 게으르거나 다른 일 때문에 악기를 배우는데 시간을 투자하려 하지 않는다며 “요즘 사람들은 쉽고 빠른 일이 아니면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한숨을 쉰다. 공연 중 노래, 사회를 담당하고 벤죠와 튜바를 다룰 줄 아는 그는 콜쉬드라겟 이전에는 카롤린스카 인스터튜트(Karolinska Institutet)의 쇼오케스트라단 블로슬라겟 Blåslaget 에서의 활동경력이 있다.

모두 자신의 일이 있지만 자신의 특기를 가지고 동아리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다. 평생교육 참가율이 2003년 50%를 넘는 스웨덴에서, 활동적이고자 하는데 연령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참조, 동아일보 기사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703310080) 신분, 나이에 대한 이러한 열린 인식 또한 일상적이다.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하는데 사회나 주변 사람의 인식이 어떠한 제약도 되지 않는다.” 쉬운 말이면서도 실현되기 쉽지 않고, 만약 이 점이 실현된 사회에서 사는 것은 때로 무척이나 편하고 자유로운 일일 것이다.

외스트라리알에서의 공연 모습
 외스트라리알에서의 공연 모습
ⓒ 오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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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단과 무용단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따로 연습을 한다. 지금은 석달째 가을 콘서트를 준비하는 중이다. 오케스트라단은 악보를 앞에 두고 십여개 되는 곡을 연달아 연습하고 무용단은 따로 교본은 없지만, 시니어 단원이 콘서트 전에 찾아와 시범을 보이면 다른 단원들은 보고 익히며 준비를 해나간다.

2008년 11월이면 창단 50주년을 축하하는 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콜쉬드라겟의 역사가 짧지 않다. 이들의 음악은 LP레코드판, 후에는 CD로 발매도 했다. 11월 24일 오후 5시, 해가 짧은 북유럽이라 벌써 밖은 춥고 깜깜하지만, 지금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100년 된 벽돌건물로 들어선다.

외스텔맘(Östermalm, 스톡홀름 내에서 인구가 많이 거주하는 구역 중 하나)의 유서깊은 고등학교 외스트라 리알(Östra Real)에서 가을 콘서트가 열렸다. 연습할 때 보다 더 작은 무대 위에 오케스트라단이 어느새 자리를 반 차지하고 무용단까지 올라서려니 발 디딜 틈이 없다. 청중 맨 앞좌석에는 스톡홀름대 근처의 왕립기술학교(Kungliga Tekniska Högskolan) 코테호의 오케스트라공연단이 격려차 유람을 왔다. 크지 않은 홀이지만 좌석은 어느새 가득 찼고 두시간여 동안 스윙재즈풍의 신나는 공연이 계속됐다. 무대와 관객이 가깝다보니 분위기는 화기애애한 가족 같다.

실제로 청중의 일부는 공연단의 가족이고 일부는 지역 내에서 열리는 작은 콘서트에 관심을 갖고 찾아왔다. 공연이 끝난 후 외스트라 리알의 카페테리아에서도 음악은 이어진다. 콜쉬드라겟과 코테호의 프로메나드오케스텐 단원들이 모여 즉흥적으로 린디 홉 등의 춤을 춘다. 영화 <스윙키즈>에서 나치 지배하 독일의 젊은이들이 스윙댄스를 통해 자유와 열정을 표출할 수 있었던 것 처럼, 이날 스톡홀름에서도 그 자유로운 스윙의 물결이 이어진다.

자유공연티켓 외 150크로나(대략 21,500원)을 더 내면 입장할 수 있는 애프터파티에 참가한 할아버지가 두명 계셨는데, 학생 때 네덜란드에서 이민 온 샘 린슈튼씨는 16년 째 지역의 오케스트라공연단의 공연을 관람해오고 있다. 이들이 헤어질 때 하는 인사는 “내년에 봐” 였다.

란티스에서 공연하는 오케스트라
 란티스에서 공연하는 오케스트라
ⓒ 오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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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콘서트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 콜쉬드라겟이 이번에는 스톡홀름 대학교 내 레스토랑 란티스에서 공연을 하나 더 가졌다. 스톡홀름 대학교와 한국의 교원대라 할 수 있는 레라획스콜란(Lärahögskolan)이 합침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밤 9시에 시작한 공연은 손님 대부분이 자리를 다 뜰때까지 계속된다.

마지막 순서인 캉캉에서 단원들이 신나게 치마를 걷어 올릴 때마다 환호가 터지고 박수 속에서 무대는 막을 내린다. 단원들도 서로를 축하하며 아쉽게 손뼉을 친다. 이렇게 한 계절이 끝났다. 다음 무대는 봄부터 시작된다. 이번 봄, 다음 봄에도 콜쉬드라겟은 스톡홀름과 함께 할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
 공연이 끝나고 박수
ⓒ 오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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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공연을 통해 콜쉬드라겟과 지역사회의 끈을 더 확실히 느꼈다. 콜쉬드라겟을 통해 자신의 특기를 살리는 일도 지역사회의 활성화에 도움이 됨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적극적으로 무언가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오케스트라 무용단에 모여 다같이 공연을 준비한 후에 그동안 연습한 공연을 선보인다.

콜쉬드라겟은 단순히 한 학교의 동아리가 아니라 유명 가수의 콘서트가 아니라도 가까운 곳에서 소박하게 나마 참여하고 싶은 사람, 즐기고 싶은 사람 모두를 만족시켜 주는 지역사회의 긍정적이고 건강한 힘이다. 결국 누군가는 모두 어느 사회의 구성원이다. 사회 내에서 구성원 간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주는 매듭이 많을 수록 활기찬 사회가 된다. 콜쉬드라겟도 스톡홀르마레(Stockholmare, 스톡홀름에 사는 사람)을 엮어주는 매듭이었고, 이런 점에서 스톡홀름은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칭호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겨진다. (2007년 10월 리더스 다이제스트 선정, 75개 도시중 1위)


태그:#스톡홀름, #스웨덴, #살기 좋은 도시, #오케스트라, #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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