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누가 이들의 행복을 산산조각 내고 있는가? 삼성SDI 사측은 진실한 대답을 해야 할것이다.
▲ 행복한 송수근네 가족 누가 이들의 행복을 산산조각 내고 있는가? 삼성SDI 사측은 진실한 대답을 해야 할것이다.
ⓒ 박경내

관련사진보기


"삼성SDI 농성장엘 다녀 가셨군요. 삼성 투쟁에 관심 가져 주어 고맙습니다. 언양에 오시면 연락 주세요. 차 한 잔 하고 싶습니다. 오전엔 늦잠 자니 오후에 들러 주세요.ㅋㅋㅋ...
언양 터미널에서 1분 거리에 있어요"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에 실린 삼성SDI 하이비트 노동투쟁 관련 기사를 보고 한 여성분이 위와 같이 쪽지를 남겼다.

'삼성에 한맺힌 여자'

온라인상 그녀의 예명이었다.

초일류 기업 삼성에 도대체 무슨 원한이 맺혔길래 예명마저도 '삼성에 한맺힌 여자'일까? 그래서 한번 찾아가 보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 마침 다니는 회사 원청노조가 선거 투표날이라 하청은 출근하지 않아도 되었다. 오전 11시 넘어 짐을 꾸려 언양으로 떠났다.

왜, 삼성에 한이 맺혔나요?

그냥 맨얼굴에 평범한 아줌마다.

인사하고 앉아 대화중에 계속 몸 여기저기를 긁적이고 있었다.

-왜 몸을 그리 긁어 대세요?
"몇 년 전부터 아토피가 발병했어요. 요즘 가려워 밤잠을 설쳐요. 아마 삼성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이런 게 생겼을 거예요. 그전엔 건강했거든요."

-삼성과는 무슨 인연이 있길래요?
"저는 지난 88년(당시 21살) 5월에 5급 여직원 모집이 있다길래 사무직인줄 알고 입사했어요. 막상 들어가 일하는데 어디였는 줄 아세요? 생산직인 거 있죠? 완전 속았어요. 그땐 새벽 6시 출근해서 22시 30분까지 일했고 쉬는 시간도 없이 기계처럼 일했어요. 어떨 땐 코피도 쏟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죠. 그땐 그렇게 해야 하는가보다 했죠. 순진했지요. 뭐… 그렇게 5년 정도 일하다 93년 6월에 퇴사했어요."

-그것 때문에 삼성에 한이 맺혔나요?
"아니예요. 제 남편 문제로… 제 남편(송수근·44)도 삼성에 다녔어요.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결혼 했구요. 남편은 87년 9월에 입사했어요. 그러다 98년 9월에 해고 되었어요."

-왜, 해고되었어요?
"제 남편은 정이 참 많아요. 그래서 남 돕는 일에 적극적이죠. 98년 삼성SDI 부산공장은 구조조정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고, 남편은 그때 노사협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구조조정 움직임이 있음을 직감하고 15명의 노사협의위원 모두와 함께 외출증을 끊고 외출을 한 적이 있었어요. 삼성 사측은 그 사실을 알고는 다른 노사위원 14명은 모두 경주 세미나 보내고 난 후 속전속결로 강제 해고시켜 버린 것이죠. 그게 98년 9월경 일이예요.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었죠. 뭐 이런 회사가 다 있나 싶더군요. 해고 사유가 뭔줄 아세요? 무단 결근에 무단 외출이래요. 분명히 15명 모두 외출증 끊고 나갔는데도 14명에겐 정상처리 해주면서 유독 남편에게만 그런 어처구니 없는 누명을 씌워 부당해고 시켜 버렸어요. 그래서 더 억울해요."

-부당해고후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삼성은 정말 야비해요. 남편은 부당해고라 여기고 1인 시위에 들어갔어요. 며칠 후 승합차로 남편이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경주까지 끌려가 생매장 위협을 당했어요."

그녀는 갑자기 울먹이며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잠시 이야기는 멈추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후 복바친 감정을 추스렸는지 이야기를 계속했다.

"알고봤더니 고향 선후배들인 거 있죠. 기가 막혀서 말이 안나왔어요. 선배고 후배가 어떻게 고향 사람을 그렇게 할수가 있어요?"

-다른 일은 없었나요?
"해고후 1인 시위를 계속 했어요. 그때부터 10여명의 사측 노무과 직원들이 미행을 시작했어요. 또, 혼자 있을때 우르르 몰려나와 남편을 두들겨 팼어요. 그때 참 속상하더군요. 저녁에 집에 들어 오면 온 몸이 구타당한 흔적으로 피멍이 들어 있었지요. 남편은 그 몸으로 다음날 쓸 피켓을 다시 만들었어요. 사측 구사대가 피켓을 계속 못쓰게 망쳐놨거든요. 남편도 무술 유단자인데 럭비 선수했던 사람들 고용해서 구사대로 쓰니 그 우람한 덩치와 힘을 혼자서 당해낼 수가 있었겠어요? 매일 그렇게 30~40여명이 둘러싸고 두들겨 패더래요."

-구속도 되었나요?
"네. 부당해고 후 1년 9개월 정도 그렇게 1인 시위를 했어요. 그러다 2000년 6월 구속되었지요. 명예훼손,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으로 사측에서 고소했어요. 78일 감옥살이 하고 판사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하더군요."

-그래도 일찍 출감했네요?
"일찍은요? 죄없는 사람 가두어 둔 거죠. 그때 아이도 어리고 세상 물정을 모르다가 남편 구속후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더군요. 그래서 남편 뜻에 동참하기로 마음먹고 같이 투쟁에 나섰죠. 출감후 남편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포도장사를 했어요. 삼성SDI 공장 근처에서 자주 했는데 사측에서 다시 고소하더군요. 업무방해라나요? 포도장사를 가장하고 현장 노동자와 접촉을 시도했다는 이유래요. 그렇게 2001년 11월에 다시 구속되었어요."

그녀는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계속 이었다.

"2003년 4월에야 풀어 주더군요. 저는 날이 갈수록 화가 나다 못해 분노마져 치밀어 올랐어요. 아이를 등에 업고 삼성 회사 앞에 가서 남편 대신 1인 시위를 시작했어요. 얼마나 못되게 굴었으면 노사위원 네사람이 회사 안에다 불을 지르는 일까지 저질렀을까요? 그 노사위원 모두 구속되었고 지금은 다 회사를 떠났어요. 저는 남편이 나오는 날 남편을 만나자 맥이 풀려 기절해 버리고 말았어요.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더군요"

-힘들게 살아 오셨겠네요?
"스물 여섯에 결혼했어요. 4년 후 남편이 구속됐어요. 어린 자식 데리고 살길이 막막했어요. 피가 거꾸로 솟기 시작했지요. 삼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가 박박 갈렸어요. 삼성은 우리 가정의 파괴범이에요. 법 없이도 살 남편을, 어려운 사람 보면 못 도와줘 안타까워 하는 그런 착한 남편을 아무 이유 없이 해고하고, 감시하고, 미행하고, 도청하고, 폭행했어요.

저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요. 남편은 사측 노무 직원들로부터 집단 폭행도 당하고 감옥도 갔다오고 노숙 농성도 오래해서 그런지 2005년 7월에 목 디스크로 고생하다 수술을 해야 했어요. 지금도 목 디스크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고 온 몸이 병신이 다 돼버렸어요. 의사는 남편에게 장애 5등급 판정을 내렸어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남편은 마음이 너무 여려 탈이예요. 어떨 땐 남을 위해 헌신하러 태어난 사람 같아요. 저는 가정 주부라 그런지 가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남편은 가정에 너무 신경을 안쓰는거 같아요. 가정에 신경 좀 써 줬으면 하고, 건강도 중요 하잖아요. 자신의 건강도 좀 챙겨 가면서 했으면 싶어요."

-삼성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요?
"삼성이 먼저 잘못했잖아요? 아무 잘못 없는 남편을 부당해고 했고 그동안 당한 모욕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제 남편 원직복직 시키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진실성이 없는 거 같아요. 언론도 법도 자기편이잖아요. 힘 없고 빽 없는 사람 너무 무시 말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똑바로 살기를 바랍니다."

대화가 끝나고 가게 문을 나섰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지금 비디오 가게를 하지만 벌이가 안되어 가게를 내놓았다고 했다. 임대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는데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중간중간 감정에 복받쳐 그런지 대화가 끝났을 때까지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웃음꽃 필 날이 언제쯤일까? 그날을 기대하며….


태그:#노동, #비정규직, #삼성, #하청노동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