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녁나절,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패스트푸드점 한구석에서 춤을 추는 산타를 보았다.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산타에 건전지 힘으로 연결한 거였지만 귀에 익은 캐럴이 들린다. 그 귀여운(?) 산타를 보면서 나는 12월을 실감했다.

두툼했던 달력이 12월 달력 한 장으로 남아 달랑거린다. 한 해의 끝에서 만나는 12월. 이때쯤이면 뭔가 정리하고 다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올해도 첫 달을 시작하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의욕에 앞서 꾸리던 내 계획표가 떠오른다. 그 중에 특별한 것은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여 교육을 받고 실전경험을 했던 것이다.

대전에서는 마을마다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일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재작년(2005년) 3월, 중구 석교동의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이 개관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마을공동체 구축을 위한 작은도서관 자원활동가 교육에 이어 자원활동가의 모임이 결성되자 2006년 여름에는 마을어린이도서관 추진단 결성 제안과 회의에 들어갔다. 

올 여름, 대전 서구 도마동 어린이도서관만들기 추진모임에서 마을잔치로 열렸던 책 전시회. 배재대 근처 경남아파트 관리사무소 옆에서 열렸다.
▲ 책잔치에 모여드는 동네사람들. 올 여름, 대전 서구 도마동 어린이도서관만들기 추진모임에서 마을잔치로 열렸던 책 전시회. 배재대 근처 경남아파트 관리사무소 옆에서 열렸다.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주민이 함께 만들어 운영하는 마을어린이도서관은 현재 여섯 군데이다. 다정하고 정겨운 어린이도서관 이름은 모퉁이, 또바기, 해뜰, 알짬, 짜장, 짝꿍 등이다. 어린이도서관은 동네 아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어서 도서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책을 읽고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젖먹이 아기나 유아를 둔 엄마들에게는 어린이도서관이 사랑방 역할을 하며 육아정보를 서로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이 된다. 올해 3월, 어린이도서관협의회 창립총회를 첫걸음으로 여름에는 마을어린이도서관 만들기의 반딧불터사업단 개소식이 있었다. 10월에는 어린이도서관 ‘자원활동가 축제’로 마을마다 개성이 드러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책잔치 때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다.
▲ 읽어주면 더 재미있는 그림책들. 책잔치 때 '알짬'마을어린이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다.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가장 편한 자세로 책 속에 풍덩 빠진 어린이.
▲ 행복 가장 편한 자세로 책 속에 풍덩 빠진 어린이.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일반 공공도서관과는 달리 지역 주민들이 서로 모여 품앗이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을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아이들은 자원활동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나눔의 생활을 보며 자란다.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은 주변과 어른들이 성장하는 것이다.

매주 시간을 정해놓고 엄마들이 그림책을 읽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일 때만이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내 아이뿐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고 나누는 어린이도서관. 지금도 어린이도서관을 마을마다 만들어보려고 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있다. 도서관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만들고 나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더 중요하다.

대전 유성구 전민동 모퉁이어린이도서관 박미라 관장은 "도서관을 만든 것은 우리가 좋아서 한 일이지만,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남들도 좋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린이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지 어떤 즐거움을 줄지’ 끝없이 생각하는 일, 그 일의 한 부분에서 나도 한 해를 보내며 그 끝에 와 있다.

내년 봄, 그동안 주민들을 만나고 모임을 만들며 꾸준하고 부지런히 ‘공부’한 일곱 군데의 마을에 어린이도서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잘 키우기 위한 마을공동체가 될 어린이도서관.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이 말 속에는 내 아이가 자라는데 마을의 영향이 얼마만큼인지를 잘 보여준다. 경쟁을 부추기며 혼자 우뚝 서려고 하는 교육 분위기에 마을어린이도서관은 부모와 어린이가 같이 커가는 대안의 보금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나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다. 해마다 못 다한 일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후회되곤 했지만 지금 12월, 나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해주고 싶은 말 한마디가 있다.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다!”


태그:#어린이도서관, #마을공동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