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성장날, 추석을 하루 앞둔 떡집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유성장날, 추석을 하루 앞둔 떡집에서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대전 유성구에 9일 유성오일장이 섰다. 날씨는 쾌청하다. 명절을 하루 앞둔 재래시장 추석 대목은 냄새부터 다르다. 차가 붐비는 사거리 쪽 떡집에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직접 송편을 만들고 쪄서 파는 곳이다. 떡집과 기름집, 방앗간이 있는 곳도 때맞춰 붐빈다. 햇살이 따끈하다.

마트에는 채소가 랩이나 비닐에 담겨 있지만, 재래시장에서는 만져보고 살 수 있는 맨얼굴의 것들이다. 만져보는 채소를 장바구니에 담는 게 좋다. 양념거리로 붉은 고추와 대파, 무를 사러 왔다.

그동안 비가 자주 내려 채솟값은 재래 장에서조차 만만찮다. 장이 서는 골목을 돌다 보면 어느 땐 왔던 길을 또 오기도 한다. 한 바퀴 돌 때와 달리 두 번째는 보이지 않았던 괜찮은 물건들이 눈에 띄고 값도 만족스럽다.

점심때가 되자 시장 안쪽에 있는 국수와 보리밥을 파는 곳엔 자리가 꽉 찼다. 안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밖에 자리를 잡는다. 그곳을 지날 때 모서리에 앉은 머리가 하얀 할머니 한 분이 국수 가락을 입에 넣는 걸 보았다. 한눈에 봐도 할머니는 부실한 치아 때문에 국수를 시킨 것 같았다. 나는 왠지 머리가 온통 백발이었던 엄마 생각에 뒤를 한 번 돌아보고 다시 걸었다.  

사람들 손에는 거의 물건을 산 봉지들이 들렸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밥을 먹으며 장사를 하기도 했다. 어떤 젊은 아빠는 자기 아이를 포터에 태우고 장을 보러왔다. 장에는 찬송가를 틀어놓고 배를 밀며 구걸하는 노인이 늘 있다. 돈을 넣는 바구니엔 동전과 1000원 지폐 두어 장이 들어있다.

노인이 배를 조금 밀다가 멈추더니 박카스 뚜껑을 열려고 했다. 엎드린 채로 한 손이 계속 뚜껑 옆으로 헛나갔다. 그걸 본 상인 한 분이 "이리 줘바요. 따드릴게"한다. 그 앞을 지나던 아주머니가 되돌아와 지폐 한 장을 바구니에 넣었다. 한 개에 5000원 하는 무는 크고 실했다.

국수가게의 할머니
 
배추 한 포기 12,000원. 너무 귀해진 배추.
 배추 한 포기 12,000원. 너무 귀해진 배추.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국거리에 한 번 넣기엔 너무 컸다. 게다가 비쌌다. 다시 골목을 돌아 아주 적당한 무를 발견했다. 가격도 만족스러웠다. 만들어 파는 반찬가게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시금치 한 근은 6000원, 시금치 나물은 한 팩에 8000원이다. 같은 양으로 마트에서는 1만 원이다. 어떤 손님이 '이번엔 시금치 먹지 말지 뭐'하며 지나갔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또 다른 곳은 녹두 부침개를 파는 곳이다. 부침개는 한 개 6000원, 포장 반죽도 6000원이다. 반죽을 집에서 부치면 두 개가 나온다. 나도 이곳에서 종종 녹두 부침개 반죽을 샀다. 엄마가 좋아했던 녹두 부침개, 기름 냄새도 뒤따라오는 것 같더니 국수골목에서 사라졌다.
  
국수가게에서 아까 국수가락을 빨아올리던 할머니를 정면으로 보게 됐다. 흘러내린 흰머리를 뒤로 넘기던 할머니가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며 1000원짜리 세 장을 손에 쥐고 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여기 앉았던 사람이 할머니 거 계산하고 갔어유."
 할머니는 그 말을 잘 못 알아들었는지 엉거주춤 일어나며 되물었다.

"뭐라구? 내 국수 값을 누가 낸 겨?"
주인은 바빠서 말할 짬이 안 나는지 큰 소리로 말했다.
 
"암튼 할머니는 계산됐으니까 그냥 가시믄 돼유."


주인이 재차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먹은 국수를 나도 모르는 사람이 왜 계산했을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겼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등이 굽은 할머니는 오늘 같이 맑은 날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걸어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에 둥근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추석이었다.
 
추석 하루 전, 떡집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
 추석 하루 전, 떡집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국수와 보리밥 등을 파는 곳. 손님들은 주로 밖에서 먹는다.
 국수와 보리밥 등을 파는 곳. 손님들은 주로 밖에서 먹는다.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한과, 약과도 있어요.
 한과, 약과도 있어요.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점심도 하고 물건도 팔고...
 점심도 하고 물건도 팔고...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녹두부침개를 기다리는 손님들.
 녹두부침개를 기다리는 손님들.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반찬가게에서 장 보는 손님.
 반찬가게에서 장 보는 손님.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무 한 개 5,000원. 오이는 세일가격 4개 3,000원.
 무 한 개 5,000원. 오이는 세일가격 4개 3,000원.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무 한 개 천원. 조금 작지만 괜찮아요.
 무 한 개 천원. 조금 작지만 괜찮아요.
ⓒ 한미숙

관련사진보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