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주도 문섬, 수심 8미터. 다이버들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물빛은 푸르고 다이버들의 동작은 한가롭게 보인다. 그러나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곳은 조금만 방심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 하강하는 다이버들 제주도 문섬, 수심 8미터. 다이버들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고 있다. 물빛은 푸르고 다이버들의 동작은 한가롭게 보인다. 그러나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곳은 조금만 방심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 장호준

관련사진보기


물속에서 사분 오십초를 견디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는 수심 3m 쯤 내려가 바위를 붙잡고 이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을 세울 때 바깥에서 시간을 재고 있던 우리들은 2분이 지나고 3분이 가까워지자 드디어는 참지 못하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혹시나 바위에 붙어서 이 녀석이 죽어버린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기록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

영화 <그랑블루>는 프리다이빙에 집착하는 두 다이버에 대한 영화이다. 거기서 나오는 다이빙은 무호흡 다이빙(freediving)이다. 입수부터 나올 때까지 숨을 쉬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압축공기를 쓰는 스쿠버다이빙과는 다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몇 개의 프리다이빙 동아리가 있고 프리다이빙 협회도 두어 개가 있는데, 서로 경쟁이 붙어 서로의 기록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프리다이빙에도 몇 가지 종목이 있다. 불변웨이트 방식과 가변웨이트, 그리고 무제한급이다. 불변웨이트와 가변웨이트는 부력을 이기도록 하는 웨이트를 차고 밑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같지만, 불변웨이트는 바닥에 도착한 뒤에도 차고 올라오고, 가변웨이트는 버리고 올라온다는 게 차이점이다. 무제한급은 어떤 방법으로 하던지 관계없다. 그러니까 내려갈 때 하강 썰매를 몇 kg으로 하던지 올라올 때 공기주머니를 부풀려 올라오던지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역대 프리다이빙의 세계기록보유자들인 피핀, 잭 마욜(<그랑블루>의 실제모델) 지안루카 제노니, 타냐 스트리트 등이 각 부문에서 세운 잠수기록은 122m~162m이다. 그들이 그 깊이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2분에서 3분 사이이다.

피핀의 아내도 역시 프리다이빙 세계 챔피언이었다. 그녀는 작년에 다시 기록에 도전하다 목숨을 잃었다. 몇 년 전에는 트라이 믹스 다이빙(혼합기체통 6-9개를 달고 하는 다이빙) 세계기록 보유자(잠수 깊이 254m)인 영국의 한 다이버가 우리나라에 초청되어 광양만에 침몰한 유조선 인양을 위해 조사를 하다가 그가 세운 기록에 대면 접시물 수준인 수심 35m에서 실종되었다.

이들은 물속에서 대부분 6분 이상을 견디는 폐를 가지고 있다. 보통사람 두세 배 정도의 폐활량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물속에서 인간이란 미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다. 만약에 사고로 일 분 정도 숨을 쉬지 못한다면 누구라도 죽음의 문턱 앞으로 가야 한다. 물론 위에서 말한 사람들이야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는 일반적이 아니니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다.

바꾸어 말하면 기록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이들이 세운 각종 다이빙 기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깨어지고 있을지 모르니까.

수심 30m서 죽음의 고비 넘긴 다이버

보통사람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남의 인생을 나의 잣대로 잴 수는 없다. 인생은 지극히 주관적이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니까.

내가 아는 어느 다이버는 서귀포 문 섬에서 다이빙을 하다가 공기가 떨어져 버렸다. 당시에 그가 가지고 있던 게이지가 고장을 일으킨 것이었다. 수심은 30m, 그는 당시에는 초보다이버였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공포가 극에 달한 순간, 한 다이버가 옆에 나타났고 그의 도움으로 짝 호흡(마우스피스를 주고받으며 서로 번갈아 숨을 쉬는 것)을 하면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 초보다이버는 자신을 구해 준 다이버의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게 이상하게 보였던지 수군거렸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김 교수가 내보담 두 살 적어요, 그래도 내가 심부름 해줍니데이, 지가 머라카마 내 두 수는 접어줍니다. 지금까지 같이 다이빙 댕기며 가방모찌 안 함니꺼.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지가 전시회 한다캄서 돈 모지랜다카마 돈도 꾸주고……,"

목숨을 건진 다이버가 자신에게 공기를 나눠주었던 다이버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필리핀, 폐스카도르 아일랜드, 수심 25미터. 동굴 안쪽에서 앵글을 잡았다. 다이버와 입구가 실루엣으로 잡혔다.
▲ 수중동굴 필리핀, 폐스카도르 아일랜드, 수심 25미터. 동굴 안쪽에서 앵글을 잡았다. 다이버와 입구가 실루엣으로 잡혔다.
ⓒ 장호준

관련사진보기


농아 다이버들, 수화 이용해 물 속에서 자유롭게 대화

사람이 물 속으로 들어가면 물 속에도 인생이 생긴다. 사람의 삶이 있는 곳에 인생이 있고 추억이 있고, 흔적이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또 사람이 살아가는, 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물 속이다 보니 다이버들끼리의 의사소통은 간단한 수화를 쓴다. 세계 공통의 다이버 수화가 있다. 그 말들은 아주 간단하다. 가령 춥다는 표시는 두 팔을 가슴에 X자로 갖다 대며 떤다거나, 공기가 떨어지면 자신의 목을 손으로 자르는 시늉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는 긴박한 순간에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수면 위에 떠서 배를 기다리는 시간, 배 위에서 물 위에 떠 있는 다이버의 상태를 확인하려면 말소리는 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두 손을 머리 위에서 둥글게 맞잡으면, '괜찮은가?'라고 묻는 말이 되고 상대도 그와 같은 표시를 하면 O.K 즉 괜찮다는 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도가 한계다. 대부분의 다이버들은 몇 개의 수화방법 외에는 모른다. 또 내가 아무리 잘 알아도 상대가 모르면 쓸 수 없는 것이다. 플랑크톤이 많아 물이 흐린 탓에 시야가 상대적으로 막혀 있고, 그로 인해 단독행동이 많은 우리나라 다이빙 현실로서는 수화를 쓸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수화의 필요조건은 일단 보여야 되는 것이니까.

한 번은 농아들과 마주친 적이 있다. 일본의 다이버들이었는데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여자다이버들이었다. 우리는 같은 버스로 이동을 하게 되어서 필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들이나 우리나 영어의 밑천이 빤하다 보니 금방 대화가 바닥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일정에 맞춰 다이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동굴 다이빙에서 우리는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농아들이 다이빙을 한다는 것이 다소 신기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일정이 다르다 보니 그때까지는 만나지를 못했었다.

동굴다이빙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지원자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농아들이 몇 명 나와 있었다. 우리들은 가벼운 목례를 건네고 가이드의 뒤를 따라 물로 들어갔다.

가이드 한 명이 앞장을 서고 농아들이 그 뒤를 따르고 다시 우리가 그 뒤를 이었다. 한 명의 가이드다이버가 후미를 맡았다. 그런데 앞에 가던 농아들이 분주히 손발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본 순간에는 '대체 쟤들이 왜 저런 불필요한 동작을 할까? 다이빙에는 아직 초짜들이군'이라는 얼빠진 생각을 했었다.(초보자들의 특징은 물속에서 쓸데없는 동작을 해서 자신의 힘을 빼는 데 있다) 그러다가 나는 알았다. 그들은 물속에서 수화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들을 아주 신기해하며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그들에게는 물속도 대화를 나누기에는 육지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물속에서 대화를 자유자재로 나눈다는 것은 대단히 편리하고 안전한 다이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이버에겐 정말 부러운 일이다. 지금은 통신장비가 나와 있지만 가격이 장난이 아니어서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농아들은 마치 가벼운 산책을 즐기는 것처럼 온갖 말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한 가지 불편한 것이 모든 것이 불편하다는 말은 아닌 것 같군, 맞아 인간만사 새옹지마 라더니..."

물론 이 말은 물밖에 나와서 우리 일행이 한 말이다. 새옹지마라는 거창한 말까지야 어울리지 않은 일일지라도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상대적으로 답답한 가슴을 안고 그들의 뒤를 따랐었다.


태그:#수중동굴, #다이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