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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출발

 

해뜨기 직전 집을 나선다. 해가 뜰 때를 기다렸다가 집을 나서는 것이다. 세월은 겨울로 달리고 있어 갈수록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진다.  옷을 입고 헬멧을 쓰고 배낭을 짊어진 다음 이층 베란다에 있는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내러와 아파트 마당을 가로 지른다.

 

여명의 새벽, 동해를 마주하며 윈 쪽으로  핸들을 틀어 마을길로 들어서면 자지러 질것 같이 개가 짖어댄다. 놈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지만 아직 새벽 단잠에 빠져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페달을 밟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마을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손바닥 만 한 항구가 있고 마등(항구의 남쪽 외등대)이 깜빡이고 있다. 벌써 어선들은 바다로 나가 수평선 안 쪽 여기저기 그들이 밝혀 놓은 불빛들이 바다를 수놓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일단의 아주머니들이 나와 고기를 손질해 말리고 있는 곳을 조심스럽게 지나 해안가를 벗어나면 들판이다.  바다에만 목을 매는 전업 어부들도 있지만 대체로 어부들은 농부를 겸하고 있다. 해안선 안쪽은 들판이기 때문이다.  여름 같지 않았던 여름이 지난 지금, 가을 들판의 곡식들이 제대로 익으려면 많은 햇볕이 필요하지만 해안가의 날씨의 변덕은 아가씨 마음과 같다고 했던가. 햇볕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들판에도 이미 부지런한 농부들이 여기 저기 보인다. 나는 그 사이를 미안한 마음으로 지나간다. 새삼 이들을 다시 보게 되는 요즘이다. 사람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은 결국 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 코스

 

반환점은 10키로 전방의 한 산골 동네 느티나무 아래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이다. 이 세상의 가장 낮은 지대인 해안에서 시작해서 가장 높은 동네인 산으로 들어가는 코스이다. 이곳으로 사월에 이사를 왔으니 어느 새 6개월이 되어간다. 산 아래 초입에는 불국사의 말사인 신라시대에 창건한 유명한 사찰이 있다. 원래는 이 사찰의 입구를 반환점으로 삼았으나 여기까지 올라와도 아무래도 미진한 구석이 남는 것이었다. 남는 에너지가 배가 잔뜩 부를 때처럼 불편해 씩씩거리고 있는 것을 본 사찰 입구의 검표원 아저씨가 권했다.

 

"저 길에 한번 도전해 보시지요."

 

'저 길'은 사찰담장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나는 다음날 도보로 그 산길을 답사했고 그 다음날 그 길에 자전거로 도전했다.

 

2년 전 나는  대구에서 경주 감포를 거쳐 해안도로를 따라 통일전망대를 다녀 온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벅차다 싶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걸었다. 자전거로 그런 장거리 여행을 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허나 시간이 갈수록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올바른 방식이 아닌 것 같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다른 사람들도 눈여겨보게 되었고 이리저리 귀동냥도 하고 얻은 결론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어느 것이 올바르다는 것이 있겠는가마는 남들 하는 것처럼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무대뽀에 독불장군인 내 성격상 특징을 이제는 한번 극복해보자는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해서 그때까지 사용하던 통일전망대까지 끌고 갔던 인터넷에서 산 십삼만 원짜리 이제는 녹이 쓴 자전거는 잘 닦아 아파트 현관에 보관하고 기백 한다는 자전거를 한 대 마련했다. 허나 그걸 사고 나서도 '뭘 몰라서' 행태는 예전과 별 달라진 게 없었다. 잠바입고 운동화 신고 인근 50키로 이내는 내 집처럼 드나들었지만 오르막을 만나면 여전히 끌고 걸었다. 무뇌아처럼, 타성에 젖어, 여전히 끌고, 땀을 팥죽같이 흘리면서, 쩝.

 

그러다 서울의 청계산 이수봉을 따라 갔다가 거기서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만났다. 충격이었다. 그는 나이 지긋한 사람이었다.

 

'저 사람이 한다면 나라고 못할 리가.'

 

독불장군의 불리한 점은 넘보다 뭐든지 늦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찰의 검표원 아저씨의 말이 내 마음에 불을 질렀다.

 

산길은, 사찰을 비껴 산골 마을로 통하는 길이다. 산허리를 넘어가는 자동차도 켁켁거리며 넘어가는 약 2키로의 길이다. 그 길이 이제는 내 자전거타기 코스 중 백미다. 이 길이 없는 이 코스를 이제는 생각 할 수 없다. 새벽 이 길은 자동차마저 한적하다. 바람도 여지없이 상쾌하다. '거 뭐시냐? 절로 들어가는 입구는 아름드리 나무도 많아서 '피똥치크' 라나 뭐라나 그것도 많은 갑더라' 그 길을 걷는 스님의 말씀이었다.

 

복장도 갖춰 입었다. 장례식에 갔다가 만난 내게 자전거를 판 친구가 물었다.

"요즘 열심히 타냐? 옷은?"

"맹 그대론데, 나이도 있고 해서리……"

온몸에 딱 들어붙는 자전거 옷은 아무래도 거시기 해서 그때까지도 안 입고 있었다.

"인마, 복장부터 갖춰야지, 그거 입고 마스크 쓰면 늙었는지 젊었는지 몰라."

 

그래서 인터넷을 풀방구리 쥐 드나들듯 하며 옷도 구입하고 머리를 별로 보호 할 것 같지도 않은 이상하게 보이던 헬멧도 구입했다. 헌데 얼라리오! 복장을 갖추고 나니 마음도 달라졌다. 나이 들어 삼가던 얄궂은 디자인의 화려한 옷들도 입을 수 있고 거기다 내 단단한 허벅지를 자랑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그런 옷을 입는 것이 기쁨이다. 행동도 조심스러워진다.

 

이 길을 이곳 동해안으로 이사 오고 나서 75회 정도 달렸다. 약 이십 키로다. 이젠 이 길이 기쁨이요 영광이다. 중독된 것이다. 육체적 고통 속에는 기쁨도 있다. 일이 있어 사흘 정도만 쉬면 불안해지는 게 단점이다.

 

3. 만나는 사람들

 

처음 이 길을 코스로 정하고 올라가고 있던 중에  자전거를 타는 같은 목적의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면소재지에서 이발관을 하는 분이었다. 첫날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를 가늠해보느라 은근하게 온 힘으로 페달을 밟았었다. 물론 지금 나는 그분의 단골이다.

 

이 분과 절의 입구에서 헤어지고 (이 분은 거기서 돌아간다)산길로 들어서면 세분을 만난다. 두 분은 입구 절의 스님이고 한 분은 여자 분이다. 이분들은 절의 입구에서 고개를 넘어 느티나무아래 반환점까지 걷는 분들이다. 때로는 중간에서 혹은 산의 초입에서 아니면 반환점에서 만난다. 한적한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서 그냥 지나치려면 아무래도 멋쩍다. 그래서 누구라도 만나면 불문곡직하고 인사를 하는 게 오랜 나의 습관이다. 그래서 처음 이분들과 만났을 때도 무조건 인사부터 했는데, 세분은 또 그게 좀 멋쩍었던 모양이었다.

 

나보다 많이 어리게 보이는 여자 분은 몇 번 수줍은 듯 피하다가 이젠 서로 안부를 묻는 정도가 됐다. 여자 분도 산 아래 동네로 이사를 온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단다. 한 번은 내가 향로봉을 올라가고 싶어 길을 물으니, 자기는 몸이 안 좋아서 거기까지는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새벽 산길을 매일 걷는 이분의 표정은 무척이나 행복하게 보인다. 그녀는 어떤 때는 손바닥을 치면서 산길을 올라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온 우주의 정기를 마음껏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나이 지긋하게 보이는 큰스님은 아직도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지만 나름 내게 관심이 있었든지 한 번은 느티나무아래에서 만난 산골동네의 농부들에게 다짜고짜로 나를 소개했다.

 

"여기 이 사람이 말이오, 저기 산길을 자전거로 올라오는 분이오. 대단하지. 암, 대단해"

세속을 떠나신 지 오래 되신 모양으로 자전거기어의 효능을 모르시는 게 틀림없다. 나는 조금 쪽 팔려서 고개를 숙였다.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한 스님은 '진순'이라는 이름의 진돗개 한 마리와 동행을 하는데 나름 상냥한 분으로 만나면 이것저것 묻기도 하고 스님 자신이 아는 다른 길도 가르쳐 주시곤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각에 출발을 하지만 산길 어디쯤에선 반드시 스친다. 더구나 나는 자전거를 타니 두세 번은 스친다. 지나쳐갔다가 돌아오니까. 몇 억겁쯤의 인연임이 틀림없다.

 

4. 돌아오는 길.

 

어렵게 올라 간 산길을 내려 올 때도 어렵게 내려 와야 한다. 워낙 꼬불꼬불하고 경사가 져서 속도를 내기 힘들다. 온 체중을 손바닥으로 감당해야하고 브레이크를 놓을 수가 없다. 긴장하지 않으면 자칫 큰 부상을 당할 염려도 있다. 사찰 입구에서 집까지의 길은 넓은 아스팔트 도로이고 차들도 거의 없어서 제대로 스피드를 즐길 수 있다.

 

처음 몇 달은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스피드를 즐겼는데 그것도 늘 하다 보니 시들해졌다. 주마간산 식으로 흐르다보니 주위도 궁금해져서 이젠 반환점에 도착해서 돌아 올 때면 어느 정도 자전거를 끌면서 걷는다. 자전거를 타기 전 일 년을 꼬박 걸어 다녔으니 걷는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걸으면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끌고 걸으면 길가에 핀 야생초를 카메라에 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길을 오가며 자연의 고마움을 절절히 느낀다. 살아가자면 어쩔 수 없이 자연을 파괴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파괴만을 하고 가야한다. 정치권만 바라보면 속이 뒤집히다가도 자전거를 타고 자연 속으로 묻히면 그건 어느새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태그:#자전거,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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