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옛날 선원이 있었던 자리인 문수전.
 옛날 선원이 있었던 자리인 문수전.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두 권의 책이 길라잡이 노릇을 한 오대산 여행

일주일 전, 나는 오대산에 다녀왔다. 산자락엔 비 내리고 있었다. 단풍이 꽤 아름다웠다. 그러나 난 거기에 단풍 구경을 간 게 아니었다. 내가 읽었던 두 권의 책에 쓰인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것이다. 두 권의 책이란 정시한(1625~1707)이라는 조선시대 선비가 쓴 <산중일기>라는 책과 지허 스님이 쓴 <선방일기>라는 책을 이르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허 스님에 대해선 자세히 알려진 바 없다. 서울대 출신 스님이라는 사실과 <선방일기>라는 책이 1973년 봄 <신동아>의 논픽션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라는 사실 외에는. 지허 스님은 현대를 살았던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사람인 정시한의 행적보다 훨씬 덜 알려졌다는 건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여간 이번 나의 오대산 여행에서 두 책은 길라잡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두 책 덕택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오대산 자락에 있는 암자들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수시로 비교하며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책은 모두 일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정시한의 <산중일기>가 일기라기보다는 여행의 기록인데 반해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는 동안거(음력 10월 보름부터 이듬해 정월 보름까지) 동안 선방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지허 스님의 책이 일기의 본색에 좀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산중일기>가 보여주는 풍경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방일기>가 보여주는 세계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선방이라는 게 워낙 외부와 담을 쌓은 자폐적인 곳이기 때문이다. <선방일기>가 탄생할 당시 선원이었던 상원사 문수전 앞에 선 채로나마 빈약한 상상력을 짜내어 옛날을 '복원'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불교와 스님들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선방일기>

<선방일기> 표지.
 <선방일기> 표지.
ⓒ 여시아문

관련사진보기


"나는 오대산의 품에 안겨 상원사 선방을 향해 나아갔다. "

<선방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진부 정류소에서부터 걸어서 상원사에 도착한다. 어느 해인지 알 수 없지만, 하여간 10월 4일(음력)의 일이다. 그리고 '꿀맛'인 감자밥을 먹는 것으로 선방 생활의 첫발을 내딛는다.

선방에 든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김장 담그는 일과 메주 쑤기, 땔나무 장만하기였다. 10월 15일,  마침내 결제가 시작되었다. 각자 결제 기간에 해야 할 소임을 맡는데, 그가 맡은 건 땔감 담당인 부목이었다. 스님들은 "백천간두에 서서 진일보하겠다"라는 결기로 가득차 있다.

다섯째 날의 일기에서 그는 '선방의 생태'에 대해 쓰고 있다. 그가 객관의 눈으로 바라보는 선방 생활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이다.

철저한 자기 본위의 생활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극히 비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비정한 자기 본위의 생활에 틈이 생기거나 흠결이 생기면, 수도는 끝장이 나고 선객이 태타(怠惰)에 사로잡힌 무위도식배가 되고 만다. 자기 자신에게 철저하게 비정해야만 견성이 길이 열리는 것이다. -10월 20일치 일기

그리고 "진실로 이타적이기 위해서는 진실로 이기적이어야 할 뿐이다"라고 쓴다. 아마도 이 글의 문장 부호는 마침표가 아니라 물음표일 것이다. '선객의 운명'과 '포살'에 대해 쓴 다음 일기는 선방의 풍속으로 넘어간다.

이 장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뒷방 조실'이라는 존재다. '큰방 조실'은 절에서 가장 존경받는 큰 어른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뒷방 조실'은 아픈 곳이 있어 수행에 태만하면서 언변이 좋아서 그것으로 선방의 분위기를 이끄는 스님을 일컫는 조롱 섞인 말이다.  '뒷방 조실'의 존재가 성(聖)이나 속(俗)이나 사람살이는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본능과 선객'이라는 소제목을 단 11월 15일치 일기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그가 선방에서 받는 하루 급식량은 세 홉에 불과하다. 식욕이 왕성한 젊은 스님들이 동짓달 긴 긴 밤을 나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그래서 초하루와 보름엔 별식을 해먹자는 결의를 한다. 별식은  팥죽과 찰밥 등이다.

그러나 별식을 먹고 나면 스님들은 해우소를 들락거리기 일쑤다. 굶다가 느닷없이 과식하면 설사가 나는 이치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회의하던 그는 옆자리 지객 스님과 본능에 대해 견해를 나누기도 한다. 결국은 "다사(多思)는 정신을 죽이고, 포식은 육체를 죽인다"라는 결론에 이르고 말지만.

그렇게 달포가 지나자 차츰 선객의 우열이 드러난다. 화두에 몰입하는 스님도 있지만 방선하는 죽비 소리만 기다리는 스님도 있다. 그는 "훌륭한 선객은 화두에 끌려다닌다. 절대로 끌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화두는 견성의 목표가 아니라 방편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화두가 좋으니 나쁘니, 화두다 아니다라고 시비함은 미망일 뿐이다"라고 덧붙인다. 

마침내 섣달에 들어서자, 용맹정진이 시작된다. 수면을 거부하고 장좌불와 한다. 그렇게 주야로 일주일 동안 사생결단하듯 정진하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자 몸이 약한 스님 두 분이 탈락했다. 사흘이 왔다. 용맹정진의 마지막 고비다. 저녁이 되니 뼈마디가 저려오고 신경이 없는 머리카락과 발톱까지도 고통스럽다. 수마는 전신의 땀구멍으로 쳐들어온다. 화두는 여우처럼 놀리면서 달아나려 한다. 입맛은 소태 같고 속은 쓰리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94쪽

선수행의 고통이 읽는 나에게까지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한편, 용맹정진에서 탈락한 스님들은 자포자기 끝에 점점 나태해진다. 무사히 넘긴 스님들은 더욱 공부에 박차를 가한다.

별식에다 장난치는 스님들의 이야기, 선객의 고독과 위선 등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새 결제의 마지막 날에 이르게 된다. 선방에서의 햇수를 거듭할수록 타의에 의해 끌려가는 것 같다는 지객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결론처럼 이렇게 말한다.

순간의 생명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어찌 순간인들 화두를 놓을 수가 있습니까. 화두를 놓으면 중생이요, 화두를 잡고 있는 한 열반의 길에 서 있는데…. -130쪽

지허 스님이 구사하는 문장에는 별반 군더더기가 없다. 자신을 애써 감추려는 거짓된 포즈도 없다. 수행에 몰두하지 못하고 한눈을 파는 스님들에게 냉소적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숨 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선방일기>는 불교와 스님들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책을 읽다 보면 방부니 공사니, 올깨끼니 늦깨끼니 하는 일반인에게 생소한 불교용어와 소임에 따라 달리 부르는 스님의 명칭 따위를 덤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신적 사표가 출현을 하기를 고대하며

영산전 옆으로 자리를 옮긴 청량선원. 오대산의 옛 이름은 청량산이며, 선원 이름은 거기에서 따온 것이다.
 영산전 옆으로 자리를 옮긴 청량선원. 오대산의 옛 이름은 청량산이며, 선원 이름은 거기에서 따온 것이다.
ⓒ 안병기

관련사진보기



지허 스님이 동안거 했던 선원이 있던 자리는 현재 문수전이라는 전각으로 바뀌어 있다.  선원은 새로 지어 영산전 옆으로 이사 갔다. 대문께에서 빠끔이 들여다 본 선원은 아주 정갈했다.

<선방일기>에는 하루 주식이 선객 일인당 세 홉이라거나, 한 사람의 선객이 일 년에 소비하는 돈이 2만 원이면 족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제 그런 궁핍은 한갓 옛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걸까. 식부족, 옷부족, 잠부족 등 이른바 '3부족(三不足)'은 철 지난 바닷가 같은 이야기인가.

지허 스님은 <선방일기> 속에서 선객들에게서 느낀 추함과 치부를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의 글에서 풍기는 환멸의 냄새가  코를 찌를 지경이다. 그러나 어찌 환멸이 승가의 일뿐이겠는가. 환멸이란 우리네 삶 구석구석에서 곰팡이처럼 자라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스님들의 이야기를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네 속인들과는 얼마나 다를까 하는 호기심 때문인가? 아무래도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런 고된 수행을 통해서 이 시대의 정신적 사표가 될 수 있는 스님이 출현하기를  고대하는 갈증 때문일 것이다.

엊그제 열렸던 경북 문경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 대법회는 그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예전 문경 봉암사 결사를 거쳐서 성철 스님 등 얼마나 많은 고승대덕들이 나왔던가.

"세속의 칠십 노파가 산문의 홍안 납자에게 먼저 합장하고 고개 숙이(37쪽)"는 것은 스님이 욕망을 버린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지허 스님의 말은 대단히 함축적이다. 결코 스님들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수행자의 겉모습을 하고서 속으로 돈과 명예를 추구한다면 그런 사람은 불자가 아니라 가사(袈裟) 입은 도둑입니다"라는 엊그제 길상사 가을 법회에서 법정 스님이 하신 말씀이나 맥락이 같은 말이 아닐는지.

비록 '금지구역'인 선원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을지라도 상원사에 다녀와서 다시 지허 스님의 <선방일기>를 읽는 마음은 감회가 새롭다. 청빈함으로 자신을 닦고 내적으로 충일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대중의 욕구는 언제나 채워질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선방일기/ 지허 스님/ 여시아문/ 5,000원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견동한 그림, 불광출판사(2010)

이 책의 다른 기사

더보기
선승의 위선 결과는...

태그:#선방일기 , #지허 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