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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02년 12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제16대 대통령후보 초청 첫 TV합동토론회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기호 4번'을 의미하는 손가락 4개를 높이 들고 있는 당 지도부에서 노회찬 의원과 천영세 의원이 보인다.
▲ 2002년 대선 지난 2002년 12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제16대 대통령후보 초청 첫 TV합동토론회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기호 4번'을 의미하는 손가락 4개를 높이 들고 있는 당 지도부에서 노회찬 의원과 천영세 의원이 보인다.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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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2002년 대선 때 나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담당기자였다. 마지막 한 달 정도는 전국 각지를 누비고 다니던 권 후보 동행취재를 했다.  여의도에 있던 민주노동당사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 부산·목포·포항·여수 등 남쪽 끝까지 10여 차례 이상 유세를 해가면서 내려가는 일정을 반복했다.

검은색 소나타 두 대에는 후보와 수행비서·경호와 차량 에스코트를 맡은 파견 경찰이 나눠탔고, 콤비버스 한 대에 지원유세단과 문선대(문화선동대), 기자들이 탔다. '기자들'이라고 해봐야 나와 민주노동당 기관지 기자들만 있는 때가 많았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드문드문 취재를 나왔다.

당시 후보의 유세 상황 등 동정을 최대한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지금처럼 무선 모뎀이나 와이브로가 없었기 때문에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조금 전의 유세 상황 기사를 쓰고 플로피 디스크에 담아 다음 유세장소 근처 PC방에서 송고하곤 했다. 길면 20분 정도 머무르는 유세장소에 도착하면 PC방을 찾는 게 가장 급한 일이었다.

달리는 버스, 그것도 엔진 소리가 그대로 전달되는 낡은 버스 안에서 기사를 쓰다 보면 멀미 때문에 노트북을 접기도 했지만, 유쾌한 기억들이 많다.

비서 깨워주는 후보... 62세의 '체력 짱' 권영길

강행군 속에 '체력'짱'은 당시 62세였던 권 후보였다. 아침에 가장 먼저 옷을 갖춰입고 나오는 것은 그였다. 전날 술을 먹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권 후보가 출발준비를 마치고 가방을 들고 나서자, 그 때서야 잠이 깬 비서들이 내복 차림으로 복도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반신욕이 권 후보의 비결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특히 민주노총 위원장답게 공장에 가면 더욱 힘이 넘쳤다. 육중한 기계들이 무섭게 움직이는 작업장을 업무에 방해되지 않게 악수를 나누면서도 잘 빠져나갔다. 기자들 특히, 사진기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권 후보는 "공장 유세를 나처럼 할 수 있는 후보는 없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한 번은 서울로 돌아오던 밤길에 갑자기 평택에 일정이 생겨 급하게 모텔에 들어갔다. 짐을 내려놓고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더니, 남녀 투숙객들이 황급히 모텔을 나갔다. 주인에게 물었더니 "권영길이 오는 줄 알았으면, 안 받는 건데…"라고 투덜거렸다. 혹시 하는 생각에 '아름답지 못한 사연'으로 모텔에 들어온 이들을 내보낸 것이었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유세장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졌다. 악수와 사인요청이 늘어났고,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수행 경찰들의 자랑 "우린 후보와 같은 상에서 밥 먹는다"

17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 2004년 5월 31일, 당시 당대표인 권영길 의원이 다른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함께 국회 본관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 2004년 총선 17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 2004년 5월 31일, 당시 당대표인 권영길 의원이 다른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함께 국회 본관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 권박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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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나 국도에서 행정구역이 바뀔 때마다  매끄럽게 지역경찰들이 인수인계를 하면서 길안내를 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1박할 때는 "테러 첩보가 들어왔다"면서 숙소 앞에서 경찰차 한 대가 밤새 대기하기도 했다.

수행단 입에서 "감옥가고 경찰하고 투닥거리는 게 일이었는데, 이렇게 경찰 보호 속에 잠을 자다니…"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수행 경찰은 4명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처음에는 이들의 경호를 거부했으나, 경찰의 끈질긴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찰'을 우려해 정보나 경비 쪽 출신자는 배제하고 수사파트에서만 받아들였다.

안면이 트인 뒤 수행 경찰들은 "우리도 경찰 내에서는 '빽'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회창 후보나 노무현 후보 쪽에 나가있는 (경호 경찰) 친구들한테 '너희도 후보하고 같은 상에서 밥 먹냐'고 한 마디씩 한다"고 했다. 이들도 자신들이 경호하는 후보가 바람을 일으키는 것에 힘이 나는 모습이었다.

"후보가 되는 과정에서 (운동진영) 어른들이 권 후보를 너무 홀대했다, 단체대표 정도로 대접하기도 했다"고 불만을 나타내곤 했던 수행비서들도 신바람이 났다.

'빨갱이들 주장'으로 치부되던 목소리가 수면 위로, 안방으로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권영길과 민주노동당은 새롭게 느껴졌고, 가능성 있는 집단으로 여겨졌다.

당시 권 후보는 95만여표를 얻어 진보정당 운동의 숙원이었던 100만표에는 실패했지만, 이 때의 선전이 2년 뒤 총선에서 원내 10석 획득이라는 성과의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그 뒤 5년... 여건은 좋아졌지만 상황은 어렵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권 후보는 다시 대선 후보가 됐다. 1997년 국민승리 21에서 첫 출마한 이래 세 번째다.

상황은 엄청나게 달라졌다.  '대선후보 TV토론 참가'를 따내는 것이 최대 전략이고 목표였던데 비해 이번에는 당내 경선 토론과 대선후보 선출대회도 공중파 방송과 인터넷 매체를 통해 생중계할 수 있었다.

3개월 연속 당비를 내는 당원만 5만명이 넘었고, 대선 예산도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났으며, 권 대표의 인지도는 85% 수준이다.  권 후보가 "지지도 10%, 300만표에서 시작한다"고 장담하는 이유들이다.

그러나 하드웨어적 여건은 좋아졌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민주노동당은 바쁘기는 한 것 같은데, 뚜렷하게 이뤄낸 것은 없다는 비판이 많다. 총론 차원의 선언은 강하지만, 각론과 구체적인 정책대안은 약하다는 지적도  거세다. 또 뿌리깊은 정파구조와  대기업노조 중심이라는 비판 목소리도 여전하다.

총괄적으로 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중간지대에 있는 대통합민주신당과 참여정부, 민주당 등이 저렇게 지리멸렬의 극치를 달리고 있음에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답보상태다. 실망한 중도세력은 이명박 후보 쪽으로 갈지언정 민주노동당 쪽으로는 발길을 돌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 47%득표의 의미를 읽어라

15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권영길 후보가 '열심히 뛰라'는 뜻으로 당원들로부터 선물받은 운동화를 들고 있다.
▲ 2007년 대선에서는...? 15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권영길 후보가 '열심히 뛰라'는 뜻으로 당원들로부터 선물받은 운동화를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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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비판의 상당 부분에는 권 후보가 겹친다. '공직당직 분리 원칙'으로 그가 대표를 맡지 않고 있었음에도 국민들에게 그는 실질적인 당의 간판이었고,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권 후보 개인적으로도 지난 5년간 활동이 뚜렷하게 잡히는 것이 없다.

게다가 이번 경선과정에서 정파투표의 덕을 입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그의 트레이트 마크인 '통합' 이미지에 흠집이 나기도 했다.  현재의 당 상황에 대한 총체적 평가가 '심상정 후보의 47% 득표'라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평가가 많다.

권 후보는 자신의 세번째 대선출마에 대해 "1997년 대선출마는 당 창건을, 2002년 대선출마는 원내진출을 이뤄냈다"며 "이제 진보정당 후보의 대선출마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정권교체의 기치를 내걸고 하는 것으로는 첫 출마다"라고 말한다. 이전처럼 완주를 목표로 한 출마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진보세력에게 이번 대선은 과거와 다르다. 환경 탓을 하기에는 민주노동당은 이미 많이 자랐다. 그리고 식상함과 실망도 그만큼 쌓였다.

진보세력 전체가 침체인 상황에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가장 큰 책임이 다시 한 번 권 후보의 어깨 위에 지어졌고, 그와 민주노동당은 이제는 각론과 정책을 담은 비전으로 대답해야 한다.

어쩌면 이번 대선이 권영길의 '운동' 역정에서 가장 험난한 고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목들이다.


태그:#권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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