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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17일 오전 10시 인천국제공항 동측 귀빈실. 이날 보름이 넘는 일정으로 미국 방문차 출국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환송 나온 인사들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 중에서는 손학규 후보가 맨 먼저 나타났습니다. '동교동계 막내'로 통하는 설훈 전 의원이 수행하고 있군요. 한승헌 전 감사원장 등과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도착했는지 아니면 다른 급한 볼 일이 생겼는지 손 후보가 슬며시 사라졌습니다.

 

곧 이어 정동영 후보가 나타났습니다. 역시 범동교동계인 이강래 의원 등과 함께였습니다. 신당 경선 1·2차 선거에서 연거푸 1위를 차지한 탓인지 사뭇 자심감이 넘쳐 보입니다. 역시 한승헌 전 감사원장 등과 힘있게 악수를 합니다. 조명을 안 쓴 탓에 피사체의 흔들리는 모습이 더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조금 더 있으니 예비경선에서 아깝게 간발의 차이로 '컷오프'에 걸린 추미애 전 의원이 나타났습니다. 5위로 '턱걸이'한 한명숙 후보가 본경선을 앞두고 사퇴를 하는 바람에 차라리 그럴 바에야 본경선 흥행을 위해서라도 '큰언니'가 더 일찍 양보해 '승계'가 이뤄졌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얘기를 듣는 그이입니다.

 

레이디 퍼스트! 점잖은 신사인 김정길 전 법무장관이 추미애 전 의원에게 자리를 양보하네요. 추 전 의원은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앉았습니다. 바로 그 옆에는 박근혜 대표 등과 함께 국회에서는 몇 안 되는 '공주과'로 분류되는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이 앉았습니다.

 

김명자 의원 앞에는 한승헌 점 감사원장이 마주보고 앉아 있네요. 그리고 추미애 전 의원 앞에는 정동영 후보가 마주보고 앉아 있습니다. 추 전 의원이 약간은 불편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라졌던 손학규 후보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추 전 의원이 살며시 자리를 양보하네요. 그런데 이미 한번 자리를 양보한 김정길 전 장관에게 한줄 더 물려달라고 할 수는 없고, 할 수 없이 말석 부근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공항 귀빈실의 '형님 먼저 후보님 먼저'

 

귀빈실을 찾은 귀빈들의 자리가 이렇게 정돈되는가 싶을 때에 오늘의 주인공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등장했습니다. 그러자 귀빈 일동은 너나 할 것 없이 다시 기립해서 환영합니다.

 

이제 환담이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이런! '동교동계의 좌장'인 권노갑 고문이 '특무상사' 이훈평 전 의원 등을 대동하고 뒤늦게 나타났습니다. 귀빈실의 '위계질서'가 다시 바뀔 태세입니다.

 

권 고문을 본 손 후보가 벌떡 일어나 권 고문의 옷소매를 붙잡고 상석을 양보하려고 합니다. 권 후보는 앉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며 끝내 손 후보의 상석 착석을 관철시킵니다.

 

이 대목에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옛날 라면 광고 카피가 생각납니다. 두 사람이 자리를 양보하며 뭐라고 실랑이를 벌였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으나, '형님 먼저, 후보님 먼저'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을 겁니다.

 

추 전 의원도 소득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DJ는 예비경선에서 떨어진 것도 서러운데, 멀리 떨어져 앉은 추미애 전 의원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듣기에 (예비경선 탈락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이렇게 챙겨주시는데 추미애 의원은 귀국할 때도 공항에 환영 나가야겠다"고.

 

가란다고 정말 가는 후보는 없죠

 

촌음을 다투는 바쁜 때에 '시간이 곧 표'인 두 대선 예비후보를 포함한 많은 캠프 의원들이 왕림했는데 덕담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DJ는 대선 예비후보들을 앞에 두고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이렇게 권유합니다.

 

"두 분은 먼저 가세요. 바쁘신 분들이…."

 

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정신나간(?) 후보는 없겠지요? 손 후보가 "후보들이 바쁜데’라고 말씀하셨지만 말씀을 듣는 게 더 큰 격려가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DJ는 우리의 구한말과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 당시의 프랑스 등의 예화를 거론하며 4강에 둘러싸인 한반도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네요.

 

역시 DJ는 '4강 외교의 달인'입니다. 이 대목에서 이웃나라 일본의 새 총리 후보에게도 덕담하는 것을 잊지 않네요.

 

DJ는 최근 사임한 아베 일본 총리의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과 관련,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했는데 이번에는 최선의 결과인 것 같다"면서 "후쿠다 전 장관의 부친은 탁월한 식견을 가진 좋은 분인데 후쿠다 전 장관이 부친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방미를 앞둔 DJ의 후쿠다에 대한 호평은 당장 외교 경로나 일본 언론을 통해 전달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게 될 후쿠다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르겠죠. 그 미소는 일본의 대북정책 전환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합니다.

 

도와달라는 후보들, 그리고 DJ의 알리바이

 

이렇게 두루 좋은 말만 하고 DJ는 떠났습니다. DJ는 29일 귀국합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의 분수령이 될 3차 선거일입니다. 그러니까 DJ 귀국일에 광주-전남 민심의 향배가 드러날 예정입니다. 그러니 DJ 경선 개입의 ‘알리바이’는 입증되는 셈입니다.


29일 광주-전남 대회전을 앞둔 손학규 후보의 득표 활동은 DJ가 떠난 뒤에 귀빈실 밖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상석을 양보한 권노갑 고문은 물론 김홍업 의원, 윤철상 전 의원 등에게도 연신 "도와주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해찬 후보는 왜 안 왔냐고요? 다른 일정이 있어 하루 전에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하며 인사를 전했답니다. 물론 지난 8월 11일 김대중 납치생환 34주년 기념미사에는 이 후보도 손학규-정동영 후보와 함께 왔습니다. 그 때 세 후보가 DJ 및 동교동계 인사들과 찍은 사진도 함께 공개합니다.

 

국민은 전직 대통령의 정치 개입을 마뜩치 않게 여깁니다만, 대선 예비후보들은 여전히 'DJ의 그늘'을 찾는 이즈음입니다.


태그:#김대중, #손학규, #정동영, #이해찬, #동교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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