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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카페 '수카라' 내부.
ⓒ 함박은영

벽을 가득 메운 사진 속 아이들이 얼굴 가득 웃음꽃을 터뜨리고 있다. 낡은 창문을 닦는 아이들, 고사리 손으로 노란 모자를 쓰고 있는 꼬마. 중급반 여자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막 춤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서랍 속에 묵혀뒀던 졸업 앨범을 펼친 듯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낡은 건물과 나무로 된 복도는 1980년대 한국 여느 학교의 풍경과 같다. 아이들이 입은 치마저고리 정도가 사진 속 장소가 '우리학교'(민족학교)임을 알린다.

'우리학교' 출신의 재일교포 3세인 김인숙(30)씨가 카메라를 들고 기타오사카 조선초중급학교를 찾은 것은 지난 2000년의 일이다.

김씨는 그 후 7년 동안 한국과 오사카를 오가며 아이들의 모습을 찍었다. 그 유쾌한 순간들이 'sweet hours'라는 이름으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산울림 소극장 1층 '카페 수카라'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전 첫날인 17일 전시회장에서 사진작가 김씨를 만났다.

'우리학교' 아이들에겐 한국도 북한도 '우리나라'

▲ 7년 간 '우리학교' 아이들 사진을 찍어 전시회를 연 김인숙씨.
ⓒ 함박은영

일본에서 의상과를 졸업한 김씨가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는 사진이 담아내는 '빛과 색'이 좋아서였다. 촬영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던 김씨는 오사카에 있는 비쥬얼아트대학(VISUAL ARTS COLLEGE OSAKA)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자신만이 찍을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자신이 잘 아는 '우리학교'를 담아보자고 생각, 학교와 아이들을 찍기 시작했다.

김씨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김명준 감독의 영화 <우리학교>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정치나 민족이라는 담론의 틀 속에 아이들을 가두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얘기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둘은 닮아있다. 김명준 감독이 '아이들을 만나보라'라고 얘기하듯 김씨도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김씨가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엔 7년의 세월을 아이들과 함께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다.

'우리학교' 출신인 김씨는 '우리학교'와 북한의 관계만 강조하는 일부 시각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북한 위주의 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인 배경을 잘 알기 때문이다. 김씨 역시 우리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일본 땅에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또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국도 북한도 '우리나라'로 생각한다고 덧붙인다.

김씨가 만난 '우리학교' 아이들은 밝고 꿈 많은 평범한 아이들이다. 김씨는 사진을 둘러보며 '리희사'라는 아이를 가리켰다. 전시회의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희사는 웃는 모습이 너무나 해맑은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고.

▲ 7년 전 창문을 닦으며 환하게 웃었던 리희사(왼쪽)가 어느새 훌쩍 자라 수줍게 미소를 짓고 있다.
ⓒ 김인숙

2000년 촬영한 사진에서 환하게 웃으며 창을 닦고 있던 희사는 7년 후 창가에 서서 수줍게 웃고 있다. 카메라를 든 김씨를 '언니!'라 부르며 뛰어와 안기던 꼬맹이가 어느덧 고급부에 진학하게 됐다고 한다. 가수 동방신기의 팬인 희사는 김씨가 갈 때마다 믹키유천에 대해 묻는다. 그런 희사의 꿈은 국제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학교'를 찍는 일은 행복해요. 자식을 키우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으니까. 어릴 때는 서로 찍어달라고 조르던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괜히 부끄러워해요. 그 안에 들어가 아이들의 내면에 있는 얘기를 듣는 것이 좋아요. 사진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참 좋아해요. 대신 꼬맹이들은 자기가 안 찍혀 있으면 서운해하니까, 좀 더 큰 다음에 보여주려고요. (웃음) 앞으로도 아이들의 모습을 계속 찍고 싶어요."

'우리학교' 아이들과 학창시절을 추억해보자

ⓒ 김인숙

김씨는 잠시 동안 작품 속에 담긴 아이들의 사연을 들려줬다. 이 꼬마가 자라서 저 사진만큼 컸고, 저기 있는 아이들은 자매 지간이다, 남자아이들은 항상 시끌벅적하게 노는데 여자아이들은 이제 눈길도 안 준다 등. 아이들의 모습을 설명하는 김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김씨는 다음 작업으로 '가족사진'이라는 이름의 시리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에 사는 지인들과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학교'를 찍는 작업도 계속할 예정이다.

이 유쾌한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별다른 준비는 필요 없다. 재일동포나 '우리학교'에 대한 관심은 사진을 보고 난 후 보여도 충분하다. 전시회의 제목 그대로, 사진들은 달콤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상기시킨다.

김씨에게 직접 'sweet hours'를 소개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진의 배경은 '우리학교'지만 딱딱한 사회나 정치적인 얘기는 없어요. 그저 아이들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는 사진전입니다. 사진을 보면서 각자 자신의 학창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2000년부터 7년 동안 기타오사카 조선초중급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김인숙의 사진전 'sweet hours'는 17일부터 오는 5월 7일까지 산울림소극장 1층 '카페 수카라'에서 열린다. 28일 낮 1시부터는 작가 김인숙씨와 대화할 수 있는 워크숍도 준비돼 있다.

ⓒ 김인숙


"김명준 감독, 정치색 배제하고 '우리학교' 봐줘 고마워"
[인터뷰] 김수향 ㈜아톤 한국 지사 대표

이번 김인숙씨 전시회를 기획한 곳은 일본에서 잡지 <수카라>를 발행하는 출판사인 ㈜아톤이다. 17일 오후 김수향 ㈜아톤 한국지사 대표를 만나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수카라>는 어떤 잡지인가?
"<수카라>는 2005년 11월 창간됐다. < Korean culture >를 발간했던 '한국문화원'에서 ㈜아톤 측에 제작 지원을 의뢰했다. 잡지명인 '수카라'는 숟가락의 일본어식 발음이다. 한국과 관련해 연예인 이외의 정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실제로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다루고 있어서 여타의 한류잡지와 차별화돼 있다."

- 사진전이 카페에서 열리는 것도 신선하다. '카페 수카라'에 대해 소개해 달라.
"㈜아톤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잡지가 한국을 일본에 알린다면 카페는 일본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밥을 카페에서 먹는 것은 일본문화의 하나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카페라는 콘셉트와 함께 일본 작가들의 전시회를 하거나 일본 디자인, 예술 계통 책을 소개하고 있다."

- 김 대표 자신도 '우리학교' 출신인 교포 3세라고 들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우리학교'가 주목받고 있는데.
"인숙씨 사진에 찍힌 곳이 실은 내 모교다. 아직도 한국에서 '우리학교'는 왜곡돼 있다. 한류를 만들어낸 이들 대부분이 '우리학교' 출신이다. 학교의 공이 큰데, 북한과 맺은 관계만 부각하려 하는 모습을 볼 때는 안타깝다. 얼마 전에 <우리학교>를 봤는데 한국인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놀랐다. 시대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김명준 감독이 정치색을 배제하고 학교를 봐줘 고마웠다."

- 이번 전시회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내가 오사카에 있는 '우리학교'를 다닌 게 30년 전 일이다. 김인숙씨가 7년 전부터 그곳 사진을 찍었는데 별로 변한 게 없다. 비록 낡은 건물이지만 '우리학교' 아이들이 뛰어노는 추억의 장소다. 그냥 낡은 공간에서 사는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봐 달라. 왜 이 아이들이 '우리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학교'의 의미가 무엇인지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함박은영 기자는 기획취재기자단입니다. 

☞카페 수카라 바로 가기


태그:#수카라, #김인숙, #사진전, #우리학교, #재일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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