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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편 출근하고 큰딸 소연이까지 유치원 가고 나면 세 살배기 은혜랑 둘이서 특별한 일 없이 늘 바쁩니다. 아침먹이고 청소하고 빨래 좀 하다보면 오전은 그냥 지나가고요. 전자피아노 띵땅거리기 좋아하는 은혜랑 시끌벅적하게 그걸 치다보면 금세 하품해대는 딸 재울 시간이 돌아오고 말이죠.

얼마전 은혜가 혼자 너무 잘 놀아서 잠깐 컴퓨터를 켰습니다. 친구와 오랜만에 메신저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한참 얘기하다가 전에 다니던 직장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퇴사하면서 그 친구가 그 회사에 입사를 했거든요. 지금은 그 친구도 퇴사한 지 꽤 되어서 회사소식을 정확히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얼핏 듣기로는 날로 번창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연히 생각난 '그때 그 사장님'

결혼 전, 저는 세 번째 직장인 그곳을 1년 10개월 정도 다녔습니다. 두 번째 다니던 직장이 어려워 월급문제 때문에 좋은 사람들 뒤로 하고 퇴사를 했습니다. 그 후 1달 동안 쉬면서 직장을 알아보던 중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바로 그 회사였습니다.

뭐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면접 보는 건 늘 긴장이었지만 그땐 뭐에 홀렸는지 면접보시는 30대 중반의 사장님 앞에서 무조건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많이 부족하고 내세울 건 없지만 채용해주시면 정말 성실하게 일하겠습니다"하구요. 사실 그땐 월급이 얼마인지도 몰랐고요. 그런 거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일자리가 필요했거든요. 동생 둘을 데리고 작은 아파트에서 자취를 할 때이니 마냥 쉴 수가 없었습니다.

어쨌든 취직이 되어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게 많으니 늘 실수투성이였고요. 서류 준비하는 것부터 경리업무까지, 작은 회사다 보니 혼자서 할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통성명을 하며 전화로 물어보는 것도 많았고요. 늦게까지 남아서 정리할 것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초창기의 어설픔을 딛고 업무에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아무래도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그동안 생각하지 않던 월급 문제로 혼자 속앓이를 했습니다. 사실 월급이 좀 적었거든요. 적금 넣고 생활비 쓰다보면 아낀다고 하는데도 적자가 났습니다. 그런 걸 직접 회사에 말하기도 그렇고 그냥 고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번뜩 생각나는 게 바로 점심 식대였습니다. 점심은 늘 식당에 주문해서 사장님과 이사님 이렇게 셋이서 같이 식사를 했는데 별 특별한 것도 없이 한 끼 당 4000원이니 느닷없이 그 돈이 아깝지 뭡니까.

혼자서 한 달 치 계산을 해보니 일요일을 제외한다고 해도 한 사람당 10만원이 넘었습니다. 침은 '꼴깍' 넘어가는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습니다. 일단 그 다음날부터 도시락을 챙겨 출근했습니다. 그냥 마음이 그렇게 시키더라고요.

도시락을 준비해간 그날 점심때였어요. 다 모인 자리에서 도시락을 꺼내니 자연스레 사장님께서 물으시더군요.

"전은화씨 도시락 먹네요? 왜요. 식당 밥이 맛이 없어요?" 아, 그때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나 순간 엄청 고민했습니다. 너무 솔직하게 말하자니 좀 그렇잖아요. 얼떨결에 대답한다는 게 "회사 비용 나가는 게 좀 아깝기도 하구요… 그냥 도시락이 먹고 싶기도 해서요"라고 했습니다. 허참, 말해놓고 그렇게 민망할 수가 없더군요. 제 자신에게 말이죠.

어쨌거나 그렇게 몇날며칠을 도시락 싸가지고 다녔더니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왔습니다. 이사님께서 부르시더군요.

"전은화씨, 점심 식대 비용 그거 어차피 복리후생비니까 매달 계산해서 전은화씨가 가져가세요.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고 사장님 지시예요."
"아휴. 그래도 되는지…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궁상이었습니다만 그때 사장님의 배려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10원이 필요할 때 손에 쥐어진 10원은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았으니까요.

왕초보 직원 '싸장님'께 감동 먹다

그 후로 '룰루랄라' 신났습니다. 그 즈음, 너무 신나서였을까요.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해버렸어요. 사장님께서 가지고 가실 서류를 잘못 준비한 겁니다. 목적지까지 다 도착해서야 알게 되신 사장님께서 서류를 제출도 못 하시고 회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걸 모르는 저는 서류봉투 그대로 들고 들어오신 사장님께 여쭈었지요.

"사장님 그냥 오셨네요?"
"전은화씨 서류에 도장이 안 찍힌 걸 나도 바빠서 확인을 못했네요."

"어머, 사장님 죄송합니다. 어쩌죠. 정말 죄송합니다."
"됐어요. 이 일은 우리 것이 안 되려고 그런 거니까 다음부턴 검토 잘하면 돼요."

그때만큼 쥐구멍이 절실해보긴 첨이었습니다. 어찌나 죄송하던 지요.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였습니다. 그런데도 고개를 못 드는 저를 배려하시는 사장님 말씀에 더 열심히 일하고 싶었고 회사에 더욱 애착이 갔습니다.

이래저래 시간이 지나 한솥밥을 먹으며 가족처럼 지낸 회사에 사표를 내야 할 때가 다가왔으니 바로 저의 결혼이었습니다.

2000년 10월 초쯤, 11월에 있을 결혼 때문에 퇴사를 하겠다고 말씀드리니 사장님을 비롯하여 조금씩 규모가 커지면서 늘어난 직원들까지 무척 서운해 하셨습니다. 결혼이라는 기쁜 일로 퇴사를 하는 거여서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저 또한 서운함이 컸습니다.

▲ 다니던 회사 사장님께 결혼 선물로 받은 웨딩촬영 앨범입니다. 볼때마다 늘 생각이 납니다.
ⓒ 전은화
예정된 퇴사날짜를 앞두고 결혼 준비로 무척 분주한 나날이었습니다. 남편은 그때 당시 중국에 있었고 결혼식 며칠 전에나 귀국을 한다고 하니, 웨딩촬영이고 뭐고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애가 탔습니다. 결국 웨딩촬영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시간도 시간이었지만 남편이나 저나 벌어놓은 게 변변찮아서 그냥 아끼는 차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으로 퇴사 날짜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사장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전은화씨, 어떻게 준비는 잘 되어가요?"
"그럭저럭 하나씩 하고는 있는데요. 신랑이 아직 중국에 있어서 쉽지가 않습니다."

"거 뭐냐, 웨딩사진은 언제 찍어요?"
"그거 그냥 안하기로 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안 찍어요. 나중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는데."
"그렇긴 한데요…"

"그러지 말고 이렇게 합시다. 전은화씨 그동안 고생 많았는데 내가 결혼선물로 웨딩사진 비용 해줄 테니 그거 찍는 걸로 해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고, 또 뭐든 상의할 일 있으면 오빠처럼 생각하고 상의해요. 내가 여동생들 결혼시켜봐서 경험이 많으니까."

아 정말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이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말씀에 거역을 못하고 그렇게 하기로 한 후 퇴사를 했습니다. 결혼식 며칠 앞두고 귀국한 남편과 부랴부랴 웨딩촬영을 했고 결혼식도 잘 치렀습니다. 결혼식 때 회사에서 예쁜 화환도 하나 넣어주시고 참석하셔서 축하도 해주셨습니다.

"늘 번창하십시오"

크리스마스 이브 날이 회사 창립일인데 퇴사한 지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은 꼭 회사 생각이 납니다. 두툼한 웨딩사진 앨범 꺼내 볼 때마다 사장님 생각도 많이 나고요. 그 사진 보면서 결혼할 당시의 마음을 새록새록 느끼곤 하는데 "이거 안 찍었으면 어쩔 뻔 했나"하는 마음이 사장님에 대한 감사함을 더 크게 만든답니다.

퇴사 후 딱 한번 회사 창립일에 축하 화분 보내드리고선 통 연락을 못 드려서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한참 어린 여직원이었던 제게 늘 존댓말로 예우를 갖추어주셨고 작은 실수는 살짝 눈도 감아 주셨고요. 회식 때 1차가 끝나면 슬며시 일어나셔서 불편함도 없애주셨던 '퍼펙트 사장님' 그저 늘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하시는 사업 더욱더 번창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태그:#딸, #퇴사, #사장, #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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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속에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김정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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