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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잠을 못자고 뒤척였다. 눈이 새초롬 하니 눈꺼풀은 자꾸만 내려 앉았다. 요며칠 하루에도 몇 번씩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와 따가운 햇볕이 번갈아 동네를 뒤엎었다. 그 바람에 널어놓은 빨래를 들여놓았다 내놓기를 반복하며 부지런을 떨었다. 그러던 날씨가 제자리로 돌아왔나보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어제 잠깐 내린 비로 바닥이 촉촉하지만 그 덕분에 햇볕의 따가움이 수그러들었다. 날씨 따라 기분이 왔다갔다 하는 나. 오늘은 햇살만큼이나 밝아야 하는 게 맞을텐데 마음이 울렁거리고 심장 뛰는 소리가 불규칙하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갈피를 못잡겠다.

그 와중에 이웃집 아홍과 즈이의 전화를 번갈아 받았다. 어제 밤에 전한 소식이 서운한지 밤늦게까지 울다 잠들었다는 즈이는 감기 기운이 겹쳐 학교도 안 갔단다. 아홍은 상심이 큰 딸 때문에 달래느라 힘이 들었다고 했다. 통화를 하고 난 후 가만히 앉아 있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갑작스럽게 듣게 된 이사 소식

어제 저녁 모처럼 두 딸내미들과 놀이터에서 장난도 치고 간간히 운동도 하며 놀고 있었다. 두 팔을 양쪽으로 돌려 가며 운동을 하다가 4층 우리집을 올려다 보니 불이 켜져 있었다. 이상해서 쳐다 보고 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지금 어디야? 나 퇴근했는데 빈 집이네?"
"엥? 벌써? 자기 퇴근 시간 9시잖아. 지금 8시밖에 안됐구만. 벌써 왔다고? 그럼 놀이터로 잠깐 와요. 애들이랑 모처럼 놀다 들어가게."

살금 살금 뒤에서 놀래키며 다가온 아빠를 보자 두 딸들은 기겁을 하며 좋아했다. 참 오랜만에 놀이터에 가족이 둘러앉았다. 저녁이지만 날이 더워서 땀이 줄줄 흘렀다. 동네 한바퀴 돌자며 일어서서 걸었다. 걷기 시작하자마자 남편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있잖아. 저기…."
"응, 뭐요. 왜? 뭔데 뜸을 들이시나? 아 답답해 뭔데요?"
"우리 이사 가야 될 것 같애."
"이사?"

걸음이 멈춰졌다. 지금 사는 집도 이 동네에서 5번의 이사 끝에 겨우 정착하고 사는 집이었다. 그런 탓에 이사 소리만 들어도 기운이 빠졌다. 그런데 또 이사라니. 어렵게 말 꺼낸 남편에게 "이번엔 또 어디로? 이 아파트 딱 좋구만" 하며 다그쳤다.

가뜩이나 펄펄 뛰는 내 앞에 남편은 "이 동네가 아니고 좀 멀리 가야 될 것 같애. 산동성 연대야. 일단 애들 데리고 한국 가 있다가 내가 그곳에 정착하면 들어와야 될 것 같아"라고 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그냥 뭔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당황스러웠다. 하루종일 평화로웠던 내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가 '쿵' 하니 떨어진 것 같았다.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었다면 덜했을 텐데 갑작스런 결정이라 마음에 파장이 더 컸다. 그동안 한국에 나가 있는 시간도 꽤 되었지만 이곳은 결혼하면서부터 살던 곳이라 언제든 돌아와야 하는 내 집 같은 곳이었다. 막상 완전히 정리하고 떠나야 한다니 걷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이별 소식에 울어주는 꼬마, 서운해 하는 이웃들

터벅 터벅 걸어서 아파트 대문 앞을 지나는데 이웃에 사는 아홍과 딸 즈이를 만났다. 마침 잘 만났다며 그녀는 6월 1일 얼통지에(兒童節:어린이날)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라며 옷이 담긴 가방을 건네주었다. 한 방 얻어맞은 듯한 맹한 기분으로 선물을 받으니 정신이 더 없었다. 그저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아홍이었다. 애들 옷이 딱 맞는지 물었다. 두 딸들의 스타일을 생각하며 고민하다 샀다는 그녀는 잘 맞는다는 소리에 좋아했다. 그리고 바꿔달라며 조르는 딸 즈이와 통화를 했다.

재잘 재잘 큰소리로 말하는 즈이와 통화하던 중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눈치 빠른 꼬맹이는 그 소리를 지나치지 않고 무슨 일이냐며 되물었다. 아무 일 아니라고 해도 자꾸만 되물었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게 된 걸 얘기해 주었다. 이 녀석 믿지를 않았다. 믿기 싫은 모양이었다. 한참을 얘기하다 겨우 끊었다.

조금 있으니 5통이 넘는 메일이 핸드폰으로 쏟아졌다. 즈이가 많이 울었는지 엄마인 아홍이 보낸 메시지였다. 축 가라앉는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날이 샜다. 기분이 이상했다. 남편은 여느 때처럼 출근했지만 그의 마음도 오늘은 남달랐으리라 생각된다.

아침에 딸내미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오는데 늘 지나치던 그 길도 예사롭지 않게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옆으로 흐르는 아주 지저분한 하천까지도 오늘따라 자꾸만 내 눈을 잡아 끌었다. 빵 좋아하는 딸들 때문에 늘 드나들던 빵집도 편의점도 과일 가게집도 약국도 오늘은 늘상 지나칠 때의 평범한 날과 다르게만 보였다.

심란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와 있다가 그동안 맘 통하며 가까이 지내던 한국인 새댁한테도 이 소식을 전했다. 갑작스런 소식에 당황하며 서운해 하는 그녀와 수화기를 붙들고 서로 울먹였다. 이웃에 사는 조선족 유언니도 회사에서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왔다. 역시 많이 놀란 듯하다.

가깝게 지내던 란제와 롱롱이 엄마, 그리고 소연이 친구 리양쥔의 엄마인 아메이한테는 아직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말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요동친다. 짧지 않은 세월 사는 동안 이방인인 내게 참으로 친근하게 대해 주었던 이들이기에 이렇게 갑작스런 이별을 고해야 함이 아쉽기만 하다.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 생각하자'고 혼자 다독여도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모든 게 서운함 투성이다.

정을 심고 살면 어디든 고향이 되더이다

언젠가는 늘 이곳을 떠나게 되리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이런 날이 와도 무덤덤 할 줄 알았다. 나 하나 이곳에서 떠난들 가지 말라며 울어줄 이 하나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보니 양지 바른 곳에 뿌리 내린 나무처럼 나도 이곳에 정을 심고 살았나 보다. 이리도 서운한 걸 보니 늘 낯설다 여기던 이곳이 고향처럼 여겨진다. 나는 마치 고향을 등지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내가 이곳을 떠나는 순간 따뜻함이 차고 넘쳤던 이곳에서의 기억들은 저 뒤로 추억이 되고 말겠지. 그러나 난 아마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많은 기억들을 되새김질 하며 이곳을 사무치게 그리워 할 것 같다.

못내 아쉬운 이마음, 머무르는 며칠 동안 내 발이 닿았던 구석 구석 마음 속에 주워 담는 것으로 대신하며 달래야 할 것 같다.

태그:#중국살이, #이사, #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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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동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와 생활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속에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김정들을 담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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