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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지하의 '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대표적인 전통 회화인 수묵화를 시작할 때 맨 처음 배우는 것이 사군자(四君子)입니다. 사군자 가운데서도 난초부터 그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것은 수묵화가 서예의 필법(筆法)을 따르기 때문인데요. 옛날에 서예는 어릴 때부터 배우니까 서예를 하던 분들이 그만큼 난 그림에 쉽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이죠. 수묵화를 그리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유자재로 선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먹선을 연습하는 데 있어 난이 제일이었던 거죠. 그래서 난을 ‘친다’고도 합니다. 붓으로 끊지 않고 단번에 선을 그러야 하는데, 그것을 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난초를 흔히 군자(君子)의 기상에 비유합니다. 매난국죽의 사군자 가운데서 난은 여름을 상징합니다. 또한 방위로는 남쪽을 가리키지요. 먼저 중국에서 난에다 정신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였고, 그것이 문화로 자리 잡혀 우리나라와 일본 등으로 전파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난초의 상징성은 한중일 세 나라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난초를 향기롭고 귀한 식물로 사랑했고, 아름다움의 한 본보기로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도 한국화를 시작했을 때 맨 처음 그린 것이 난초입니다. 그때 제 선생님께서는 난이 얼마나 아름다운 식물인지 몇 번이나 말씀하시곤 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워낙 철이 없던 고교생 시절인데다, 제가 서울 한복판에서 자라난 터라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어요. 뭐가 아름답다고 그러시는지 의아해하기까지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자다가 문득 깨어나 물을 마시러 부엌에 나갔습니다. 달이 떴었는지, 아니면 밖의 가로등이 비친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잠이 덜 깨 정신은 아직 꿈속을 헤매고 있는데 정말 꿈결 같은 향기가 어디선가 나는 거예요. 비누냄새도 아니고, 샴 푸냄새는 더더욱 아닌, 말 그대로 은은하면서도 혼미한 향 같았습니다.

그래서 향기 나는 쪽을 따라갔더니 난화분에 꽃이 피어 있는 거예요. 베란다에 놓여진 난 화분이었어요. 게다가 열린 창틈으로 바람이 들어오는지 마루바닥에 드리워진 난 그림자가 어른거리더군요. 특별히 아름다울 것도 없는 평범한 화분이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바닥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있는 모습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어요.

이파리의 바람을 가르는듯한 날카로움과 함께 그러면서도 살살 흔들리는 탄력 있는 곡선은 수묵화 그 이상이었습니다. 빛에 비쳐 환하게 드러난 바닥에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는 수묵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체험이 저만의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으나 우리 조상의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어요. "초봄에 꽃이 피면 등불을 켜 놓고 책상 위에 난분을 올려놓으면 이파리의 그림자가 벽에 지치어 어른거리는 것이 즐길 만하고 글을 읽을 때 졸음을 쫓을 만하다." 참 그윽한 풍경이지요.

사실 옛 선비들이 매난국죽을 군자라 부르며 좋아했던 것은 그 생김생김이나 색감 따위는 아니었어요.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식물적 특성, 생태적 특성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정신적 이상향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아무런 지식 없이도 남다른 어떤 체험 때문에 새삼스럽게 발견하는 것들도 있지요. 저는 그림을 볼 때, 그런 경험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이 느끼는 그림 속 정서이기 때문이에요. 화풍이 어떻고, 무슨 사조(思潮)가 어떻다는 안내문 같은 지식보다는 나만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어떤 경험이 그림을 즐기는 데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화훼 기술이 좋아서 꽃이 핀 난 화분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예전엔 그렇지 않았어요. 난은 꽃 모양이 특이한 데다 쉽게 피지 않아서 그런지 고급스럽고 우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 속의 난은 공기가 맑고 물이 깨끗한 곳에서만 꽃을 피워요. 고상한 존재이지요. 그래서 오죽하면 난을 제대로 가꾸는 사람은 담배도 피우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리가 흔히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난초 화분을 보내지요? 귀한 것을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잎과 꽃 대궁, 또 꽃과 향이 한꺼번에 있어 완벽함을 갖추었다고 할까요. 소나무나 대나무 또 매화도 군자 가운데 하나이지만, 소나무는 향기가 적고, 대나무는 꽃을 보기 어렵고, 매화는 꽃이 지고 나서야 잎이 납니다. 꽃과 잎, 향기를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은 난초뿐이에요. 이렇듯 난은 귀(貴)하고 아름다운 것을 상징합니다.

난(蘭)의 한문 글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풀 초(艸)에 물을 문(問) 그리고 고를 간(柬)으로 되어 있어요. 이것은 ‘향초(香草)중에서 고른 명문가(名文家)의 귀녀’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난초를 기르듯이 부정한 것을 멀리하여 원만하고 청순하게 딸을 키우면 귀한 여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군자 중 대나무가 남성적이라면, 난초는 여성적 이미지이며 명문가의 귀녀에 비유됩니다. 왕비의 궁전을 난전(蘭殿), 미인의 침실을 난방(蘭房)이라 하는 것도 그런 기원을 갖고 있어요.

다른 식물들은 꽃을 피울 계절이 찾아오면 악착같이 꽃을 피우지만, 난은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꽃을 피우지 않아요. 옛사람들은 난초의 이런 특성을 지조 높은 덕을 지닌 고고한 선비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군자는 자신이 가만히 있어도 그 덕이 높아 저절로 사람들을 깨우친다고 했지요. 난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오지 않을 깊은 산속에 홀로 피어서 그 향기로 뭇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습니다.

▲ 시인 황지우의 '난'.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인간 세속에 물드는 걸 부끄럽게 여겨
바위 골짜기 물가에서 살고 있네
비록 교태로 아양 떠는 재주는 없지만
스스로 그윽한 향기 지녀 덕인을 닮았도다
-이식(李 湜), '난(蘭)'에서


사대부 집안에서는 옛날부터 선비의 방에 반드시 난초 화분을 놓았습니다. 그것과 함께 하면서 군자의 덕을 기르라는 뜻이지요.

난초가 군자의 상징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남송(南宋) 말기에서 원나라 초기에 살았던 정사초(鄭思肖, 1239∼1310)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그는 이민족(異民族)인 원나라에게 국토를 잃은 망국대부(亡國大夫)의 한을 땅에 뿌리를 박지 않고도 살아가는 노근란(露根蘭)을 통해 표현했어요. 스스로 호를 소남(所南)이라 부르며, 송을 그리워함과 동시에 결코 원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어떤 사람이 난초를 그릴 때 왜 흙을 그리지 않느냐고 묻자, “오랑캐들이 땅을 다 빼앗아갔으니 나의 난은 원나라의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절절한 망국의 아픔이 녹아있지요.

또 원나라의 지방관리가 그에게 그림을 청했을 때, 단호히 거절하면서 "내 머리는 얻을 수 있어도 내 그림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일갈(一喝)했다고 합니다. 그의〈묵란도(墨蘭圖)〉가 지금까지 전해오는데, 단단하고 결기 있는 그의 절조(節操)가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조선 말 정치가인 민영익(閔泳翊) 선생도 나라 잃은 슬픔을 난에 비유하여 그린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글씨도 잘 썼지만 그림도 잘 그렸다고 해요. 앞에서 말한 유민화가(遺民畵家) 정사초의 고사처럼, 선생에게도 노근묵란도(露根墨蘭圖)라는 대표작이 있습니다.

을사조약 체결 이후 친일정권이 세워지자 상해로 망명한 민영익 선생은 정사초의 고사(古事)처럼 뿌리가 드러난 난을 많이 쳤다고 해요. 어지럽고 슬픈 역사 속에서 대단히 고단하한 인생을 살았던 선생의 난에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의지와 함께 나라를 잃은 좌절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난은 그림만이 아니라 문학작품의 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윽한 난초가 이미 시들었으니(幽蘭已枯瘁)
저무는 해에 누구와 벗을 하랴(歲晩誰與儔)
-김극기, '유감(有感)'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이병기 '난초'


난은 달콤하면서도 맵싸하고 그러면서도 상큼한 표현하기 어려운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이 적고 향기가 많으니 향문십리(香聞十里)라 하여 십리 밖에서도 향을 맡을 수 있다고 했어요. 또 한 줄기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난 난초에서 은은한 향기가 바람처럼 퍼져 나가니 십 리 안에 모든 초목들은 감히 그 향기와 겨루지 못하고 감복하여 무안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시에서 읊기도 하였답니다.

그래서 난은 향과 관련한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난향(蘭香)을 국향(國香), 제일향(第一香), 왕자향(王子香), 유향(幽香)이라고도 합니다. 이처럼 유별난 난의 향기 덕분에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이 ‘퍼플 오키드’라는 한정본 향수를 만들기도 했지요. 난초향기에 '두터운 우정'의 의미를 두기도 합니다.

잘 알다시피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그 단단하기가 쇠를 자를 수 있고, 우정의 아름다움은 난의 향기와 같다는 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말이 있어요. 그밖에 난교(蘭交), 난우(蘭友)등 평생 변하지 않는 매우 도타운 사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난은 여름을 상징합니다. 한 뿌리에서 여러 가닥으로 뻗는 푸른 이파리가 풍성한 느낌을 주지요. 여름이 풍요의 계절이듯이 난초를 정성껏 기르거나. 그림으로 그리는 것 농산(農産)의 신(神)을 받드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고 해요.

난초를 기르면 집안의 불상사를 막아주고, 그 잎을 달여 마시면 해독이 되어 노화방지가 된다는 중국의 속설이 있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난초 그림을 걸어두어 사악함을 쫓아낸다는 벽사(辟邪)의 의미가 덧붙여지기도 했어요.

난초 이파리는 알다시피 기다란 풀 같이 생겼습니다. 이것을 그릴 때는 직선도 아니고 심한 곡선도 아닌, 완만한 활모양을 가진 선을 살짝 눌러서 사마귀배모양을 만들고, 바로 붓을 들어 옆으로 돌려서 쥐꼬리처럼 점점 가늘게 만듭니다. 이때 사마귀는 해충(害蟲)을 잡아먹는 유익한 곤충이고, 쥐는 다산(多産)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난초를 그리는 것은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辟邪) 귀인(貴人)을 많이 낳으라는 다산(多産)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경기도 지방에서는 ‘난초꽃이 많이 피면 자손이 번창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충청도에서는 꿈에 난초가 나오면 집안의 식구가 늘고, 난초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고려 충신인 정몽주(鄭夢周)도 어릴 적 이름은 몽란(夢蘭)이었다고 해요. 그것은 그의 어머니가 난초 화분을 안았다가 떨어뜨리는 태몽을 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손번창(子孫繁昌)의 의미는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요? 난초 중에서 잎이 구불구불하고 길며 보랏빛 꽃을 피우는 품종이 있습니다. 이것은 손(蓀)이라는 난초 종류의 한가지로서 손(孫)과 그 음(音)이 같기 때문에 자손(子孫)을 뜻합니다. 독음(讀音) 때문에 자손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5월에 꽃이 피는 난초에 이상하게도 9월에 나오는 귀뚜라미가 같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것도 동음(同音)이자 독음에 의해서 “자손이 관아(官衙)에 들다”의 뜻을 갖도록 한 결과입니다. 귀뚜라미는 한자로 귁아(벌레 충(蟲)에 나라 국(國)을 더한 아(兒)인데, 독음이 중국에서 관아와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은 또 바위와 함께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실제로 난은 바위틈같이 물이 잘 빠지는 곳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그림 속에서는 자손이 바위처럼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자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 되지요. 또한 자신의 자손이 귀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오래살기를 바란다는 뜻도 같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후반부터 회청자나 유병(油甁) 등에 민화풍의 난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유교가 굳건히 뿌리를 내린 조선시대에는 각종 백자와 문방구류 등에 세련되면서도 소박한 난초 무늬 장식이 등장합니다. 그 밖에 각종 공예 미술에 의장(意匠) 소재로 즐겨 다루어졌어요. 난초는 유교 문화와 함께 비교적 짧은 시기에 보이지 않고 퍼져가는 향기처럼 우리의 내면을 파고들은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물론 우리가 서양식 현대화와 함께 전통문화로부터 갈수록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서양식 문명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도 난초의 향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름답고, 고결하며, 향기로운 식물이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우리 삶이 이렇게 혼란할수록 난초의 덕성이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문득 창가에 놓인 난 화분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봄꽃의 향기가 번져가는 오늘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난 그림의 이미지 파일이라도 보내야겠네요.

덧붙이는 글 | 이상희의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한국문화상징사전> 조용진의 <동양화 읽는 법>을 참조·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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