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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보통 봄에 피어납니다. 하지만 가을이 되면 피는 꽃도 있지요.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화입니다.

요즘은 가꾼 것이 많지만, 사실 국화는 우리의 산과 들에 지천으로 피는 꽃입니다. 너무나 많이 피어서 오히려 귀하다는 생각을 못할 정도지요. 게다가 국화는 종류도 워낙 많거든요.

색깔에 따라 노랑·흰색·빨강·보라·주황. 크기에 따라 대국(지름 18㎝ 이상)·중국(지름 9~18㎝)·소국(9㎝ 아래). 피는 계절에 따라 하국(여름)·추국(가을)·한국(겨울). 물론 가을 국화가 가장 대표적이죠. 또 꽃의 생김새에 따라 나누기도 하는데, 너무 전문적이니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국화는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품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국화꽃 축제를 하면서 새로운 품종을 전시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국화는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귀히 여기는 꽃인데,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다만 <고려사>에 보면 1163년 의종이 궁궐의 뜰에 국화를 심고서 감상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국화는 약 1500년 전 가량 구절초와 감국을 교배하여 만든 것으로 알려졌어요. 감국이란 산과 들에 피어나는 야생 국화를 의미하는데요. 꽃이 작고 노랗죠. 전통차 가운데 국화차라고 하는 게 바로 이 감국의 꽃잎을 말려서 마시는 것입니다. 한방에서도 '고의'라 부르며 약용식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달빛에 반짝반짝, 노란 국화들

▲ 국화가 들어간 민화
ⓒ 유연준 촬영
7년쯤 전이었나요. 10월에 부안의 변산반도 여행을 나섰습니다.

한 절에서 머물기로 하고 떠났는데, 그만 한밤 중에 도착하게 되었어요. 주차를 하고서 언덕을 올라가니 절이 보였습니다. 어떻게 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밤이었어요. 초행길인 데다가 대숲이 우거져 깊이를 분간하기 어려웠습니다. 나중에 보니 달은 환하게 떠있었지만, 올라오는 길가의 숲이 워낙 우거져 어두웠던 것입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비구니 스님과 인사를 나누고 씻은 뒤 잠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휘영청 밝은 달 아래 마당을 내다보니 요사채 앞에 아름드리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빨갛게 익은 감이 달빛을 받아 등처럼 빛나고 있더군요. 우리의 가을을 특징짓는 쌀쌀하고 건조하면서도 상쾌한 밤이었습니다.

하루종일 돌아다닌 탓에 몸은 노곤했어요. 그런데도 잠이 오질 않는 거예요. 출출하기도 해서 둘러보니 스님께서 따다가 방안에 놓아둔 감이 한 소쿠리 있었습니다. 손님 접대용이겠거니 하고는 몇 개 집어 먹었어요. 함께 주무시는 분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제대로 씻지도 않고 껍질을 벗겨가며 '대봉'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감을 두어 개 조용히 먹었지요.

공복감이 사라지고 나니 이내 잠이 들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이었어요. 잘 알다시피 시골의 작은 절에서는 화장실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그 절에서는 게다가 화장실에 가려면 컴컴한 대숲을 끼고 70m쯤 걸어내려가야만 했어요. 그래서 아침이 될 때까지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요. 점점 급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우선 벽돌만 한 손전등을 들고 남편을 조용히 깨웠습니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갈 수 없었으니까요. 바람에 쉭쉭 삭삭 소리를 내는 대숲이 마치 영화 <에이리언>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잠결에 투덜대는 남편을 앞세우고 결국은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갈 때는 전혀 몰랐는데, 볼일을 보고 돌아나오니 순간 환한 덩어리가 눈앞에 펼쳐졌어요. 전등을 비출 것도 없이 달빛에 반짝이는 노란 국화 무더기였습니다. 손톱만 한 국화꽃이 하도 많이 피어 가지가 땅으로 쳐박힐 것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 다시 가보니 맑은 바람에 떨어진 낙엽 냄새와 함께 국화향이 은은히 풍기더군요. 다른 꽃들은 거의 다 가지에 매달린 채 시들어 가는데도 국화만은 꿋꿋하게 예쁜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그래서인가요. 가을이 오면 그 때 맡았던 냄새를 찾게 됩니다. 도심의 어느 한적한 골목길, 변두리 동네의 야산 언저리, 북한강을 끼고 춘천으로 가는 국도변의 허름한 휴게소 언저리 등등.

그 때의 냄새를 맡으면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그날 밤의 국화꽃, 정확히는 토종 감국을 생각하곤 해요. 그 향기는 때로는 곱게 늙은 여인네의 향기처럼, 또 때로는 정갈한 선비의 기품처럼 도심의 매캐한 매연 속에서도 어느 순간 자신을 드러냅니다.

도심의 매연 속에서도 기품있게 피어난다

동양에서는 보고 즐기기 위한 관상용으로 예로부터 국화를 귀하게 대접해왔습니다. 늦가을 서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초한 꽃을 피워 사군자의 하나로 사랑을 받았지요.

국화는 뭇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이나 여름을 피하여 서늘하고 맑은 늦가을에 고고하게 피어납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서리를 무서워하지 않고 단아한 자태로 피어나 깊은 향기를 풍기는 이것을 선비가 지녀야 할 덕목 중의 하나인 지조와 절개로 보았어요. 이정보라는 선비가 시조 형식을 빌려 노래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갈 겁니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보내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자연 현상에서 인생의 진실을 배우곤 했던 우리 선조들은 늦가을 찬바람이 몰아치는 벌판에서 피어난 그 모습을 보고서 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버리고 자연 속에 숨어 사는 은사의 풍모를 느꼈다고 해요.(이상희,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제3집, 넥서스, 242쪽)

국화는 그래서 '은일', 즉 속세를 떠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런 상징성은 주돈이의 <애련설> 가운데 국화에 대한 언급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도연명은 당나라 시인으로서 자신의 지조를 지키려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벗하면서 살았다고 해요. 이러한 일화 때문에 국화는 자연을 벗하며 세상을 등지고 숨어사는 삶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귀거래사를 읊은 후 도연명은 은둔생활에 들었고, 집착을 끊은 그 삶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화' '도연명' '은일'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해요.(조용진, <동양화東洋畵 읽는 법>, 집문당, 123쪽)

은일은 요즈음 말로 하면 정신이 세속을 초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굳이 공간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어디에 있든 스스로 외지고 조용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작가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어디에 살고 있는가의 여부와 관계없이 '마음이 멀어지는 상태', 즉 정신적 초탈과 숭고함이 아닐까 합니다.(호아위평 책임편집, 서은숙 옮김, <시는 붉고 그림은 푸르네>, 학고재, 94쪽)

초막을 짓고 사람들 속에 살아도
말과 수레소리 시끄럽지 않네.
어찌하여 그런가
마음이 속세를 떠나면 저절로 그렇다네.
동쪽 울타리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네.
산기운은 해질 무렵 아름답고
날던 새들은 짝지어 돌아오네.
여기 참된 뜻이 있으니
말하려다 문득 말을 잊네.

-도연명 <음주>


이런 연유로 강희안은 "자연에 묻혀사는 호사가들은 국화를 군자에 비견하곤 한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계절이 바뀌어 초목이 시들게 될 때 홀로 찬란하게 피어나 바람과 이슬을 꿋꿋하게 견디니 산인과 일사(세상을 등지고 숨어사는 뛰어난 선비)의 절개에 견줄 만 하다, 적막하고 매우 춥더라도 도를 즐기는 넉넉함은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강희안, 서윤희·이경록 옮김, <양화소록>, 눌와, 37쪽)

국화는 가장 늦게 피어나는 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론 서리가 내린 뒤까지도 가지에 매달려 있기도 해요. 예전에는 서울이 굉장히 추워서 집집마다 김장을 하고 나서는 국화를 베어 다발을 만들어서는 집안에 꽂아 놓고 뿌리는 실내로 옮겼다고 해요.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집안에 들여놓은 국화가 말라서 설이 올 때까지도 방안에 향기가 남곤 했는데 요즘 꽃은 왜 향기도 덜하냐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이렇게 늦게 꽃을 피우는 생태적 특성 때문에 '노경' '성숙'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노경의 경지는 단지 나이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거예요. 서양에서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지 늙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처럼 향기로워지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추위 속에서도 홀로 찬란하다

▲ 국화가 들어간 민화
ⓒ 유연준 촬영
우리의 전통 민화에는 모란과 함께 국화가 많이 등장합니다.(이어령, <국화-한중일 문화코드읽기 비교문화상징사전>, 종이나라, 131쪽) 민화 병풍에는 폭마다 다른 꽃이 그려지곤 해요. 이 때 적어도 한 폭에는 반드시 국화가 들어갑니다.

여기서 국화는 온 집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치기를 바라는 축원의 의미와 함께 '무병장수' '지조' '절개'를 상징합니다. 옛사람이 가장 염원한 부귀복록과 수명장수의 의미를 국화 그림이 담고 있는 것이죠.

국화꽃을 높이 층층이 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화는 '수(壽)'로 읽을 수 있다고 했지요. 층층이 높이 그린 국화는 곧 '고수(高壽)'의 뜻을 갖게 됩니다. 나이가 높다는 뜻으로 '고령'과 같은 말이지요. 오래 살라는 뜻입니다.

괴석 위에 국화를 그리는 경우도 있어요. 바위는 천년만년 변함없는 것이기 때문에 장수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장수를 뜻하는 바위에 국화가 더해져 수(壽)위에 수(壽)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요. 그러니 익수(益壽)가 됩니다. 연년익수(延年益壽)가 되는 것이에요.

연년(延年)은 오래 삶, 장수를 뜻합니다. 오래오래 더욱 더 장수하라는 뜻이 됩니다. 또한 독음이 같은 영년(迎年)의 의미로도 쓰입니다. 연년은 '새해를 맞는 일' '영세' '영신' '영춘' '해맞이' 등의 뜻으로도 쓰이지요. 결국 '새해를 맞아 더욱 더 오래 살다'라는 뜻이 됩니다.(조용진, <동양화 읽는 법>, 집문당, 123쪽)

옛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장수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거예요. 오늘날처럼 의료기술이 발달하여 수명이 늘어나기 전이니까, 언제 수명을 다할지 몰랐을 테고, 그래서 더욱 무병장수를 기원했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주요자라는 사람이 국화를 즐겨 먹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끝내는 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거든요.

또 유생이란 사람은 "국화즙을 짜서 화단증지 하여 1년을 먹으면 능히 백 살을 산다"고 했다더군요. 도교의 비경인 <포박자>에도 "국화는 신선들이 즐겨 먹었던 선식"이라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러한 이야기에서 보듯 국화는 곧 장수를 의미하게 되었지요.

또한 남양국수의 일화가 전해지는데요. 중국 하남성의 남부도시 남양 내향현에는 백하라는 강이 있다고 해요. 강기슭에 국화가 많아서 국화에 맺힌 이슬이 강물에 떨어지고, 또한 강물이 국화밭을 지나면서 여과되어 물맛이 달고 시원했답니다. 그래서 감수라고도 했다지요.

이 물을 마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장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국화의 약리작용을 확인도 해보기 전에 국화가 장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임으로써 국화가 수(壽)를 뜻하게 된 것이에요.(조용진, <동양화 읽는 법>, 집문당, 124쪽)

삶을 기원하던 꽃이 죽음의 의례를 뒤덮다

오늘날 드물고 비싸긴 하지만 국화꽃잎을 넣어 만든 베개인 국침도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국침을 베고 자면 실제로 머리가 맑아지고 단잠을 잘 수 있다고 해요. 두통을 치유하는 민간요법이었는데 실제로 그런 약리작용이 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요. 대신 생화라서 오래가지는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합니다. 꽃이 마르고 나면 부서져 먼지가 되는 것이지요.

최근에는 그런 국침 때문에 정치적 스캔들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이 지방순시에 나섰다가 지방 정치인으로부터 국화베개를 향토 기념물로 얻어 대통령에게 바쳤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대통령에게 바칠 선물로 사전에 제작된 것이었다고 해요.

베개 제작자는 비서관이 그 도시를 방문하기 사나흘 전쯤 정치인이 베갯잇을 갖고 와 내용물을 채워줄 것을 부탁해 베개를 만들어줬다고 밝혔습니다. 맑고 고결함을 상징하는 국화가 정치놀음에 얽혀서 더럽혀진 셈인데, 그 바람에 다시금 국화베개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사실 푸른 가을 하늘을 이고 소슬한 바람에 씻기며 하늘거리는 야국은 갈수록 찾기 어려워집니다.(이어령. <국화-한중일 문화코드읽기 비교문화상징사전>, 종이나라. 17쪽) 향기도 사라지고. 우리가 잃어가는 전통문화처럼 이제는 좀체 진수를 맛보기가 어려워요. 그토록 우리 일상 속에 가까이 있던 꽃인데 말입니다.

오히려 장수를 뜻하는 국화가 오늘날에는 장례식에서 많이 볼 수 있어요. 아이러니죠. 삶을 기원하던 꽃이 죽음의 의례를 뒤덮고 있으니. 그런데 장례식에 사용하는 국화는 망자의 평화로운 휴식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요.

흰 국화꽃의 자태와 향기처럼 맑고 평화롭게 가시라는 뜻이겠지요. 삶과 죽음 사이에 우리의 인생이 있는데, 국화가 그 둘을 다 의미하고 있으니 얼마나 소중한 꽃인가요? 가을이 오면 꼭 국화꽃의 향기를 맡아보세요.

태그:#국화, #한국미술, #그림 속 이야기, #장수, #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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