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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6일. 라보니에미. 허스키 농장

▲ 귀하신 몸이라는 화이트 허스키.
ⓒ 박건우
아침을 먹고 우리가 찾은 곳은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명물 허스키 썰매와 순록 썰매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스노우바이크를 타고 15분쯤 가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허스키 농장의 주인이라고 한다. 가이드를 따라 작은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니 썰매에 묶여있는 허스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그 허스키 썰매다. 꽤 많은 개들이 두 줄 일렬로 묶여있었는데 하나같이 힘이 넘쳐나 보였다. 우리는 그 썰매를 타고 눈의 여왕이 산다는 드넓은 설원을 질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그것이 말 그대로 상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이드가 우리를 안내해 간 곳은 농장 안에 있는 조그마한 트랙이었다.

날씨는 춥고 앞에 묶인 개들에게서 냄새는 난다. 트랙을 한 바퀴 돈 시간은 약 3분 정도. 타고난 뒤 그 이상은 탈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썰매를 타기 전, 가이드와 얘기를 해서 조금 더 타자던 우리들은 아무 소리 없이 가이드가 안내하는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 귀여운 허스키 강아지들.
ⓒ 박건우
농장 안의 한 오두막집에서 우리는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산열매로 만든 따뜻한 주스와 고소한 쿠키를 먹으며 허스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허스키의 등급, 허스키의 성격, 그리고 허스키 농장의 개들 사육에 대한 설명까지….

오두막을 나와 허스키 농장의 개들을 구경하러 갔다. 농장 안에는 많은 개집들이 있었는데 그 집들은 은퇴한 허스키들을 위한 집이란다. 대개 9살이 넘으면 허스키들도 정년퇴직(?)을 한단다. 허리를 다쳐 더는 썰매를 끌 수 없는 개들도 있고….

조금 더 가다 보니 개 서너 마리를 수용하는 작은 철창들이 보였다. 그곳은 새끼들을 기르는 곳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다가가니 어린 개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동심이 통해서 그런 걸까.

그런 개들이 귀엽다고 깔깔 웃는 프랑스 여자아이를 어린 개들이 특히나 좋아한다. 어린 여자아이와 그 앞에서 재롱을 떠는 어린 개들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어린 개들을 보고 난 뒤 현역(?)들을 보러 발길을 옮겼다. 몸집이 커서보다는 몸매가 균형있게 잘 빠져서 아주 당당해 보이는 개들이 보였다. 이 농장의 주인인 가이드를 보자 그 멋지고 당당해 보이던 녀석들이 이내 꼬리를 흔들며 재롱을 떤다.

개집에 달린 이름을 보지 않으면 우리는 도저히 구분을 할 수 없을 만큼 비슷하게 생긴 허스키들인데 주인은 보자마자 이름이 무엇이고 성격이 어떠한지 설명을 하며 자랑스러워 했다.

▲ 레인디어(순록) 썰매
ⓒ 박건우
농장을 거의 다 둘러보았을 때 한쪽 구석에서 한가하게 낮잠을 자는 하얀 개가 보였다. 다른 개들과 달리 하얀색을 띠고 있는 모습에 다른 종이구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허스키 중에서도 가장 보기 어렵고 귀한 개라고 한다. 귀하신 몸이라서 그런지 사진을 찍으려 하면 꼭 개집 뒤로 돌아서거나 아예 자려고만 한다.

농장을 둘러본 뒤 우리가 타고 온 스노우바이크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다 순록이 끄는 썰매를 보았다. 난생처음 보는 순록이 신기하기도 하고 타 보고 싶기도 했으나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2007년 1월 16일 라보니에미, 산타마을

어제 우리가 갔던 산타파크는 진짜(?) 산타가 사는 곳이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사업체라고 한다. 산타 마을에 사는 산타가 진짜 산타라고…. 어쩐지 익살맞은 산타는 영 산타 티가 안 난다.

산타 마을은 1982년 핀란드의 한 라디오 방송 때문에 조성됐다고 한다. 산타는 핀란드의 라플란다에 산다고 말한 라디오 DJ의 말 한마디에 세계 여러 나라의 어린이들이 굳게 믿고 있는 산타의 전설이 현실이 되었다.

▲ 산타 마을. 위에 보이는 선이 북극권임을 알려주는 경계이다.
ⓒ 박건우
우리는 어제오늘 라보니에미에서 지내며 동심을 간직한 어린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를 만난다는 설렘에….

일단 우리는 산타 우체국에 들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내기로 했다. 우체국은 아주 아담했다. 갖가지 예쁜 카드들과 그곳에서 근무하는 엘프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들이 한데 어우러져 포근한 동화의 나라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우체국 안을 둘러본 뒤 카드를 사러 가려는 데 갑자기 한국말이 들린다. 혹시 한국 사람들이세요? 우리는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편지들이 수북이 쌓인 책상 옆에 동양인 엘프가 앉아 있었다. 우리는 신기한 마음 반, 반가운 마음 반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국에서 온 엘프…. ‘써니’라는 이름을 가진 그 엘프는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고, 산타를 만난 뒤 꼭 다시 와 달라고 한다. 산타를 만난 뒤 별다른 계획이 없던 우리는 그러리라고 약속을 한 채 우체국을 나왔다.

▲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산타 마을 우체국.
ⓒ 박건우
▲ 산타 마을의 유일한 한국 엘프 '써니'
ⓒ 박건우
산타가 사는 곳은 우체국에서 멀지 않았다. 산타의 방에서 우리를 처음 맞은 것은 커다란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이었다. 책장들 사이로 풍채가 좋은 인상 좋게 생긴 할아버지 한 분이 보인다. 산타다!

산타와는 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산타는 바빴다. 산타의 정다운 목소리와 포근함이 좋았다. 하지만 내가 찾던 산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식적인 진짜 산타를 앞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게 보이겠지만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을 어쩌나.

산타를 보고 난 뒤 써니 엘프를 찾았다. 써니 요정은 우체국에서 편지들을 분류하는 일을 한다고 한다. 라보니에미에 사는 한국인이 없어 우리를 보니 너무나 반갑단다. 우리는 써니 엘프와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들과 내용이 가지각색이라고 한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감옥에 투옥된 사람까지…. 선물을 보내달라고 보내온 편지에서 어린 딸에게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고 보낸 편지까지…. 한국에서 오는 편지들을 읽으며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는다고 했다.

▲ 한국 어린이가 산타에게 보낸 카드.
ⓒ 박건우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편지를 읽으며 답장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리는 엘프를 보며 가슴 속 깊은 곳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그 뭉클함은 일상들이 어렵다고 도망치듯 이곳으로 온 나에 대한 부끄러움으로 이어졌다.

타국에서의 향수와 외로움이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삶을 사는 엘프, 더 나아가 그런 생활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며 살아가는 엘프….

▲ 동화 같은 분위기의 산타 마을 야경.
ⓒ 박건우
엘프와 헤어져 헬싱키로 향하는 기차로 향하면서 드디어 내가 찾던 산타를 찾았음을 알았다. 산타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음을 깨달았다, 내 마음속에…. 또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 행복을 다른 이에게 줄 수 있다면 누구나 산타라는 걸 알았다. 이곳 라플란다에서 산타가 있는 곳을 알았으니 이제 먼 길을 떠나야 할 차례다. 뒤늦게 찾아낸 산타를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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