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자 어쌔신

닌자 어쌔신 ⓒ 닌자어쌔신

2009년 하반기에 국내 영화 팬들이 가장 큰 기대를 가진 할리우드 작품은 아마 <2012>, <아바타> 그리고 <닌자 어쌔신>일 것이다. 이 셋 중 개봉을 아직 하지 않은 <아바타>를 빼고, 두 작품은 국내에서 흥행을 하고 있지만, 평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 어떤 영화든 완벽할 수 없는 법이고, 실이 있으면 득이 있고,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법. <2012>에 대한 평가는 이미 차고 넘쳐 더 이상 쓸 게 없는 듯하다. <닌자 어쌔신>에 대해서도 만만치 않은 리뷰들이 넘쳐 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냉정한 작품 평은 찾아보기 힘든 듯하다. 그래서 펜을 들어 본다.

"닌자 어쌔신의 작품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냥 관중들이 보고 재미있고, 그들이 느끼는 여운이 남아 있고, 그들이 느끼는 감동이 있다면 전부인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런 의견들이 있고 "비의 출연으로 인한 과도한 찬양이다"라는 의견도 있는 듯하다. 많은 리뷰들이 영화 전체가 아니라 배우 정지훈, 월드스타 정지훈에 초점이 맞춰진 덕분이다.

우리나라 연예계나 스포츠계나 외국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외화를 벌어들이고, 그것보다 중요한 국가 브랜드 창출에 힘을 쏟는 젊은 청년들에게 큰 격려와 응원이 쏟아진다. 또 그에 못지않게 비난도 속출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에 의한 냉정한 평가를 보기란 찾아보기 힘들다. 토론의 장으로 자리 잡은 온라인 공간에서도 제대로 된 토론을 찾아보기 힘들다. 감정적인 대화들이 그 원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한번 좋으면 무조건 좋고, 한번 나쁘면 무조건 나쁘다가 크게 드러나는 곳이 인터넷 세상이다. 나와 반대되는 이야기에는 감정적으로 받아친다.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 질 수 없고 제대로 된 타협을 이루어 내기 힘들다. 닌자 어쌔신의 평에 대한 극단적인 평가들이 이에 기인하는 듯하다.

한국의 이미지를 살리는 방법은 무조건적 칭찬만이 아니다. 외국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이 영화 대박이에요," "레인이 최고에요," 이런 댓글을 마구마구 생산해낸다고 해서 한국 배우 이미지가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 영화 평은 별 점 다섯 점 만점에 이 점(박스오피스 홈페이지)에 머무르는 데 댓글에 영화에 대한 칭찬만 쏟아진다면 진심 어린 평가도 신빙성이 없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단지 한국배우가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이다. 이 영화가 좋은 평을 못 받아도 우리나라 영화는 세계 영화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이 영화가 성적이 저조하면 어느 정도 이미지에 손실이 있겠지만, 배우로서 비에 대한 평가 자체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할리우드 기획자들이 가능성이 있는 배우를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다.

"제작진부터 감독까지 최고잖아요, 게다가 비가 주연인데 더 할 말이 있을까요? 최고죠." 그렇다. 영화의 상업성을 따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듯하다. 하지만 비가 출연해 작품이 최고인 것인가? 아니면 초호화 제작진의 영화에 출연한 비가 자랑스러운 것인가? 

배우 정지훈의 진정한 팬이 되고,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자가 되기 위한 길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조건적인 찬양이 아닌 결과물의 냉정한 평가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루한 서문을 쭉 쓴 이유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냉정한 평가는 그 작품을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작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배우들에 대한 평가 : 노력이 눈에 보이는 주연 배우, 그리고 호흡이 맞지 않은 연기

비의 몸을 보고 그의 액션을 보노라면 그의 노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한국에서 출연한 작품들만 따져보더라도 신인치고 그 정도 연기력을 보여준 이 드물었고 작품을 거듭할수록 그의 연기가 발전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신인배우 중에 할리우드 A급 영화 주연을 차치하고 노력을 안 하는 이 있는가? 분명 비의 노력은 할리우드에서 그와 함께한 스텝들과 동료배우들이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노력으로 영화의 작품성까지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에 상당한 공을 세운 요소가 비의 멋진 몸과 특유의 운동신경으로 매끄럽게 잘 빠진 액션이다. 그런 몸과 액션은 아무리 선천적인 요소가 훌륭하다고 해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문 무술 배우가 아닌 비의 군더더기 없는 몸매에서 나오는 날렵한 액션은 그가 피나는 노력을 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어색한 표정연기는 아쉬운 부분이다. 라이조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 위해 유년 시절, 청소년 시절의 라이조가 등장 상대적으로 비의 캐릭터의 무게감이 상당히 떨어졌다. 유년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설명이 된 라이조 캐릭터는 연출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인 모습이 많이 떨어졌다.

조연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코스기 쇼였다. 일본식 전통 액션의 대가라서 그런지 이 작품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특히 라이조와의 마지막 액션신은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자 가장 닌자다운 액션이었다.

그에 비해 다른 배우들의 연기는 많이 아쉬웠다. 서로 간의 호흡이 맞지 않는 듯 따로 노는 연기들이 부자연스러워 보였고 라이조와 코스기 쇼의 역할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캐릭터 설명이 없어 존재감이 없었다.

화려한 액션 : 매우 빠른 액션 전개
– 닌자 액션의 묘미, 하지만 눈에 잡히지 않는 현란함

 닌자 어쌔신 스틸컷

닌자 어쌔신 스틸컷 ⓒ 닌자어쌔신


이 영화의 가장 큰 업적은 닌자 액션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준 점이다. 사실 일본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여준 닌자의 역할은 미비했고 많이 어색한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닌자 어쌔신에서 닌자의 액션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쌍검, 표창 그리고 체인 낫의 아름다움을 배가시켰고, 닌자가 검은 도복을 고집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집어내 주었다. 어둠 속에서 조용한 급습, 그리고 번개 같이 빠른 몸놀림은 닌자 액션 공식의 확립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주로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재빠른 닌자 액션이라는 컨셉을 살린 것이 좋았지만, 그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음을 제작진은 인식했을까? 검은 색 옷으로 도배한 닌자들이 한밤중에 차보다 빠른 순간 이동으로 무대를 휘저을 때 그들의 액션은 현란하다 못해 어지러웠다. 이 영화를 한번 보고 그들의 움직임을 한눈에 잡을 수 없었다.  

잔인한 것인가? 화려한 것인가? – 붉은 선혈이 낭자한 스크린

이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인 피!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마도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 이후였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일본도를 들고 휘두르는 순간 스크린은 피범벅이 되어버린다. 닌자의 복수라는 테마와 맞물려 붉은 피는 관중들에게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다. 강렬하고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살인귀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모습만큼 멋있는 것이 없다. 또한 뱀파이어를 다룬 예술 작품들을 보면 알듯이 조각 같은 외모와 몸매가 피와 어우러지면 묘한 성적 흥분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영화 곳곳에서 터지는 피는 제작진의 야심찬 연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것도 남발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법. 영화에 과도하게 뿌려진 피와 도륙된 살덩이 덕에 현란한 닌자 액션이 우아함을 갖추지 못했다. 온몸에 피칠을 한 비의 모습이 섹시해 보이기는 하지만 결코 우아해 보이지는 않고 섹시하다 못해 징그럽게 느껴진다.

이것 외에 이 영화에서 집고 넘어 가야 할 점은 황당하고 매끄럽지 못한 설정이다. 온몸이 난도질된 비의 몸이 기로 인해 상처가 아무는 모습이라든지, 최강 닌자가 여주인공 앞에만 서면 느려지고 정확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점, 그리고 다른 곳에 달려 있는 심장은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게 해준다.

영화를 보면서 흐뭇했던 점은 비의 영향 때문인지 한국에 대한 정보가 어느 정도 담겨있다는 것. 영화 초반 형사들끼리 대화하면서 명성황후에 대해 언급한 점이라든지, 한국인 세탁소에서 보여준 KBS 월드 같은 것은 비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나타내주기 위한 제작진의 배려인 듯하다. (영화에서는 비의 국적이 나타나 있지 않다.)  

이 영화의 제작자 워쇼스키 형제는 새로운 소재와 과감한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어느 정도 영화의 질을 끌어 올렸지만, 그들의 대표작인 <매트릭스>와 <브이 포 벤데타>와 비교한다면 기대 이하인 것은 확실하다. 영화 전체 평을 한다면 그냥 평범한 정도랄까. 후하게 줘서 별점 3점 정도.

액션 영화는 오로지 액션!?

"액션영화는 스토리를 따지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스릴을 느끼고 재미만 느끼면 끝이다? 영화의 객관적인 작품성 기준을 왜 따지는가?"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는 액션영화들을 되짚어 보자. 역대 액션 영화들 중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다이하드, 러셀웨폰, 페이스오프 등의 할리우드 명작들과 오우삼의 영화들은 화려한 액션과 유머, 탄탄한 시나리오가 잘 결합된 작품들이었다. 그 작품들이 우리의 머리와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이유가 단순히 액션의 현란함 때문일까? 위에 언급한 작품들은 액션영화에서 오로지 액션만을 강요하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소룡, 성룡, 이연걸은 액션에 집중한 면도 있지만 그들이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배우들의 기초를 쌓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닌자 어쌔신은 비에게 첫 번째 할리우드 주연 영화라는 경험과 미국 내 인지도를 쌓기에, 이 작품이 비에게 주는 의미는 충분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대표작이 될 수는 없다. 그 특유의 노력으로 레인이라는 배우가 단순한 동양권의 액션배우가 아닌 여러 배역을 잘 소화 할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성룡, 이소룡, 이연걸이 오로지 액션 배우로서 자신들을 각인시켰다면, 비는 멜로에서 액션까지 영역을 넓혀서 아시아 배우들의 또 다른 롤 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더욱더 작품성을 갖춘 작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 했으면 좋겠다.

닌자 어쌔신 정지훈 워쇼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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