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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혜민(21·여)씨는 이번 겨울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에 올인하기로 했다. 등록금을 자기 손으로 벌기 위해서다. 낮에는 한 사무실에서 사무 보조 업무를 하고, 저녁에는 술집에서 서빙을 했다.

사무실 70만원, 술집 60만원. 그렇게 해서 그는 한 달에 130만원을 손에 쥐었다. 방학 두 달 동안 오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했을 때 그가 벌 수 있는 돈은 260만원.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8%나 올라 300만원을 훌쩍 넘긴 등록금을 내기엔 부족하다. 그는 다시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한다.


소 팔아서 대학 간다고? '우골탑 신화'도 옛말

▲ 패스트푸드점에서 6개월은 일을 해야 인문계 1학기 등록금을 벌 수 있다.
ⓒ 김귀현
'1년치 대학 등록금, 인문계열 600만원, 이공계열 800만원, 예체능·의학계열 900만 원. 여기에 7~10% 인상!'

대학 등록금이 무서운 속도로 오르고 있다. 2007년 새 학기를 앞두고 대부분 대학들이 7~10%의 등록금 인상안을 제시해,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안기고 있다. '부모 도움 없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댄다' '소 팔아 대학 보낸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농협중앙회 축산물 시세에 의하면 현재 소 한 마리 값은 약 450만원. 한 학기 등록금만 겨우 낼 수 있는 돈이다.

사립A대학 영문과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박아무개(21·여)씨. 휴학 기간 동안 그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시급 3500원을 받는 박씨가 하루 8시간씩 일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56만원.

박씨의 작년 한 학기 등록금은 300만원 정도였고, 올해는 7% 가량 인상될 예정이다. 박씨가 6개월 동안 꼬박 일해서 336만원을 벌어야만 320만원으로 오른 한 학기 등록금을 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박씨가 인문계열이라는 점. 학기당 100만원 정도 더 비싼 이공계열이라면, 8개월을 일해야 하고 한 학기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다. 이공계열보다 약 100만원을 더 얹어야 하는 예체능계열이나 의대라면 10개월을 일해야 한다.

박씨는 "이렇게 일해서 등록금을 다 충당하려면 학교를 졸업하는 데 7~8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면서 "매년 등록금이 오르니 차라리 대출을 받아서라도 학교를 빨리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중·고생 과외로 학비를 충당하는 대학생도 있다. 1건당 20만원에서 50만원을 벌 수 있는 과외의 장점은 학기 중에도 저녁 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과외비로 '그 비싼 등록금'을 댄다는 건 정말 꿈같은 얘기다.

과외 2건으로 한 달에 70만원을 버는 이승규(26·남·성균관대 기계과)씨는 "과외를 한다고 해서 그 돈을 모두 등록금에 보탤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기 때문에 생활비로 쓰다 보면, 저축할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30~4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며 "이 돈을 모아 400만원도 넘는 한 학기 공대 등록금을 내기는 힘들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사립 B대 2학년 이유진(가명·21·여)씨는 이번에 수능을 본 남동생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이씨는 부모님으로부터 "휴학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대학생 두 명의 등록금을 대기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이었다.

이씨는 "3학년 때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어 되도록 휴학을 안 하려 했지만,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면서 "동생이 공대에 합격해서 입학금까지 5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내 등록금까지 합치면 900만원 가까이 될 텐데, 큰 부담을 안겨드릴 수 없어 휴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등록금 걱정에 '노심초사'

▲ 많은 대학생들이 학자금 대출로 등록금을 납부한다.
ⓒ 김귀현
올해 입학을 앞두고 있는 예비 대학생들도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 들고 있다. 이유는 비싼 등록금 때문.

수시모집으로 C대학에 합격한 유민성(19·남)씨는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고깃집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등록금에 입학금까지 하면 큰 돈일 텐데,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보태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

신입생은 재학생보다 50~70만원 정도 되는 입학금을 더 내야 한다. 여기에 학교와 집이 멀리 떨어져 하숙을 하거나 기숙사에 들어가야 한다면 추가비용은 더 늘어나게 된다. 올해 자녀가 서울 소재 서강대에 합격한 대전광역시에 사는 김미희(51·여)씨는 "등록금에 숙소비까지 600만원 정도 생각하고 있다. 내후년이면 작은 아이도 대학에 가는데, 그때는 정말 집이라도 팔아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귀하가 받으신 학자금대출에 대한 원리금을 대출은행에 매월 납부하셔야 합니다. 다음과 같이 약정이자납입일이 도래하였으니 기일을 엄수하여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올 2월이면 한양대를 졸업하는 이준영(27·남)씨는 매달 이런 핸드폰 메시지를 받는다. 이제 취업한 지 갓 한 달이 된 사회초년생이지만 이씨는 약 15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부터 마지막 졸업 학기까지 꼬박 6학기 학자금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한 달에 약 30만원씩, 꼬박 5년 동안 빚을 갚아야 한다.

이씨는 "'돈 없으면 공부도 못한다'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빚쟁이가 되고 나니 등록금을 대주지 않은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며 착잡한 심정을 밝혔다.

그는 "이제 내가 번 돈으로 부모님, 동기들, 선후배들에게 맛있는 거 사드릴 수 있겠구나하고 기뻐한 게 엊그제 같은데 학자금 대출 때문에 계속 미루고 있다. 후배들은 학자금 대출 때문에 첫 월급의 기쁨을 잃어 버리는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대학 등록금 부담이 커지며 학자금 대출을 신청하는 학생들도 점점 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학자금정책팀에 따르면, 작년 한 학기에만 학자금 융자를 받은 대학생은 50만 명에 이른다.

학자금 대출자 50만명 시대, 누가 만들었나

▲ 성균관대학교에서는 등록금 협상을 위한 400인 조사인단을 구성한다.
ⓒ 김귀현
대학 등록금의 인상 속도는 가히 빛의 속도를 방불케 한다. 2000년 대학에 입학한 지현구(26·남·중앙대 기계과)씨는 "1학년 때 등록금은 약 250만원이었다. 작년 등록금이 420만원 정도였으니 이제 오르면 450만원은 될 것"이라며 "7년 사이에 무려 200만원이나 올랐다. 학교가 학생을 '교육의 대상'이 아닌 '돈벌이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대학 등록금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 조사에 의하면, 4년제 국공립대는 2004년 평균 9.4%로 큰 폭 상승한 이후, 2006년에는 10.0% 인상했다. 4년제 사립대의 평균 인상률은 2002년 6.9%, 2004년 5.9%, 2006년 6.6%로 꾸준하게 지속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국립대의 경우 서울대 13.7%, 전북대 29.4%의 높은 인상률이 제시됐다. 사립대도 한국외국어대 7.8%, 한양대 7.75%, 서강대 7.41%, 성균관대 7.2% 인상률이 확정돼 지난해 평균 인상률인 6.6%를 상회하고 있다.

한양대, 광운대 등 10여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하는 서울지역 대학생 교육대책위원회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수많은 적립금을 보유한 대학들이 예산의 8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대학 측을 강력히 비난했다.

또한 "정부가 등록금 문제를 학생과 학교의 싸움으로 방치하는 것이 문제"라며 "교육재정 6% 확보와 정부의 강력한 등록금 규제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서울 소재 한 사립대학의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교육부의 대학재정 지원액이 가장 낮다. 물가상승률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시설 투자, 우수 교수진 확보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등록금 인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사립대학의 등록금 책정은 학교 재량이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규제할 수 없다"며 "현재 등록금의 합리적 책정과 인상을 최소화해 달라는 내용의 협조 공문을 각 대학에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등록금 천만원 시대? 우리는 이미 활짝!
의대·예체능계열에서 공부하려면 '목돈 준비하세요!'

의대의 등록금은 이미 천만원을 육박한다. 한양대 의대 본과 1학년인 A(22·남)씨는 "작년에 약 920만원의 등록금을 냈고, 이번에 인상되면 천만원을 바라보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의대는 등록금이 정말 비싸다. 게다가 올해 우리학교에서는 정말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고 말했다. 그가 전하는 황당한 일은 이렇다.

한양대는 7.75%의 등록금 인상을 확정했으나, 의대와 음대에만 실습관 건립을 위해 2%를 더한 9.75%의 인상안을 제시했다는 것. 대학 당국은 2% 인상이 되지 않으면 실습관 건립을 백지화하겠다는 입장이다.

A씨는 "2010년부터 임상실습시험이 의사국가고시에 포함이 되기 때문에, 임상수기실습센터 설립은 필수적이다. 학교가 모든 걸 등록금으로만 해결하려 한다. 우릴 돈줄로 밖에 안 보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예체능계의 등록금도 비싸기로는 빠지지 않는다. 성균관대 영상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인 B(25·여)씨는 "등록금도 비싸지만, 이외에 들어가는 장비, 장소에 대한 사용료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실험실습비가 등록금에 포함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B씨는 "교내 시설은 한정되어 있어 제대로 사용하기가 힘들다. 어쩔 수 없이 사비를 들여 교외 시설을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B씨는 "등록금으로는 아직 천만 원이 되지 않지만, 기타 다른 비용을 계산하면 연간 천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태그:#등록금, #학자금 대출, #등록금 인상 반대, #등록금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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