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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여배우 쉴파(왼쪽)와 그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고 있는 제이드 구디.
ⓒ 로이터=연합뉴스
"쉴파는 개야."
"저 애는 빠키(파키스타인을 비하하는 말)야."
"인도인들이 마른 이유는 음식을 익혀 먹지 않기 때문이지."
"너를 보면 정말 역겹다."
"너는 사는 곳이 오두막집이니?"

몇몇의 젊은 영국 여성들이 한 인도 여성을 집단으로 왕따시키면서 내뱉은 말들이다. 영국 공중파TV에 이 말들이 여과 없이 그대로 방송되면서 인도 전역을 들끓게 만들고 있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리얼리티쇼

사건이 벌어진 곳은 런던 북쪽 외곽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 이 스튜디오 안에는 몇몇 남녀들이 같이 살고 있다. 이들은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채, 신문도 텔레비전도 볼 수 없이 지낸다. 오직 별도로 마련된 밀실에서만 외부와 대화할 수 있다.

그것도 자신이 원해서 외부와 접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호출이 있을 때만 그 밀실에서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들의 생활은 곳곳(심지어 침실까지)에 설치된 카메라에 의해서 <채널 4> 방송으로 바로 중계된다. 영국의 그 유명한 리얼리티 쇼 '빅 브라더' 프로그램이다.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의 직업은 가수, 모델, 배우, 작가 등 매우 다양하다.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들이 강한 사람들이 적지않게 뽑혔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는 참가자가 총 14명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8명으로 줄었다. 1월 20일이면 벌써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18일이 된다. 그간 이곳에서 함께 부대끼며 지내온 것이다

일주일에 한명씩 쫓아내는 규칙... 드러나는 인간성

@BRI@ 이 프로그램에는 기본 규칙이 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명 씩은 꼭 쫓아내는 것. 이를 위해 매주 두 명을 스튜디오 안에 사는 사람들이 투표를 해서 쫓아낼 후보를 선정한다. 그 중에서 두 명을 상대로 시청자들이 전화투표를 해서 최종으로 쫓아낼 사람을 결정한다. 한마디로 같이 살기 싫은 사람을 안에서 먼저 뽑으면, 시청자들이 보기 싫은 사람을 최종으로 결정하는 셈.

이런 쫓아내기 방식으로 이번에도 2명이 쫓겨났다. 3주도 채 안되었지만 갑갑하고 마음이 안맞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 견디기 힘들어 스스로 걸어나간 사람도 벌써 6명이나 된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에게는 상금과 유명인이라는 인기가 보증수표처럼 부여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갑갑하고 힘들다 보니, 사람들의 숨길 수 없는 본바닥이 나오기 마련.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것은 부지기수다. 그리고 반드시 남녀간에 짝짓기가 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영국 사람들은 깔깔거리고, 재미있다고 즐긴다.

노골적인 인종 차별과 왕따

이번 사건이 일어난 것은 바로 며칠 전. 주인공은 이번 참가자 중 하나인 '쉴파'라는 인도여성이다. 영화배우로 글래머러스한 몸매와 뛰어난 연기로 인도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녀가 몇몇 사람들과 대화 중에 버든이라는 여성이 "너는 오두막집에 사니?"라고 물었다.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서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서투른 인도식 영어와 행동을 두고, 특히 세 명의 영국 여자들(구디, 다니엘르, 조)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들과 쉴파 사이에 사소한 갈등이 발생했고, 급기야는 원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녀를 의도적으로 왕따시켰고, 그녀를 "개" "빠키"라는 경멸적인 말로 수근거리고 낄낄거렸다. "너를 보면 정말 역겹다"며 계속 그녀의 취약한 영어와 행동, 음식 등에 대해 힐난하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백인 영국 여성들.

의도적인 왕따와 힐난으로 눈물을 흘린 쉴파는 다른 영국 남성에게 "이것은 엄연한 인종차별이다, 이것이 영국의 실상이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이것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는 오히려 반박했다. 그 역시 백인 남성이었다.

갈수록 양측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그녀는 거세게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계속된 고립뿐이었다. 미스 영국 출신 모델인 로이드는 친구들에게 "쉴파는 자기 나라로 꺼져버려야 해"라고 비아냥거렸다.

▲ 인도 여배우 쉴파의 팬들이 지난 17일 인도의 퍼트나에서 영국의 리얼리티쇼 '빅브라더' 제작자의 허수아비를 불태우는 등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회복될 수 없는 모멸감... 국제적 갈등 비화

이같은 일들이 계속 진행되는 며칠 사이에 인도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쉴파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가 보도되자, 인도 시민들은 즉각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과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를 상징하는 허수아비를 만들어 화형시키는 등 2만여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인도 언론은 "쉴파가 교육받지 못한 영국 여성들과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며 계층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인도 정부도 엄격한 인종차별이라고 항의했다.

때마침 인도를 방문 중인 영국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영국이 공정하고 관대한 나라로 생각되어지길 바란다"며 "이에 어긋나는 것은 비판하겠다"고 에둘러 말했다.

<채널4>가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계속 묵인하자, 항의가 빗발쳤다. 영국 방송통합규제기구와 <채널4>에는 19일 현재 약 4만 건의 항의가 접수됐다고 일간 <더타임즈>는 보도했다. 또 이 프로그램의 후원사인 '카폰 웨어하우스'는 인종차별과 연관되고 싶지 않다고 광고 후원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영국 내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인종차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일부는 "그렇게 심각한 일이 아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오히려 동조적인 자세까지 취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을 방송한 <채널4>는 성명서를 통해 "문화적 계층적인 갈등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명백한 인종 학대나 차별의 행위가 없었다"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이에 따라 수십건의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고, 영국 경찰은 관계자를 심문하고 테이프를 확보해, 공공질서법 위반 여부 등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방송때마다 늘 물의... 그래도 언론은 즐거워

▲ '빅브라더' 사건을 돈을 벌기위한 방송사의 상술로 비꼰 <파이낸셜 타임즈>의 만평.
여론의 압박을 느낀 <채널4>는 세 명의 영국 여성들과의 밀실 대화를 통해 그들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한 것을 추궁(?)했고, 이를 눈치챈 여성들은 쉴파에게 마지못해 사과를 했다. 쉴파는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결국, 빗발치는 항의에 쉴파를 가장 괴롭힌 구디는 쫓겨나게 됐지만, 이미 구겨진 인도인의 자존심은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

'빅 브라더' 프로그램은 방송될 때마다 늘 사회 문제를 일으켰다. 일상적인 왕따, 만취 상태 폭력, 무분별한 성적 농담과 노출 행위 등으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영국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언론들은 이를 재미있게 다룬다.

아무튼, 뻔뻔한 <채널 4>는 욕은 얻어먹어도 '빅 브라더' 프로그램을 세계 만방에 알리게 되었고, 그 유명세에 따른 돈을 톡톡히 챙기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무려 600만명에 육박하는 사람이 빅 브라더를 시청했으니 말이다.

태그:#쉴파, #인도 여배우, #리얼리티쇼, #빅브라더,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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