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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살 소년이 블레어 총리에게 보낸 편지 기사를 1면에 소개한 <인디펜던트>지. 오른쪽은 편지 전문.

@BRI@"왜 우리 아빠가 감옥에 있나요? 왜 아빠가 관타나모 베이라는 먼 곳에 있나요?"

영국에 사는 한 소년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쓴 편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편지의 주인공은 '아나스 엘 반나'라는 9살된 소년이다. 같은 또래 아이들은 아빠 엄마 품에서 뛰어 놀고 있지만 그에게는 그럴 아빠가 없다.

4년 전에 떠난 아빠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보지도 못한 관타나모 베이라는 곳에 아빠는 있다고 하는데 언제 돌아올까. 소년은 속이 탔다.

그래서 그는 2년 전에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답장이 없었다. 이번에는 답장이 올까. 아빠를 보고 싶은 마음에 소년은 또 한번 용기를 냈다.

"내가 2년전에 편지를 썼는데 왜 당신은 답장을 안해요? 내가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왜 답장을 안해요, 나의 질문에 답장을 해주시겠어요?"

따지듯이 질문을 던진 소년은 바로 "왜 우리 아빠가 감옥에 있어요? 왜 아빠가 관타나모 베이라는 먼 곳에 있나요?"라고 재차 물었다.

"나는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당신은 당신의 자녀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죠? 하지만 나와 우리 형제, 누이는 3년 동안 아빠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에는 꼭 대답해 주세요."

비뚤비뚤 크고 작은 글씨지만 글 속에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짙게 느낄 수 있다.

관타나모의 잔인한 5년

오는 11일은 관타나모 수용소가 처음으로 사람들을 구금한 지 5년이 되는 날이다. 그간 약 300명의 사람들이 이 곳에서 풀려났지만 관타나모에는 여전히 약 400명의 사람들이 알카에다나 탈레반과 연관된 '테러 용의자'라는 명분으로 상상도 못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갇혀 있다.

9일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요르단 태생인 소년의 아버지 자밀 엘 반나는 4년 전에 알 라위라는 사람과 함께 감비아에서 체포됐다. 그가 뭔가 의심스러운 기구를 소지했다는 이유였다. 그것은 배터리 충전기로 판명났지만 그는 쿠바에 있는 미군 해군기지인 관타나모 수용소로 옮겨졌고 여전히 감금 중이다. 당뇨병이 심해지면서 고생하고 있지만 약은커녕 음식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의 시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건강은 악화되고 있다.

취조실 모습 관타나모 기지내 캠프 V의 한 취조실 의자와 바닥에 족쇄가 채워져 있다.
ⓒ AP=연합뉴스
이처럼 관타나모에는 심한 매질은 물론이고 사람의 인내력을 뛰어넘는 잔인한 고문이 아주 지능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디언>에 따르면 햇볕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하루의 대부분을 구금시키고, 잠을 자지 못하도록 매시간마다 사람을 깨우는 등의 고문이 다반사다.

성적 학대와 종교적인 굴욕감을 주는 것도 미군이 즐겨쓰는 고문이다. 특히 사우나처럼 뜨거운 곳에 장시간 있게 하다가 갑자기 영하의 추운 곳으로 옮겨서 혹한을 견디게 하는 고문 등은 견디기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미 연방수사국(FBI)도 이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런 고문에 어떤 장정도 온전할 리 없다. <인디펜던트>는 남아있는 수감자들의 상당수가 정신병을 호소하고 있고, 고문을 견디다 못해 지금까지 40여명이 자살을 시도했고 3명이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일부의 수감자들은 단식 투쟁을 벌이며 싸우고 있다.

무한정 억류... 고조되는 비난 여론

사정이 이렇지만 이들은 법적으로 어떤 권한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들을 전쟁지역에서 붙잡은 '적 전투원(enemy combatant)'으로 지정, 이를 악용하고 있기 때문.

미국 정부는 이들을 범죄자로 기소하는 등의 재판 절차를 밟을 경우 이들이 변호사 선임을 할 수 있는 등의 권리가 생기므로, '적 전투원'이라는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이들을 무한정 억류하고 있는 것. 실제 그간 5년간 그 누구도 미국 법정에서 정식으로 재판을 받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관타나모 5년을 맞이해서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규모 집회가 세계 곳곳에서 예정되어 있다. 이라크 전쟁에서 아들을 잃고 미국 반전운동의 상징이 된 신디 시핸은 쿠바 하바나에서 집회를 열고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촉구할 계획이다.

영국 내에서도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소년의 아빠를 포함해 8명의 영국 거주자들이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소년의 아빠의 경우처럼 영국에 거주하지만 영국 국민이 아닌 사람은 송환을 요구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데이비 자유민주당 의원은 "영국 정부는 위선적이고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며 "관타나모 베이에 대해서 비판을 하면서도 영국 거주민들에게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사면위원회의 케이트 앨런도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은 영국 국민"이라며 "미국이 송환할 의사가 있는 데도 영국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엔 고문금지위원회도 지난해 5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법적인 근거도 없이 테러용의자들을 장기간 구금하고 있다"며 관타나모 수용소의 즉각적인 폐쇄를 요구한 바 있다.

끌려가는 죄수 미군 헌병이 관타나모 수용소의 죄수들을 감방으로 호송하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1만4000명, 미국에 의해 수감중

그러나 미국 정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서는 자기들만의 방법을 고집하겠다는 것. 미 FBI의 관타나모 수용소 보고서에 대해 미 국방부는 "새로운 내용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로버트 듀란드 관타나모 수용소 대변인은 "수감자들의 단식 투쟁은 알 카에다가 쓰는 방법과 일치한다"며 "국제사회에서 여론의 관심을 일으켜서 미국에게 국제적인 압력을 넣으려는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폈다.

<인더펜던트>는 세계 곳곳에는 미국에 의해 1만4000명이 수감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관타나모가 고문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관타나모보다 더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이 자행되는 곳이 많을 것이라는 게 이 신문의 분석이다.

소년은 11일 토니 블레어 총리를 만난다. 아마도 이 자리에서 토니 블레어는 그의 석방을 기대하는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며 미국의 눈치를 살피는 영국 정부가 과연 얼마나 적극적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태그:#관타나모, #아나스 엘 반나, #편지, #관타나모 수용소, #토니 블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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