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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의 추석은 우리 가족에게는 여느 때와는 다른 추석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에는 아버지께서 막내이다 보니 인천에 사시는 사촌큰형네로 차례를 지내러 가는 것이 일반적인 명절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올해부터는 자체적으로 제사를 모셔야 하는 관계로 전 가족이 전날부터 제사상을 마련하느라 온 가족이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도 더 피곤한 추석명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처음 차려보는 차례상
ⓒ 김기세
저도 이번 추석에는 가급적이면 보탬이 되려고 밤을 까는 일이며, 떡방앗간에 가는 일, 솔잎을 따는 일까지 팔 걷어붙이고 나서 저녁 늦게서야 음식준비가 거의 끝이 났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처음으로 차례상을 차리려니까 이론과 실제가 많이 달라서 책으로만 보던 '좌포우혜', '홍동백서', '조율시이' 등등이 머리속에만 있지 어떻게 배치를 해야 할지 난감하였습니다.

아버지 산소를 비롯한 조상님의 산소를 방문하고 돌아온 저녁에 온가족이 둘러 앉아서 도란도란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나서 포만감에 젖어 있을 때 아내가 저를 보고 들으라는 듯이 "오늘 저녁 설거지는 남자분들이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바로 "어 그래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할께"라고 대답을 하고 설거지 대장정에 돌입하였으나 그 많은 양에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 우선 어른이 9명에다가 아이들 8명의 국그릇, 밥그릇, 그리고 갖가지 반찬을 담았던 접시 등을 계산해보니 싱크대에 세번에 나누어 담을 수밖에 없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 김기세
평소 설거지를 가끔 하는 편이라서 마음은 편하게 시작했지만 약 1시간에 걸친 설거지는 결코 녹록치 않은 중노동이었습니다. 중간에 셋째형이 주방에 와서 "야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져"라고 웃어가면서 농담을 하였지만 도와주지는 않았습니다.

설거지를 하는 중간에 어머니께서 제 옆으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왜 갑자기 안하던 설거지를 하고 그런다냐?" 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 에이, 어머니 명절때 한번은 해야죠"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래? 그럼 열심히 혀" 이렇게 짧게 말씀하시고 가셨지만 며느리 4명이 TV를 보고 있는데 막내아들이 설거지를 한다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지는 않으셨습니다.

설거지를 끝내고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놓고 큰형수님과 아내와 제가 마주 앉아서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 전에 제가 설겆이를 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있자니 어머니의 눈치가 보여 영 마음이 놓이지가 않았으며, '차라리 그냥 내가 할 걸'하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명절날 이런 때에 애들에게 교육을 겸해서도 설거지를 가끔 해주는 것도 참 좋은데 오늘 당신 혼자 설거지를 하는 것보다 시아주버님들하고 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당신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제가 형님들을 설득해서 같이 설거지를 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우리 집안에 딸이 없어서인지 어머님 세대의 완고함 때문인지 평소에 며느리들에게 그렇게 잘하시던 분이 오늘은 조금 서운하셨는가 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평소 합리적이시고 며느리들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이해를 잘 해주신다고 생각했던 어머니께서 아들이 설거지 하는 것에 대해서 적극 찬성하는 모습이 없는 것은 결국 저의 불찰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설날 명절에는 아예 명절이 시작되기 전에 설거지 당번을 4형제 가족별로 편성해 가사노동을 균등하게 분담하는 산교육의 현장이 되도록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추진을 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혹시 같이 동참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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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과 국가가 향후 진정한 자주, 민주,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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