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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1일 전국 시도별로 교육위원선거가 실시됐다.
ⓒ 연합뉴스 한상균
나는 지난 7월 31일 실시된 충청남도 교육위원선거에 출마했으나 큰 표차이로 낙선했다.

"그 사람 왜 출마했대?"

떨어질 것이 분명한데 왜 출마했는지 모르겠다는 독설이 선거기간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면 나는 왜 출마를 했을까? 무의미한 도전은 아니었다고 자위를 해보지만 내 결정이 대책 없이 충동적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다만 나는 오래 전부터 명퇴를 준비해왔고 새로운 인생을 모색하고 있었던 시점에서 '유레카'라고 외친 격이랄까?

무모했지만 진지했던 선거 참여 결정

지난 4월말,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7월말에 실시되는 교육위원선거가 화제가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교육위원선거는 나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그런데 좌중의 화제가 집중되다보니 귀를 기울이게 되고 대화에 끼어들게 되었다. 출마 예상자들에 대한 하마평과 그들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되었고 불합리한 선거풍토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교육위원회가 퇴직관리들의 정년 연장이나 권력과 명예의 유지를 위한 자리가 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와 개탄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이번에도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과 함께 자조적인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화 중에 문득, 내가 출마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급 반장선거에조차 나가본 적 없는 내가 뛰어들기에는 너무 큰판이었다. 더구나 시기도 늦었고 준비도 없이 갑자기 출마를 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남들은 수년 전부터 준비를 해서 이미 투표권자인 학교운영위원을 100명을 심었느니 200명을 심었느니 하는 판이었다. 이미 뒤쳐질대로 뒤쳐진 나에게 남은 시간은 3개월 뿐이었다.

평소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주변 분들은 물론 이 선거를 잘 아는 경험자들을 두루 만나 조언을 구하였다. 대체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끝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을 일삼는 나의 습관적인 도전벽을 아는 친구들은 신선한 일로 받아들여주었다.

선거에 대한 대략적인 조사와 의견을 수렴한 후 드디어 도전을 선언했다. 처음에 만류하던 친지들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네가 하겠다면 함께 하겠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의리와 인간적인 신뢰였으며 평생을 갚아도 부족할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투표권자인 학교운영위원 명단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각 학교 홈페이지를 뒤지니 명단은 나오지만 연락처 등 인적사항이 없어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운영위원 명단 확보를 위한 노력은 선거가 끝날 때까지 눈물겹게 이루어졌다.

엄밀히 말해서 교육위원선거는 포괄적인 선거운동 금지 규정에 묶여 공식적으로 인정된 세 가지 방법 즉, 선관위가 주관하는 합동연설회, 선관위가 수합해 발송하는 선거공보물, 그리고 언론사 등이 주최하는 토론회 외에는 선거 운동을 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그러므로 선거구인 천안·아산·연기지역 초·중·고 180여 학교의 정보를 얻어내는 일 자체가 불법이며 시작부터 범법행위를 해야만 하는 것이 이 선거의 특징이었다. 운영위원을 만나서 지지를 호소해도 안 되고 전화나 이메일도 보내서는 안 되는 그야말로 할 게 아무 것도 없는 선거인 셈이다.

만남도, 전화도, 이메일도 불법인 교육위원선거

그러나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모든 후보가 너나할 것 없이 불법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다만 얼마나 교묘하게 하여 적발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 후보의 능력인, 웃지 못할 제도인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선거법에 저촉될까봐 전전긍긍하다 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다. 운영위원들을 만나는 것은 물론 전화조차 조심했기 때문에 도와주는 친구들로부터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면 엄청난 착각과 환상에 빠져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선거에 임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지만 애초에 설정한 방향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투표권이 있는 학교운영위원은 교장, 교사, 학부모, 지역 인사로 구성된다. 이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니 교장은 절대로 나의 편이 될 수 없으며 교사도 전교조가 반분을 한데다가 나머지는 학맥과 각종 인연으로 얽혀 이미 지지후보가 정해진 상태였으므로 나의 공략대상은 학부모와 지역 인사에 한정된다.

따라서 내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학부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로서 그리고 휴직기간 동안 학교와 교육을 밖에서 바라본 경험에 의해 학부모들과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40대, 현직교사, 학부모'임을 내세워 학교현장과 학부모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해외 유학 등 다양한 활동 경험을 살려 교육을 다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교육위원회가 원로원이 아닌 진취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 위해서 젊은 평교사도 진출하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선거전략, '학부모를 공략하자'였는데...

그러나 실제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학부모위원을 만나야 했음에도 반대로 학교 방문과 교장 면담으로 시간을 다 보냈으며 교사의 입장을 버리지 못하고 철저하게 학부모 입장이 되지 못했다.

더구나 선거운동 방법의 참신함이나 임하는 자세의 신선함을 보여주지 못하고 구태에 의지했다는 것은 준비 부족과 선거철학 부재라는 근원적 한계에서 기인한 것이다.

동문 선후배를 찾아다니고 인맥에 의해 간접적으로 지지를 호소하는 구태의연한 방법으로는 다른 후보와의 차별성도 없고 새로운 바람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패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또한 현직 교사로서 학교 수업과 불가피한 업무에 최소한의 노력이나마 피할 수 없었으며 정책 개발과 공보물 제작, 연설문 작성, 언론사 질의서 답변 등 모든 사항을 혼자서 직접 하다보니 가뜩이나 부족한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모든 것이 부족한 최악의 상황에서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첫 번째 합동 연설에서의 실수는 상황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갔다. 이후 선거 막바지 일주일은 엉망이 됐다. 젊고 똑똑하다는 이미지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데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선거 당일 하루는 극도의 긴장과 초조함으로 보냈다. 왠지 모를 불안과 불투명한 기대가 기묘한 심리적 상태를 만들어냈다. 이동중인 차안이건 사무실에서건 축 늘어진 육신을 가눌 수가 없었다.

투표가 끝나고 순식간에 끝난 개표 결과를 듣는 순간의 당혹감과 절망감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초강도의 심리적 쇼크였다.

부풀대로 부풀은 애드벌룬이 터져버린 순간과 같은 정적의 시간이 지나고 감당해야할 많은 상황들이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지지자들이 몰려있는 장소에 가서 인사를 하고 걸려오는 전화에 응답을 하면서 표정 관리와 감정 조절을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도전과 실패를 수없이 경험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같이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겠지만 나를 믿고 함께 해준 그들의 심정을 어떻게 위로하고 보상해줄까? 너무나 큰 빚을 졌다는 사실을 절감하였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머릿속에서 선거가 떠나질 않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선거 과정을 복기하면서 순간순간을 되새겨 본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아무도 원망할 수 없는 자책의 시간이 계속된다. 고통스런 과정이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선관위의 사무국장의 말이 두고두고 떠오른다.

"선거에서 뽑힌다는 것은 자신이 잘나고 유명해서가 아니라 유권자가 찍어줘서 되는 것이다."

투표용지의 11명의 후보 명단에서 내 이름 석자 아래에 도장을 꾹 눌러 찍게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정말 미처 몰랐다.

미술평론가로서 예술가들의 독단적인 작업에 익숙하고 나 자신도 타인의 평가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지만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전문지보다는 인터넷 매체에 글쓰기를 선호하면서 클릭 수에 민감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혹독한 결과가 단박에 드러나는 충격적인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

경험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오랜 교훈이다. 링 위에 올라 선수로서 직접 게임을 뛰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이 경험을 어떻게 살려야 할까?

다음 선거에 또다시 도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아내의 바람대로 이제는 준비 없이 무모한 도전을 일삼는 습성은 고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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