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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C-TV 첫 전파를 탄 뉴스프로그램.
ⓒ ABC방송국 제공
텔레비전은 1925년 영국의 사업가 존 로지 베어드에 의해 발명됐다. 1928년 첫 송출당시 화면은 놀랍게도 컬러였다. 그러나 초기 텔레비전은 영국과 미국의 극소수만이 시청할 수 있었다. TV가 보통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이었다.

호주에서 TV 프로그램이 처음으로 방영된 것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 1주일 전이었다. 척 포크너라는 미국인이 첫 방송의 전파를 탔는데 그 후 호주시청자들은 TV화면을 통해서 수많은 미국인들을 지켜봐야 했다. 호주스타일 영어가 미국스타일을 닮아갈 정도로 미국 TV프로그램의 영향력은 컸다.

생일날 CM송을 부르는 어린이들

각 가정에 TV가 보급되면서 호주가정의 구조도 바뀌었다. TV스크린을 향해서 소파가 자리 잡았고 라디오는 부엌이나 아이들의 방으로 옮겨졌다. 밤에 라디오를 듣는 사람의 숫자가 크게 줄었고 둘러앉아서 카드게임을 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졌다. 아침시간의 화제는 온통 전날 TV에서 시청했던 내용으로 채워졌고 그날 저녁에 방송될 내용을 놓고 이런저런 예상을 하기도 했다.

1956년 9월 16일, 호주에서 첫 전파를 내보낸 TV방송사는 시드니에 위치한 상업방송사 TCN9(채널9의 전신)이었다. 이어 11월 4일, 상업방송인 ATN7(채널7의 전신)이 출범했고, 바로 그 다음날 호주의 공영방송인 ABN2(ABC의 전신)가 첫 전파를 내보냈다.

▲ 멜버른 올림픽을 녹화하는 ABC-TV.
ⓒ ABC방송국 제공
TCN9 개국 직후에 멜버른 올림픽이 열렸던 덕에 올림픽의 주요 행사와 경기 전체가 TV로 생중계됐다. 사람들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은 것은 TV 프로그램만이 아니었다.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방송되는 상품들도 시청자들의 구매심리를 충동질했다. 1960년대에는 방송광고도 큰 비즈니스로 성장했다. 채널7과 채널9 두 상업방송국의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광고를 제작하는 몇몇 광고회사도 돈방석에 앉게 된 것.

1950년대 후반 채널7에서 인기리에 방영했던 어린이 프로그램 <타락스쇼(The Tarax Show)>가 당시의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 있다. '타락스'는 어린이들이 마시는 청량음료 상표였는데 당시 어린이 청량음료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했다. 또 1960년대 초반, 채널9에서 방송됐던 <미키마우스 클럽>은 호주어린이들의 생일잔치 문화까지 바꿔놓았다. 당시 생일파티에 참석한 어린이들은 모두 미키마우스 플라스틱 귀를 달고 "미키 마우스/미키 마우스/영원토록 그의 깃발을 높이, 높이/왜냐고?/우린 미키마우스를 좋아하니까"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 일들이 벌어진 한참 후에야 호주사람들은 'TV가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호주 어린이들 대부분이 월트 디즈니 영화사가 만든 할리우드 만화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인 다음이었다.

방송국 내부에 유치원을 개설한 이유

상업성을 추구하는 기업이 방송매체를 운영하다보면 시청자가 방송을 통해 얻는 정보의 상당부분이 상업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매체가 상업화되다보면 사회문제에 대한 여론 형성도 보수적으로 흐르게 된다.

▲ 특수라디오로 ABC라디오를 청취하는 1930년대 호주농촌의 청취자.
ⓒ ABC방송국 제공
공영과 민영이 라디오방송으로 대결하던 1950년에도 상업성에 대한 폐해가 적지 않았다. 상업방송의 폐해를 뒤늦게 깨달은 호주당국은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영국의 BBC를 모델삼아 호주공영방송국의 뉴스, 교육 분야를 대폭 강화시켰다. 상업방송국에서는 외면하는 어린이 음악을 포함한 클래식음악 작곡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유아와 초등학교 저학년어린이를 위한 본격적인 교육프로그램을 방영한 것.

어린이 교육프로그램에 관한 1953년 호주통계청 통계에 의하면 전국의 공사립초등학교 80% 이상이 ABC 라디오를 통한 주간교육을 실시했다. 특히 ABC방송국에 ABC유치원이 개설됐는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ABC유치원에서는 물론 방송프로그램을 활용한다.

TV방송이 시작된 이후에는 대부분의 학교가 ABC-TV에서 제작한 역사 및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수업을 진행했다. 때문에 호주에는 교육방송이 따로 없다. ABC-TV는 이어 '호주식 삶'을 전파하는 한편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주로 방송함으로써 채널9, 채널7 등 상업방송과 차별화를 꾀했다. 현재 ABC에서 방영하는 오락프로그램은 코미디프로그램과 토크쇼 정도다.

상업광고도 "0", 시청료도 "0"

▲ ABC 시드니 스튜디오 입구.
ⓒ 윤여문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공영방송국에서 시청료를 징수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ABC-TV는 시청료를 징수한 역사가 없다. 광고도 없다. 전액 국가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그렇다고 부러워 할 일만도 아니다. 국가예산이란 게 국민이 낸 세금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1975년, 이민자들을 위해서 개국한 또 하나의 공영방송 SBS-TV는 2000년 이후부터 제한적인 광고방송을 겸하고 있다. <박스 참조>

그렇다고 공영방송국들이 정치적으로 편파방송을 한다는 비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간혹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특정 정당으로부터 정파적 성향을 보인다는 항의를 받는 경우는 있다. ABC 방송 자체가 정치권의 논란대상이 되는 경우는 대부분 회장과 사장이 임명될 때다. 양쪽 모두 정부의 추천으로 총독이 임명하고 있는데 임명대상자의 정치성향에 따라서 정치권과 ABC 노조 등으로부터 뒷말이 나오는 것.

호주 공영방송들의 시청률은 시청률에 사활을 거는 상업방송국에 비해 그다지 높지 않다. 매주 발표되는 톱10 프로그램에 ABC-TV나 SBS-TV의 프로그램이 포함된 경우는 거의 없다. 두 방송국 모두 나름대로의 특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높은 시청률을 요구하는 국민의 요구도 없다.

각종 스포츠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호주에서 ABC-TV나 SBS-TV는 비교적 비인기종목을 중계하여 스포츠의 균형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민자 방송국인 SBS-TV가 호주의 비인기 스포츠였던 축구를 꾸준히 방영해왔는데 올해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호주축구팀이 2006년 독일월드컵에 진출하면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횡재를 하게 됐다.

또한 ABC-TV는 국회의사당 회의를 생중계 또는 녹화중계 하는데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시청률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호주의 유권자들이 지지정당을 결정하고 정치리더를 뽑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BC의 자랑, '미디어워치'

호주 공영방송의 여러 활동 중 전 세계에 귀감이 되고 있는 것은 미디어비평 분야다. 영국 BBC에서는 별 성과를 얻지 못한 미디어 비평프로그램을 호주가 성공시킨 것인데, 자사의 실수나 약점을 먼저 고백하고 타 언론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 ABC-TV의 <미디어워치> 웹페이지.
호주의 언론인들이 가장 꺼려하는 프로그램이 매주 월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ABC-TV의 <미디어워치(Media Watch)>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후반에 두 명의 코미디언이 나와서 호주언론의 보도행태를 희화시키는 코너는 <미디어워치>의 백미다. <미디어워치>는 전반부에서 우선 ABC-TV와 ABC라디오가 오보를 하거나 실수한 부분을 지적한다. 또한 감시대상인 시드니모닝헤럴드 편집국 간부에게 진행을 맡기는 등의 방식으로 타 언론사의 화살을 피해가면서 공정성을 인정받는다. 반론권을 제공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ABC-TV의 <미디어워치>가 주로 꼬집는 부분은 오보사례들이다. 그나마 실수로 인한 오보는 지적으로 끝내지만 고의성이 엿보이는 오보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더욱이 편파보도라고 판단되면 확실한 논거를 들이밀면서 강하게 비판한다.

2005년 12월 11일에 발생한 시드니 인종폭동 사건을 보도하면서 인종차별적인 방송을 내보낸 토크쇼 중심의 라디오방송국들은 난타를 당했다. 다민족다문화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ABC방송은 <미디어워치>를 통해 인종차별적인 언론에 끊임없이 경종을 울린다.

그러다보니 타 언론사들로부터 많은 소송을 당하는 프로그램이 <미디어워치>다. 최근 <미디어워치>는 수년간 끌어온 재판에서 승소했다.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채널9의 <60분>의 한 리포터가 <미디어워치>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배상청구소송에서 호주대법원이 피고인 ABC-TV의 손을 들어준 것. <미디어워치>는 당시 방송을 통해 "<60분>의 리포터가 영국 BBC 다큐멘터리를 그대로 흉내냈다(테러단체와의 인터뷰를 하면서 BBC 기자의 질문과 유사한 질문만 던졌다는 것)"면서 "그 리포터는 좀 더 부지런하게 취재했어야 했다"고 비아냥거린 바 있다.

히긴스 대법원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서 "채널9의 <60분>이 타격을 입은 것은 인정되지만 ABC-TV <미디어워치>의 비판은 언론의 자유범위안에 있었다"고 밝혔다. 한편 ABC 측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시청자를 위한 미디어 비판의 필요성을 증명한 것"이라면서 "이는 <미디어워치>의 승리일 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알권리와 미디어 감시/비판기능을 지켜내기 위한 중요한 판결이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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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①]우리에게 '공영'방송은 과분한가


68개국 언어로 방송되는 공영방송 SBS

▲ SBS 시드니 스튜디오 전면과 로고.
ⓒ윤여문
이민자의 나라답게 1975년 호주에 살고 있는 200여 소수민족을 위해 설립한 공영방송 호주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s)도 주목할 만하다.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SBS는 이민자들 사이에서 시청율과 청취율이 높은 편이다.

SBS라디오의 경우 68개 언어로 방송되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방송하는 방송국이다. 스페인어 아랍어 등은 10여개 국가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100개 소수민족을 커버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직원관리와 직원들 간의 조화가 힘들지만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호주SBS방송국 같은 곳이 드물어서 미국이나 유럽 등 다민족국가에서 리서치 하러 올 정도. 그들은 분쟁 없이 SBS가 운영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가끔은 분쟁국가 출신들의 시위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SBS는 UN의 축소판 같아서 협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가 전쟁을 할 당시에는 자국에 불리한 방송이 나갈 때마다 항의전화와 방송국 앞 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자주 부딪치는 편이다.

호주SBS 출범은 1972년 고프 휘틀람 노동당 정부의 백호주의 철폐가 가져온 결과였다. 국제사회에서 악명을 떨치던 백호주의가 청산되면서 호주는 빠르게 다민족국가로 거듭났다. 그러나 새로 유입된 이민자들은 영국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호주백인문화를 익히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호주당국은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다문화사회정책(Multi-Culturalism)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과정에서 SBS방송국이 기여한 공로는 아주 크다.

이민문화 전문가들은 미국과 호주의 이민문화정책을 다음과 같이 나눈다. 미국의 이민문화정책이 미국화를 전제로 하는 '용광로(Melting Pot)' 시스템이라면 호주의 이민문화정책은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샐러드 접시(Salad Bowl)'라는 것.

'샐러드 접시' 문화정책이라는 용어의 구체적인 예가 바로 호주SBS방송국이다. 호주SBS는 출신국의 언어로 출신국의 뉴스와 문화를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전하면서 다른 소수민족의 문화를 수용하는 다민족다문화주의를 실현해 보이고 있다.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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