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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회 홍보 자료와 도록을 겸비한 엽서 4종. 엽서가 도록보다 제작비도 싸고 쓸모도 있을 것 같아 엽서를 택했다고 한다.
ⓒ 박성진
지난 9월 말경 회고전을 가진 '이화백(본명 이기섭·28)'. 20대 나이에 '화백'이라는 아호를 붙인 것도 부족해서 발칙하게도 '회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회고전을 앞두고 만났던 이화백은 "선배 교수 똥 못 닦겠다" "개인전 해봐야 그 밥에 그 나물" 식의 한국 화단에 대한 독설을 쏟아냈고 독자들은 겁 없는 젊은 작가의 독설에 뜨겁게 반응했다.

그 이화백이 다시 전시회를 연다. 바로 7일부터 13일까지 광화랑에서 열리는 회화전 '뿌리'. 근 두 달 만에 만난 이화백은 여전히 '싸가지 없었'고 한국 화단에 대한 '전의'로 타오르고 있었다. 이화백은 지난 번 회고전은 관람객도 많았고 반응도 좋았다고 했다. 지난 번 기사에 대한 반응이 괜찮았다며, 팬클럽이 생기면 근사한 창단식도 하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지난 번 회고전을 끝내고 곧장 이번 전시회 준비에 들어가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고생하기도 했다고. 이번 회화전 '뿌리'는 지난 전시에서 보여주지 못한 미공개 작품과 최근 작업한 작품을 망라한, 두 번째 회고전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아래는 이화백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똥 닦지 않고 그림 그리겠다... 관객 없는 예술은 '딸딸이'

▲ 이화백. 러시아 생활 경험 탓인지 겨울에도 반팔 셔츠를 즐겨 입는다.
ⓒ 박성진
- 9월 열렸던 '이화백 회고전'은 어땠나?
"생각보다 사람들이 무척 많이 와서 놀랐다. 그런데 전시한 작품이 많지 않아서 좀 미안했다. 이메일도 많이 받았다. 비판도 있고, 격려도 있고…. 미술 교육 상담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물론 전혀 말도 안 되는 비판은 '삭제' 버튼을 바로 눌러 버렸다. 기사의 독자 의견도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칭찬과 격려도 있었지만 비판도 꽤 있었다.
"예술이란 게 어차피 정답이 없는 거라 비판이 나오는 게 정상이다. 비판할 사람들은 더 많이 해도 된다. 안티 팬들이 많아야 나도 더 유명해지지 않겠나? 어쨌든, 내 이야기가 나가면 비판이든 칭찬이든 댓글도 많이 달아 주고 클릭 수도 올려 줬으면 좋겠다."

- 지난 인터뷰에서 '선배 교수 똥 닦는 거 못하겠다'고 했는데 한 독자가 '똥 닦아 주는 게 사람 사는 정이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 도와주는 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얼마나 교수 선배 보필 잘했고 비위 잘 맞췄나, 안 찍히고 줄 잘 서려고, 비서처럼 따라다니면서 똥 닦는 거, 이런 게 문제라는 거다. 똥 닦은 사람들끼리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거다. 선배 교수 따라다니면서 아부하고 똥 닦느니 그림 안 그리고 만다."

- 한 독자는 "진정한 천재는 젊은 시절에 만용과 기행을 하지 않는다. 고뇌하고, 왜 이렇게 나는 부족한가, 몸부림친다"는 충고를 남기기도 했다.
"시대가 변했다. 예술도 변했고. 그 의견은 골방에 처박혀 고독인지 뭔지 머리 쥐어짜며 울분을 토해야만 진정한 예술이 나온다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 말은 헛소리다. 예술을 하려면 밖으로 나와 주변과 소통하고 즐기고 웃고 슬픔과 고통을 나눠야 한다. 그렇잖아도 힘든 세상인데 왜 예술까지 목에 힘주고 고상 떨며 고독을 씹는가? 그러니까 관객이 없는 것 아니겠나. 관객 없는 예술은 딸딸이다!"

미술에서 그림은 이미 '소수'다

▲ 피로연2. 캔버스에 유채. 피로연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최근작.
ⓒ 이화백
- 이전 인터뷰에서 이번 전시회는 파격적일 거라고 말했다.
"경찰에 끌려갈 각오도 하면서 파격적으로 가 보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하도 말이 많길래 예전에 그렸던 가벼운 누드 몇 점으로 그칠 생각이다. 별로 누드 같지도 않은 건데, 어쩌면 민원이 들어올지도 모르겠다(웃음).

'뿌리'라는 제목대로 내 뿌리를 보여준다는 건데 회고전 2탄이라고 봐도 된다. 정물, 누드, 인물 등이 많고 30점 전시한다. 한 번도 전시하지 않았던 것이 대부분이고, 지난 번 회고전 끝나고 새로 작업한 작품도 몇 점 있다."

- 전시장에 술을 갖다 놓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키위라고 들었다.
"'제스프리'라는 키위 전문회사에서 후원해 줬다. 기획서 작성해 넣을 때는 크게 바라지 않았는데 키위에다가 소액 현금 지원까지. 사실 너무 고맙다. 기업들이 조금씩이라도 화가들을 후원하면 정말 큰 힘이 될 거다."

▲ 피로연1. 캔버스에 유채. 이화백이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품 중 하나. 저 뒷편 낯익은 얼굴은 현 부시 미국 대통령을 그린 것.
ⓒ 이화백
- 이화백 작품에는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인물 그리기를 좋아한다. 얼굴 하나하나 그리는 게 시간이 꽤 걸리고 힘들지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재미도 있다. 학교 다닐 때는 해골을 옆에 놓고 매일 만지면서 같이 살기도 했다."

- 평면 회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설치 미술 같은 다른 쪽에는 관심 없나?
"미술에서 '회화'라는 평면적인 매체가 갖던 독점적 지위를 상실한 마당에 그림은 이미 소수에 속한다. 난 구상회화의 희소성을 부각 시켜 더 이상 접하기 힘든, 다양한 과거의 기법으로 새로움을 만들려고 한다."

- 당신의 작품에는 현대와 과거가 공존한다. 새로운 시도인가 아니면 과거의 현대적 계승인가?
"내 작업은 메이저, 즉 기존 양식에서 비롯된 거라서 '형식'의 파격이나 완전한 새로움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미술에서 그림은 이미 소수이기 때문에 그림, 다시 말해 구상회화는 옛 기술을 장인적 정신으로 계승하는 의미도 될 수 있다."

바로가기- 스코트 콘트레라스-코터베이(미국 동테네시대 교수)가 쓴 이화백 평론

서울의 미술가들이여, 단결하라

- 특색 있는 젊은 작가로 알려지고 있는데 일간지나 미술 전문지에서 반응은 어떤가?
"일간지는 무시하기로 했다. 내가 일간지 기사 채울 만큼 유명한 것도 아니고…. 언젠가 모 일간지 기자들 하고 저녁 먹고 힘들게 떠들면서 이야기했는데 기사는 보도자료 그대로 나왔더라. 공짜로 저녁 먹으려고 만난 거밖에 더 되겠나. 밥값이 예상보다 적게 나와 다행이긴 했다.

한 번은 한 일간지 기자가 기사 써줄 테니 작품 하나 달라고 하더라. 아주 노골적이라서 당황했다. 차라리 내 작품 팔아서 그 돈으로 당당하게 광고하고 말겠다. 이번 전시회 보도자료도 일간지에는 아예 돌리지도 않았다."

▲ 친구들3. 캔버스에 유채.
ⓒ 이화백
- 서울에 갤러리가 꽤 많은데 그만큼 미술 시장이 형성됐다고 봐야 하나.
"인사동, 청담동, 신사동 등을 중심으로 한 250개쯤 된다고 알고 있다. 갤러리가 많은 런던도 150개 정도 있는데 대부분의 서울 갤러리에서는 별다른 노력 없이 그냥 수익 낼 수 있다. 화가들이 자기 돈 싸들고 가서 대관하고, 도록(圖錄) 찍고, 홍보하고, 화가 가족, 친구, 선후배들 다 몰려와서 자화자찬하고 그림 한 점씩 사주고. 작품 팔리면 절반은 갤러리 몫이니 갤러리는 앉아서 수익만 챙기면 된다.

서울에 갤러리가 많은 것도 이런 식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이용한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악명 높은 몇몇 갤러리는 반 강제로 대관 계약서를 밀어 넣기도 한다. 나도 예전에 한 번 당했다. 물론 거절했다. 미술가들이 한 달만 파업하면 서울의 갤러리 다 정리될 거다. 기획력을 가지고 작가들을 대하고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갤러리는 살아남을 것 아닌가."

- 자비를 들여 전시회를 하기도 한다.
"관람객이라고 해야 주변 친지들과 지인뿐인 자화자찬 전시가 우리나라 미술에 발전적인 기여를 한다고 볼 수 있을까? 관객도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멋지고 고상하며 예술적이라고 여긴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특히 허영심에 허세 부리는 사람들, 백화점 문화센터 유화반 6개월 정도 수강하다가 돈 풀어서 전시장 대관하고 그럴싸하게 도록(圖錄) 찍고, 친구 친척 불러다 놓고 수많은 화환들 앞에서 사진 찍고, 쓰레기 같은 걸 작품이라며 터무니없는 가격에 떠넘기고…. 관행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역겹다."

1등 정해 놓고 하는 공모전, 절대 안한다

- 기억에 남는 우리나라 작가가 있다면?
"김민준이라고, 정말 대단한 테크니션이다. 정말 드물게 16세기 네덜란드 화풍을 구사한다. 유학파도 아닌데 어느 유럽 작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또 한 명은 홍영택이라고 전시회 갔다가 충격 때문에 뒷골 땡겼다. '뭐야,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팝아트 계열인데 끝내 준다. 변두리 학교, 지방대라는 제약 때문에 길을 못 찾고 있는 학생들이나 화가들이 많다. 그들을 위한 자리가 필요하다."

- 그들과 연대할 계획은 없는가?
"연대한다는 게 단체 만들어서 우리끼리 잘 해 보자는 거라면 싫다. 난 지금 있는 무슨무슨 협회 같은 데는 안 들어 갈 거다. 기회나 동기만 좋다면야, 앞서 말한 화가들과 그룹전이나 시리즈 전시회 하는 것도 좋겠다."

- 한국의 공모전에서 평가 받을 생각은 없나?
"갤러리에서 공모전 정보를 주면서 응시해 보라고 전화할 때마다 전부 거절했더니, 이젠 전화 안 온다. 그런 공모전, 특선, 입상 등등 해서 상 받는 사람이 몇 수십 명 된다. 응시료, 그거 받아서 장사하고 돈 받고 입상 경력 파는 거 밖에 안 되지 않나. 대상은 이미 정해 놓았을 거고."

- 연달아 전시회를 했는데 다음 계획은?
"작품 좀 팔리면, 다음 작품 구상도 할 겸 여행을 떠날 생각이다. 아이디어도 고갈된 것 같고. 좀 쉬고 싶다. 글 쓰는 거나 강의도 생각 중이다. 안 팔리면 은퇴 선언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올 거다. 대충 뭐 '이화백의 귀환', 이런 제목 달고. 어쩌면 이름 바꿔서 '이부장' '이과장'… 이런 식으로 나타날지도."

▲ 친구들2. 캔버스에 유채.
ⓒ 이화백

덧붙이는 글 | 이화백 회화전 '뿌리(Roots)'

날짜: 2005년 12월 7일~13일
장소: 서울 광화랑(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광화문역 세종로 지하도)
티켓: 무료
시간: 오전 10시 ~ 밤 10시
문의: 02)399-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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