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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백 작업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 중 하나인 '피로연'
ⓒ 박성진

화백은 화가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화백(李畵伯)이라면 이씨 성을 가진 화가를 높여 부르는 말이 되겠다.

언제 높여 불러야 하는 게 그 기준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회 통념상 새파랗게 젊은 화가에게 '화백'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상당한 경력이 쌓이고 연배가 있는 화가에게 붙이는 존칭적인 호칭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화백이라고 붙여 부르는 이씨 성을 가진 20대 젊은 남자 화가, 이화백(본명 이기섭·28). 그는 이 예명만으로도 순식간에 우리나라 화단에서는 '싸가지 없는 놈'이 됐다. '씨'자를 붙여 호칭하자면 '이화백씨'가 된다.

싸가지 없는 20대 화백의 '회고전'?

▲ 작업실 풍경(Art 1)
ⓒ 이화백
그는 이화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9월 21일부터 서울 인데코 갤러리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데 제목이 '이화백 회고전'이다. 이 젊은 '화백'은 고작 세 번째 개인전 제목에 '회고전'이라고 이름 붙인 것.

스스로 이 아이디어를 낸 이씨는 "지금까지 그린 거 전부 들고 나가서 보여주려고 그렇게 붙인 거"라며 "재미나지 않아요? 그리고 '회고전'이라면 뭔가 있어 보이는데, 어디서 새파랗게 젊은 놈이 갑자기 회고전이라고 들고 나오고…"라며 말을 이어간다. 회고전이지만 영어 부제는 '질풍노도(live aggression)'가 숨어 있다. 질풍노도의 회고전이다.

이화백은 우리나라 미술계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 초등학교 초년기 시절 시절부터 외무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해외 생활을 해야 했고 초등학교 초년기와 고등학교 시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벨기에, 영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교육 받고 자랐다.

이런 탓에 우리나라 미술계에서는 낯선 인물이다. 좀 서글프게 말하면 친구도 선후배도 없다. 서글픈 무적자, 난데없이 어디서 굴러 와서는 '이화백'이라고 자칭하며 불편하게 굴고 있는 셈이다. 한편 그는 이런 무연고 배경이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씨가 주목 받는 이유는 이런 그의 발칙함, 연고 없는 쓸쓸함 따위가 아니다. 그의 가능성을 두고 소수의 사람들은 이미 그에게 주목하고 있다. 한번도 전시회를 연 적 없는 미국 미술계에서도 그에 대한 평론이 나오기도 한다.

미국 동 테네시 대학 미술학자 스코트 스트라네스 교수는 이화백의 작품을 놓고 마티스, 피카소를 넘어 러시아 모더니즘까지 과거와 현대를 망라하고 모던과 포스터 모던을 아우르고 있다고 평하며, 베끼기를 넘어서 신중하게 줄타기하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평한다.

아래는 젊은 화가, 이화백의 작업실과 그가 가끔 들르는 서울 모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다. 이씨와 싸가지 없음은 별로 연결되지 않는 듯했다. 그가 갖는 화가로서 자신감, 자기 생각에 대한 고집, 한국 미술계에 대한 거침없는 불만 토로… 이런 것들로 싸가지 없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 피크닉
ⓒ 이화백

예명 바꿔가며 캐릭터 창조

▲ 이화백
ⓒ 박성진
- 이화백…직접 붙인 이름인가? 이씨 화백 많을 텐데… 주변 화가들이 불만 좀 있겠다.
"사람들이 이화백이라구? 어 나두 이화백인데? 라고 반응하기도 한다. 재밌다… 이씨면 다 '이화백'일 테니. 근데 문제는 '화백'이란 호칭 붙이려면 그래도 나이도 좀 있고 그런 사람인데… 새파란 놈이 어디서 나타나서 '이화백' 이라고 말하고 다니니깐… 싸가지 없다고 욕 엄청 먹는다. 정 안되겠다 싶으면 나중에 이박사로… 아 참 음악쪽에… 이박사가 있으니 그건 안되겠다.

작품 말고 칼럼 같은 글 쓸 때는 또 다른 이름을 쓰기도 한다. 이름이 몇 개 있다."

- 글이나 미술 활동 모두 예명을 즐겨 쓰는데… 이유가 있다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걸 좀 싫어하기도 하고… 나와 나의 작품, 활동을 분리시키고 싶기도 하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말을 할 때는 이런 이름, 다른 걸 하고 다른 말을 할 때는 저 이름… 이렇게 쓰면서… 나한테도 여러 생각이 있고 특징이 있을 테니깐… 그 때마다 캐릭터를 창조하는 거다. 어떤 때는 내가 이 이름 갖고 무슨 글을 썼고 어떤 말을 했는지 헷갈린다."

- 우리나라에 선후배나 학연 같은 게 없다보니 불이익도 있을 수 있고, 한편으론 그런 데서 자유롭기 때문에 편할 수도 있을 텐데.
"언젠가도… 한 나이든 교수랑 술자리에서 그 교수한테, 작품 활동도 안 하면서 무슨 미술하냐고 따지고 대들었다. 술깨고 보니 내가 심했던가 싶었는데… 한번 교수되면 실력있든 말든 삼사 십년씩 하면서, 작품도 안하고, 작품해도 제자들 시켜서 다 하고 그러는데… 그게 어디 말이나 되나.

사실 나야 여기에 아무런 연고도 없으니 잃을 것 없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사실… 자기가 단지 나보다 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가르치려 들고… 그런 걸 못 참겠다. 그리고 선후배, 교수 제자 따지면서 똥 닦아 주기 하는 거 자존심 상해서 못한다."

- 어린 시절에 떠나서 고등학교 때 다시 한국에 왔는데… 고등학교 시절은 어땠나?
"졸업장은 있는데, 한 2년 반 다녔다. 학교 가기 싫어서 아침에 소주 한 병 원샷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자고 그랬다. 또 한 때 영화에 빠져서 집에서 학교 안가고 영화만 보기도 했고."

-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했나?
"처음에 학교 갔을 때, 전에 다니던 외국 학교들하곤 너무 달라서 나름대로 충격도 컸고…. 그리고 당시에는 외국 갔다 온 애들이 거의 없어서 주변에서 이래저래 시비도 많이 걸고…. 애들이 왜 도시락에 빵 안 싸오고 밥 싸오냐고 시비 걸고…. 아니, 우리 엄마가 밥 싸준 거 갖구 와서 먹는 데 어쩌라구… 정말.

선생들은 면담하자고 불러 놓고, 왜 자기 집 오디오 고장났다는 말은 하는 건지…. 그게 무슨 뜻이겠나. 어머니가 용돈 챙겨줘야 하는 거다. 학교생활 적응 못하는 데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에휴. 그 학교 언젠가 학원 비리로 걸리기도 했더라."

"평론 써 줄테니 돈 달라고 하더라"

▲ 해변가(Beach)
ⓒ 이화백

- 한국에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은 있는가?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마쳤으니깐… 그때 1년 정도 입시 미술을 한 적 있다. 근데 잔기술만 가르쳐 주고 거의 매일 석고상만 그리라고 하길래 지겨워서… 그냥 뭐 대충하고 여학생들하고 많이 놀았다."

- 작품에 대한 평론을 봤는데…스코트 콘트레라스(미국 동-테네시 대학 교수)의 글을 보니, "여러 가지 것들 사이에서 신중하게 줄타기 하고 있다"면서 피카소, 마티스, 20세기 러시아 모더니즘 등등 이런 많은 것들을 단순한 복습이나 베끼기 이상을 넘어 이화백만의 영역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내용의 평가를 하고 있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중간에 비판도 있다… 하여간 누군지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평론을 잘 써줬다. 한국에선 모르는 사람한테 이렇게 안 써주는데."

- 우리나라 평론가들이 쓴 건 없나?
"돈 줘야 된다. 지난 번에 보니 60만원 달라고 하던데…. 그리고 평론이 아니라 무슨 결혼식 주례사 같이 쓰고 원…. 비판적인 평가를 못 받는다. 기본적으로 평론이란 게 없다고 말하는 게 낫다."

- 이화백 작품 중 젤 비싼 건 얼마나?
"한 450만원. 예전에는 천만원짜리도 있었는데 값을 확 내렸다. '그래 나도 이 정도는 받아야지' 하는 생각도 해봤고, 또 '내가 발로 그려도 그거 보다 낫겠다' 싶은 그림 갖다놓고 천만원, 이천만원씩 팔아먹는 거 보면… 내 그림을 싸게 팔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근데 나는 그냥 박리다매로 가려고 한다. 나도 그림이 팔려야 먹고 산다. 미술계 딴따라, 장사꾼이 될까 한다. 원가에 조금만 붙여서 팔 거다. 작업하면서 이건 얼마 저건 얼마 원가 계산 다 나온다. 물론 중간에 갤러리에서 원하는 가격도 있고 해서 맘대로는 안 되겠지만."

- 미술은 언제 시작했는지… 동기가 있다면?
"벨기에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였는데 미술 선생님이 계속 따라다니면서 제발 그림 그리라면서 꼬셨다. 넌 재능 있다 꼭 해야 한다, 이러면서…. 난 싫다고 만날 도망 다녔는데 그림 그리면 그 시간에 수업 빠져도 된다고 말하길래 그 말에 혹해서 시작했다. 수업 땡땡이 칠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은가."

- 고전 작가 중 좋아하는 화가가 있다면.
"음… 미켈란젤로. 뭐, 다들 내 라이벌이다."

- 가르치는 일은 안 하나.
"지난 학기에 모 대학에서 강의 했는데, 예쁜 여학생들한테 정신 팔려서 강의하다가 학생들한테 찍혀서 학교 게시판에 막 올라오고 엉큼한 선생이라고 진탕 욕먹고… 그 다음부터 안 불러 주더라.

어느 학원에서 어린이 미술 선생을 해본 적이 있는데, 한 달 하고 곧바로 잘렸다. 원장이 자꾸 애들한테 잔기술만 가르치라고 하길래 나는 기초부터 잘 가르쳐야 한다고 대들고, 원장은 대학만 잘 가면 된다면서 그런 거 필요 없다고 티격태격 싸웠다. 축구 가르칠 때 무조건 골만 넣고 이기라고 가르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가르치는 것도 스스로 배우는 게 많아서 좋지만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는 거 아니겠나. 일단 작품에 집중해서 아무도 못 따라오게 해 놓고… 나중에… 어떻게 해볼까… 하긴 지금도 못 따라 오긴 하지."

술 먹고 그림 보는 음주가무전 열어...개인전 자주 해봐야 그 밥에 그 나물

▲ '이화백 회고전' 전시도록. 펼친 모습(뒷면). 세번 접힌다.
ⓒ 갤러리인데코

- 한국에서 처음 개인전 열었던 게 2002년 '음주가무전'? 전시회 제목이 재미난데.
"그냥 뭐 술 먹고 놀면서 그림보자… 그 때 갤러리에서는 와인 갖다놓고 했는데, 난 그거 약하다고 우겨서 테킬라로 바꿨다. 나중엔 전시가 어땠는지 기억이 영 안 나서… 앞으론 가볍게 맥주로 할까 생각 중이다. 일반적인 고상한 전시회는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한다."

- 지난 번 음주가무전에는 술로, 이번 전시회에도 일반 전시회와 다른 게 있다고 들었다.
"이번에는 조금 촌스러운 느낌이 나는 호피 무늬 천으로 갤러리 입구부터 싹 도배했다. 아마 처음에 들어오면, '이게 무슨 갤러리야' 싶을 지도 모르겠다. 그거 말고 이런 저런 이벤트도 많이 있다. 꼭 와야 된다. 재미있을 거다."

- 이번 개인전이 세 번째이고 제목은 회고전이다. 젊은 화가의 회고전?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한참 젊은 놈이 회고전 한다니깐, 주변에선 제목 바꾸라고 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이화백이라는 이름으로 하니.

회고전이 뭐… 지금까지 그린 거 골라서 싹 들고 나와서 한 번 보여주는 거 아니겠나. 어차피 이번 개인전 하고 다음에 파격적인 걸로 한 번 하고 좀 더 작품에 몰입하거라서 지금까지 한 거 들고 나와서 정리해서 보여주는 거다."

- 2002년에 하고, 이번이 3년 만에 개인전 하는 거다. 개인전 자주 하는 화가들도 있던데.
"교수 임용에서 개인전이 점수가 되니깐 많이 하기도 할 거고… 어떤 화가는 일년에 네 번인가 다섯 번도 하길래 가본 적 있는 데 뭐… 별 거 없고 그냥 그 밥에 그 나물… 어느 정도 준비되고 작품이 쌓여야 개인전도 하는 건데… 솔직히 가수가 일년에 몇 장씩 음반 낸다고 해봐라… 뭐 별거 있겠나."

-이번 개인전 후 계획은?
"이번에 하고 나서 서울 광화문 지하도에 있는 '광화랑'에서 한 번 더 할 거고… 다른 주제로…. 그 광화문 전시회는 좀 파격적인 주제로 해볼까 한다. 아마 (경찰에) 끌려가지 않을까 모르겠다. 에이… 끌려가면 또 어때. 그때 끌려가면 누군가 멋지게 기사 써 줬으면 한다. 얼굴 가리거나 하지 않을 테니."

이화백회고전(A retrospective : Decade of live aggression)

때: 9월 21일-30일

곳: 서울 인데코 갤러리 www.galleryindeco.com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615-1, 지하철 압구정역 2번 출구, 소망교회/신구중학교 맞은편)

연락처: 02 - 511 – 0032

*이화백

영국 써리 예술 대학, 러시아 모스코바 수리코프 예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여기저기서 몇 번의 개인전, 스무 번 정도 그룹전을 했다.

작가 연락처 mattise@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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