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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이백여년 전 얼굴은 곱상한 모습이 서울에서 온 사람임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차림은 한없이 누추하여, 첩첩산중 골(谷)을 파먹고 사는 이곳의 어느 젊은이보다 더 초라해 보이는 사내가 이곳에 숨어들기 위해 이 외진 길을 걷고 있었으리라. 때는 2월이라 짧은 해는 산 아래로 스며들고 마지막 남은 한 줌 해에 소리 없이 겨울은 사그라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 배론교(橋)를 건너 배론성지 가는 초입길. 전봇대가 의미심장합니다.
ⓒ 원상호
지난 28일 충북 제천에 위치한 봉양의 배론성지를 찾은 이유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도 아니며 가슴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 싶어 찾은 것 또한 아닙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는 한 젊은이를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의 신념과 이상과 삶의 목표를 만나고 싶었으며 세상의 부귀영화 모두 버리고, 골짜기로 숨어들어야 할 처절하리만큼의 그 꿈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 사건으로 더욱 유명한 이곳은 1784년 천주교가 전래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해박해(1791년)가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심심산골로 숨어들어가 옹기를 굽고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던 곳 중의 하나로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때 아주 유능한 젊은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황사영이라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정조대왕이 많이 아꼈던 사람이기도 했다는데, 앞날이 창창한 그 부귀영화를 버리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이곳 봉양의 배론까지 숨어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북경의 주교에게 조선에서의 천주교 박해에 대한 실상과 더불어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해달라고 하는, 그 유명한 '황사영 백서'를 토굴에서 작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황사영 백서는 학계에서도 많은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세에 의존하여 민족을 배반했다는 것에서부터 그 때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까지….

그렇지만 저는 한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동안은 황사영이 되기로 한 것이죠. 그의 신념, 이상, 삶의 목표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은 1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신념을 통제받아야 했고, 이상은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접어야 했으며, 삶의 목표는 오직 출세의 길이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나라에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가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 똑같은 이념을 갖도록 배워왔습니다. 지금은 아니지요. 그런데 왜 이리도 허탈할까요. 아이들은 자유로운데 어른들은 아직도 고정된 틀에서 나오기를 꺼려합니다. 그 뒤에는 잘못된 역사, 교육, 문화가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갇혀 있는 셈이지요.

배론성지 또한 지리적으로 갇혀 있는 곳입니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그곳은 답답함을 넘어 지나치게 쓸쓸하기까지 합니다. 그곳에서 8개월이 넘도록 토굴생활을 하면서 1만3384자에 달하는 글을 흰명주에 촘촘히 썼을 27세의 그를 생각하면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는 아마도 갇혀 있는 민족을 탈출시키고자 곱게 정성들여 한 글자, 한 글자에 눈물을 떨구며 썼을 것입니다.

▲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
ⓒ 원상호
지금으로부터 약 200여 년 전입니다. 대역부도 죄인으로 27세의 나이에 극형을 받고 순교한 날이 바로 11월 5일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을이 한창 무르익어 가는 때에 잡힌 그는 붉게 물들어가는 계절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가을을 떠나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가을을 따라 떠나간 것이겠지요.

▲ 황사영순교현양탑
ⓒ 원상호
그의 신념은 그렇게 후세에 길이 남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아름답기만 한 이곳이 그 때도 지금과 같이 아름다웠을까요. 아니겠지요. 지금도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그 속에 담긴 슬픔까지 걷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슬픔은 십자가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다가왔습니다.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 없을 정도의 서늘함,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아찔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요. 붉은 단풍이 흙길에 깔려서는 자꾸만 제 발걸음을 잡는 것 같습니다.

▲ 십자가의 길
ⓒ 원상호
성지의 가을은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말이죠. 그때도 가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무심하게….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그만 벗어버리고 싶을 때에도 계절은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하기 위해 바삐 지나가듯이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지면 우리 삶의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질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는 것일테지요.

▲ 배론성지의 단풍
ⓒ 원상호
세월은 여전히 지금도 흐르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흐를 것입니다. 끊임없는 박해 속에서도 신념의 꿈을 버리지 않고 순교하는 그날까지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배우고 익히며 옹기를 굽고 농사를 지으며 아마도 그들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종교는, 신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 배론학당 초기 전경
ⓒ 원상호
황사영이 순교한 지 어느덧 이백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리고 배론성지는 웅장한 자태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황사영이 바라던 신념과 이상, 그리고 삶의 목표는 완성되어진 걸까요?

▲ 십자가의 길 가는 길에서 본 배론성지 성당
ⓒ 원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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