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80년 5.18 당시 전남대 정문
ⓒ 5.18기념재단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도 24년이 됐다.

5·18이 시작됐고 그 중심에 있었던 전남대학교(광주광역시 용봉동). 하지만 지금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24년 전 이 학교 정문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5·18관련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흑백의 낡은 사진 한 장을 보았다. 80년 5월 18일 당시 전남대학교 정문을 담은 사진이었는데 전경과 학생들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당장 사진을 출력하고 카메라를 들고 전남대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을 나와 왼쪽으로 가면 둥근 타원형의 잘 다듬어진 석조물이 보인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장성필
'이곳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된 곳이다.

1980년 5월 17일 자정 불법적인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따라 전남대에 진주한 계엄군은 도서관 등에서 밤을 새워 학문에 몰두하고 있던 학생들을 무조건 구타하고 불법 구금하면서 항쟁의 불씨는 뿌려졌다.

이어 18일 오전 10시경, 교문 앞에 모여든 학생들이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에게 항의하면서 최초의 충돌이 있었으며, 학생들은 광주역과 금남로로 진출해 항의 시위를 벌렸다.

계엄군은 항쟁기간 중 시내에서 끌고 온 시민들을 여기 종합운동장과 이학부 건물에 수용, 집단 구타하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주검은 학교 안에 매장되었다가 그 후 발굴되었다.

당시 정문 앞에는 용봉천이 흐르고 그 위에 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지금은 복개되었다.

학생과 시민들을 불법 감금했던 이학부 건물도 철거되었으며 교문도 모양이 바뀌었다.'


6년 동안 정문을 드나들면서 나는 단 한번도 그곳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낡은 사진 한 장 때문에 24년 전 이곳에서 일어났던 아픈 선배들의 상처를 알았고 그 상처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도 알았다.

한편으로 5·18이 시작되고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남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24년 후의 후배로서 그러한 선배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부끄럽기까지 했다.

과연 2004년 전남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우리에게 5·18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사진 한 장이었다. 24년 전 우리의 선배들이 총칼 앞에 당당히 서서 민주화를 외치고 독재타도를 외쳤던 이곳에 나도 서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 현재 전남대 정문에 있는 사적비
ⓒ 장성필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