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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아이는 올해로 청소년이 되었다. 이 말인즉슨 사춘기가 더욱 심화되는 중(극단으로 치닫는 중)이라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북한이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이 무서워서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아직 닥치지 않은 내년이 더 두려울 따름이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아이는 자신의 상태를 '극심한 사춘기, 즉 질풍노도의 시기다'라고 못 박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모든 행동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본인도 어쩔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아이는 사춘기라는 시기를 자신의 짜증과 불성실한 태도를 합리화시켜주는 도구로 이용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예를 들면 학원 수업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는데 '너무 읽기 싫다. 도대체 이걸 왜 읽어야 하는 건데?'라면서 자신이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사춘기라서 그렇다는 거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무리 이해해보려 해도 도무지 이해가 잘 가질 않는다. 아무리 기분이 나쁘고 짜증이 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아이도 속이 너무 복닥거리니까 저렇게 행동하겠지. 사춘기에 대한 육아지침서들을 보면 그때의 뇌는 비이성적이며 이해할 수 없으니 내버려두라고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것만은 도저히 참아 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싸운다.

나의 모든 말이 몽땅 잔소리로 들리는 청소년과 대화는 무척 힘들다. 대화는커녕 입 떼는 순간 아이의 짜증과 함께 대화가 종료되기 일쑤이다. 과연 사춘기는 언제 끝나는 것인지 선배 부모님들의 제보를 부탁드린다.

그런데 이렇게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모녀가 어느 토요일 오후 함께 코인 노래방엘 갔다.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 풍의 급 전개냐고? 원수 같던 우리가 노래방에 동행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아이돌들의 리메이크 곡 덕분이었다.

사춘기 아이와 노래방 간 사연

지난해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식이 클라이맥스에 접어들 무렵, 간혹 훌쩍이던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던 노래와 함께 더욱 격양되었다. 아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곡은 다름 아닌 "안녕은 영원한 헤이짐은 아니겠지요"라는 후렴구로 유명한, 내가 졸업할 때도 들었던 바로 <이젠 안녕>이라는 곡이었다.

옆에 함께 앉았던 엄마와 "아니 이 옛날 곡이 여기서 왜 나와요?", "그러게 말이에요" 하며 수다를 떨다가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에게 물어보니, "엄마 이 곡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부른 곡이에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1991년 발매된 015B의 곡을 2023년에 드라마 엔딩곡으로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리메이크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학창 시절 대 유행했던 HOT의 <캔디>와 이승환의 <덩크슛>은 NCT 드림이, 더보이즈는 핑클의 <화이트>를 리메이크했다. 유튜브에 <엄마가 우리 노래를 어떻게 알아?>라는 콘텐츠까지 있더라.

리메이크를 뛰어넘어 라이즈라는 그룹은 싸이월드 시절 대유행했던 izi의 <응급실>이라는 곡을 샘플링해서 <LOVE 119>이라는 곡을 냈고, 새로 나온 곡의 인기와 함께 원래부터 인기있던 과거의 곡도 다시 관심을 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라이즈가 익숙했던 것은 그 그룹에 학창 시절에 즐겨듣던 가수 윤상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70대인 우리 엄마까지 '그 집(윤상네) 아들내미가 있는 그룹'이라면서 라이즈를 알 정도이다.

한 마디로 1970년대 X세대인 나와 2000년대 알파 세대인 우리 집 청소년에게 보이지 않던 음악적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유튜브에서 아이와 함께 아이돌이 리메이크 한, 내가 즐겨 듣던 곡들을 찾아보다가 졸업과 입학 기념으로 노래방에 가서 같이 아는 노래들을 직접 불러보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잠시 싸움을 멈추고, 아이의 인도에 따라 친구들과 가끔 간다는 노래방에 갔다. 평소에 엄마와 외출하는 것을 꺼려하던 아이가 나에게 베푼 선처였다. 애 키우느라 못 놀러 다닌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더라.

요즘은 노래방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우리가 간 곳도 역시 그랬다. 방 안에서 기계에 카드를 꽂아 바로 결재를 할 수도 있고, 지폐나 동전으로도 가능했다. 밖에 있던 지폐교환기에서 지폐를 교환해 5000원을 기계에 넣었다. 무인 노래방인 것도 신기한데, 마이크도 무선이다.
 
이제 아무도 노래방에서 독서를 하지 않는다
▲ 아무도 보지 않는 노래방 책 이제 아무도 노래방에서 독서를 하지 않는다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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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곡이 리스트업 된 책
▲ 노래방책 노래방 곡이 리스트업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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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 입구에서 마이크 커버를 가져다가 마이크에 씌우고 나는 습관처럼 두꺼운 노래방 책을 펼쳤다. 바로 아이가 한 마디 한다.      

"엄마, 요즘 누가 노래방에서 책을 봐!"
 
노래방에서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 노래방에서 노래부르기 노래방에서 아이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 이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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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인기곡 차트를 화면으로 열어주었다. 버튼을 누르자 차트가 쭉 열리고 거기서 노래 리스트를 보면서 노래를 선택했다. 요즘은 아무도 노래방에서 책을 보지 않는다. 인기 차트에서 검색할 뿐.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를 때 책을 뒤적이면서 노래를 찾아 리모컨으로 입력하던 모습은 그저 과거의 모습일 뿐이었다.

이렇게 신나게 함께 겹치는 노래들을 부르고 나니 부족해서 또다시 돈을 넣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러댔다. 매일 싸워대던 모녀가 함께 마이크를 잡고 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다니 참으로 오랜만에 평화롭다.

"같이 덕질하던" 엄마로 기억했으면

아쉽게 노래방 시간이 다 끝나고 우리는 함께 햄버거를 먹었다.

"엄마 이것저것 다 시켜도 돼?"
"그래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와~ 엄마랑 나오니까 좋다. 돈 걱정 안 하고 다 시킬 수도 있고."
"그것 봐. 엄마랑 오니까 좋지? 엄마를 그냥 돈 많은 친구라고 생각해."

"오, 좋은 생각인데..."


모녀의 노래방 나들이는 끝이 났다. 아이가 어렸을 땐 모차르트 태교 음악을 들었고, 조금 커서는 뽀로로 동요를,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여자 아이돌들의 노래를 함께 들었는데 이제는 남자 아이돌 음악을 듣는다. 심지어 함께 노래방에도 가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부르다니. 진짜 다 키웠네 하다가 순간 내일도 싸울 생각을 하니 오싹하다.

아이와 자주 싸워도 아이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다 보면 아무래도 대화거리가 늘 것 같아서 헷갈리는 아이돌 멤버들의 이름을 외워보기도 한다.

음악방송을 함께 보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그룹 멤버들의 이름을 아무리 물어봐도 아이는 짜증을 내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외우면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나는 우리 엄마가 똑같은 거 또 물어보면 짜증 날 때가 있는데...' 하며 아이의 장점을 하나 더 찾기도 했다. 으르렁대던 모녀가 유일하게 사이가 좋아지는 순간이다.

아이의 사춘기가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그랬듯이 어느 날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이의 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엄마의 모습이 "잔소리꾼의 이미지가 아니라 같이 아이돌 이름 외우고 덕질하던" 그런 엄마로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마도 오늘도 싸우고 내일도 싸우겠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일들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추억으로 남기만을 바랄 뿐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태그:#코인노래방, #사춘기아이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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