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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편집자말]
일본 나가사키에 운행하는 '니시큐슈 신칸센'의 '카모메호' 차량의 모습,
 일본 나가사키에 운행하는 '니시큐슈 신칸센'의 '카모메호' 차량의 모습,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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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남쪽 섬 큐슈에는 노선이 '반'만 지어진 고속철도가 있다. 선로를 두 개 지어야 하는데 한 개만 지어놔서? 역을 반쪽짜리로 지어서? 정확한 이유는 말 그대로, 노선이 '반'만 지어진 노선이기 때문이다.

일본 큐슈의 주요 도시 중 한 곳인 나가사키에 고속철도 '신칸센'을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2022년 9월 개통한 '니시큐슈 신칸센' 이야기이다. 나가사키역과 후쿠오카의 중심역인 하카타역을 잇는 이 노선은 기존의 산요 신칸센·큐슈 신칸센 등 일본을 한 줄로 잇는 신칸센과 연결하여 큐슈 서부 지역의 교통 편의를 높일 전망이다.

개통한 지 1년이 넘은 노선에 왜 '전망'이라는 단어를 붙였냐고? 니시큐슈 신칸센은 다른 신칸센 노선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노선, 기점은 나가사키역이 맞지만 지금의 종점은 어떤 신칸센 노선과 연결되지 않는 엉뚱한 역이다. 그래서 나가사키에서 다른 지역으로 나가려면 전철도 아닌 '신칸센'을 두세 번 갈아타야 한다.

내렸다가 탔다가... 개통 전과 시간 차이도 적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해외 관광지, 일본 후쿠오카시의 중심에 위치한 하카타역. 오사카나 도쿄, 히로시마 등 일본 곳곳은 물론 가고시마나 구마모토 등 큐슈 내 다른 도시로 바로 향하는 고속열차가 출발하는 일본에서 가장 바쁜 역 중 한 곳이기도 하다.

여러 곳으로 향하는 큐슈 교통의 중심지라지만, 큐슈의 두 번째로 큰 도시, 나가사키로 향하는 고속열차가 없다. 나가사키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릴레이 열차'를 탄 뒤 신칸센을 갈아타야 한다고 안내한다. 작년까지는 특급열차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한다.

떨떠름하게 표를 발권하니 좌석을 표시하는 표만 두 장이 나온다. 하카타에서 타케오온천까지 가는 '릴레이 특급열차' 표가, 타케오온천에서 다시 나가사키까지 가는 신칸센 표가 각각 나온다. 좌석 번호도, 호차도 다 다르다. 그나마도 타케오온천역에서 주어지는 앞 열차와 뒷 열차 간의 환승 시간은 3분 남짓. 짧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여러 장의 표를 손에 쥐고 하카타역에서 출발하는 '릴레이 카모메'를 타러 갔다. 열차가 가는 곳을 알리는 전광판에는 나가사키가 적혀 있다. 그렇게 열차에 오르니 이윽고 출발해 후쿠오카 시내를 호기롭게 빠져나간다.

한적한 지방 느낌이 나는 바깥 풍경을 본 지 거의 한 시간정도 되었을까. 이 열차가 운행하는 마지막 역인 타케오온천 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나가사키까지 가는 승객들은 건너편 플랫폼에 있는 신칸센으로 갈아타라는 안내도 함께 이어진다. 
 
큐슈 주요 철도를 간략하게 정리한 노선도. 니시큐슈 신칸센과 병행재래선, 큐슈신칸센과의 단절구간을 알 수 있다. (Wikimedia Commons에 업로드된 원본 파일을 CC-BY-SA 4.0 규정에 맞게 한국어 번역을 추가해 수정)
 큐슈 주요 철도를 간략하게 정리한 노선도. 니시큐슈 신칸센과 병행재래선, 큐슈신칸센과의 단절구간을 알 수 있다. (Wikimedia Commons에 업로드된 원본 파일을 CC-BY-SA 4.0 규정에 맞게 한국어 번역을 추가해 수정)
ⓒ Kawasemi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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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특급열차'에서 신칸센으로 갈아탈 수 있는 시간은 3분.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고 내린 자리에서 바로 반대편에 서 있는 열차를 탈 수 있기에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무거운 짐을 갖고 있거나, 노약자에게는 짧을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캐리어를 들고 있는 승객들의 표정이 유독 비장하다.

3분의 환승 시간을 거쳐 올라탄 신칸센. 자리에 앉아 20분~25분 남짓한 시간동안 빠르게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다보면 어느새 나가사키역에 도착한다. 이렇게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까지 번거롭게 신칸센을 타고 가는 데 걸린 시간은 1시간 20분에서 1시간 30분 사이 정도가 걸렸다. 

생각보다 걸리는 시간이 적다고 생각하겠지만, 신칸센 개통 이전에는 기존선을 타는 특급열차를 타고 1시간 40분~1시간 50분 정도면 하카타에서 나가사키까지 '한 번에' 갔다. 이를 생각하면 시간은 줄어들었다지만, 번거롭게 열차를 탔다 내렸다를 반복했으니 피로감은 더한 느낌이다. 

'누군가에는 많이 불편한' 새로운 신칸센

니시큐슈 신칸센이 이렇게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일본 신칸센의 얼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 KTX와 일본 신칸센의 가장 큰 차이는 '기존선과의 호환'이다. 고속선으로 달리던 KTX는 기존선, 즉 일반철도에서도 달릴 수 있지만, 신칸센의 철로 폭은 기존선보다 1.5배 가량 넓어 서로가 노선을 넘나들 수 없다.

한국의 경우 수요가 적은 노선은 중앙선처럼 아예 기존 선로 자체를 고속화해 전철·무궁화호부터 KTX까지 한 선로를 함께 쓰곤 한다. 하지만 일본은 신칸센 선로를 짓는 순간 두 가닥의 선로가 추가로 생겨나는 셈이다. 선로가 '악성재고'가 되는 셈이다. 이런 노선을 '병행재래선'이라고 부른다.

이런 '악성재고'가 예상되는 신칸센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책은 어떨까. 정부가 고속선을 직접 건설해 소유하면 신칸센을 운영하는 민자 회사인 JR이 선로를 임대해 열차를 운행한다. 다만 JR이 신칸센을 운영하는 조건이 있다. JR이 '병행재래선'의 운행과 관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지방정부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신칸센의 개통은 지역이 다른 대도시와 연계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신칸센에 비해 저렴하게 주변을 연결하던 특급열차가 없어지고 지역 내부를 잇는 일반열차 노선의 운영이 지자체에 떠밀려지는 수난을 겪는다. 그래서 이를 반대하는 지자체도 많지만, 지방정부가 병행재래선을 인수받아 직접 운영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하지만 '니시큐슈 신칸센'에서는 건설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지자체가 등판했다. 바로 사가현이 그렇다. 나가사키현과 후쿠오카현 사이에 놓여있는 사가현은 큐슈 내 최대 도시인 후쿠오카와의 교류가 많은 편에 속한다. '릴레이 카모메'의 탑승률이 신칸센 '카모메' 열차보다 높은 이유도 사가 현에서의 열차 이용이 많기 때문이다.
 
결국 해묵은 '병행재래선' 갈등이 풀리지 않는 한 니시큐슈 신칸센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중간역에서 '3분의 환승시간'을 겪어야 하는 셈이다. '3분 환승역' 타케오온천역의 플랫폼 모습. 왼쪽이 '릴레이 카모메' 열차, 오른쪽이 카모메 신칸센 열차.
 결국 해묵은 '병행재래선' 갈등이 풀리지 않는 한 니시큐슈 신칸센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중간역에서 '3분의 환승시간'을 겪어야 하는 셈이다. '3분 환승역' 타케오온천역의 플랫폼 모습. 왼쪽이 '릴레이 카모메' 열차, 오른쪽이 카모메 신칸센 열차.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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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칸센이 운행하면 일반열차의 서비스도 나빠지고, 신칸센의 요금 역시 비싼데 시간 단축의 이점마저 없다. 그런 탓에 사가현에서는 신칸센 건설의 조건으로 병행재래선을 원래대로 JR 큐슈에서 그대로 운영하고, 신칸센과 특급열차를 병행 운행하지 않으면 신칸센 공사를 허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2019년 자료를 통해 니시큐슈 신칸센을 후쿠오카까지 연결하는 비용을 6천2백억 엔 규모, 한화로 약 5조4천억 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비용도 비싼 데다, 노선의 수요가 가장 많은 지역에서 피해를 보는 것을 감수하고 공사를 강행할 명분도 부족하다. 

결국 복잡한 일본 철도의 현 상황, 그로 인해 고속철도로 인해 얻는 피해가 큰 지역의 탄생, 지방 철도의 운영비 갈등 등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비할 정도로 복잡한 문제가 지금껏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니 오늘도 50분 남짓에 갈 수 있을 거리를 많은 승객들이 '환승의 급박함'까지 더해가며 1시간 20분에 오가고 있다.

'한국판 니시큐슈 신칸센', 아니 '일본판 중부내륙선'

그런데, 어쩌면 '니시큐슈 신칸센'보다 더 끔찍한 사례가 한국에도 있다. 고속열차가 마음만 먹으면 전철이 오가는 선로도 충분히 다니는 한국인데다, 'KTX가 필요없다'며 반발하는 지자체도 없다. 그런데도 중간에 '뚝' 끊긴 KTX 노선이 있다. 2021년 개통해 충주와 서울을 이어야 '하는' 준고속철도, '중부내륙선'이 그 주인공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수서역에서 충주역까지 50분이라는 시간에 서로를 이었어야 할 중부내륙선은 SK하이닉스 사업장이 있는 경기도 이천의 부발역에서 끊긴다. 충주에서 부발까지는 자동차보다도 훨씬 빠른 37분이라는 시간이면 가지만, 정작 부발역에서 서울까지 가려면 '새마을호'도 아니고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충주에서 KTX를 타고 37분 걸려 부발에서 내리면, 부발에서 경강선 전철을 타고 판교역으로 간 뒤에 신분당선을 갈아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발에서 강남까지의 전철 소요시간은 54분. 이마저도 니시큐슈 신칸센과 '데칼코마니'인 셈이다.

중부내륙선이 서울까지 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는 고속철도 수서역에서 성남을 거쳐 경강선 경기광주역까지를 연결하는 철도가 개설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노선, 아직 삽조차도 뜨지 못했다. 2023년 국토교통부가 기본 고시계획을 냈고, 완공 시점도 2030년으로 예정되어 있다.
 
지난 2021년 개통했지만, 국내 KTX 노선 중 가장 낮은 탑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부내륙선 KTX.
 지난 2021년 개통했지만, 국내 KTX 노선 중 가장 낮은 탑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부내륙선 KTX.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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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내륙선의 중요도는 크다. 기존 경부선의 혼잡을 해소할 우회 노선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문경까지의 연장도 예정되어 있는데다, 경북선의 개량 역시 마무리되면 중부내륙선을 타고 부산까지도 곧장 KTX를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노선이 고작 20km의 선로를 깔지 못해 서울까지 가지 못한다.

그런 탓에 중부내륙선 KTX의 탑승률은 국내 철도 노선 중 최하위 수준을 달리고 있다. 한국철도공사가 중부내륙선 개통 이후 100일간의 탑승 통계를 정리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중부내륙선 KTX의 이용객은 하루 평균 450명에 불과하다. 탑승률로 따지면 15%. '지방 노선'의 대표격인 경북선이나 영동선만도 못한 수치다.

그런데 중부내륙선, 수도권 동남부의 수요가 몰리는 판교역까지는 경강선을 통해 선로가 이어져 있다. 판교역까지 KTX를 투입했다면 이 정도의 처참한 성과는 나지 않았을 터. 그런데 개통 2년 뒤인 올해 12월에야 판교역까지 KTX가 연장될 예정이다. 

2년 동안 중부내륙선이 판교에 가지 못했던 이유중 하나는 '스크린도어'였다. 판교역의 스크린도어는 광역전철 전동차에 맞춰져 있다는 이유로 KTX가 서지 못했다. 선로 규격이나 터널 설비가 맞지 않아서도 아니고, 승강장 위에 달린 문짝 사이즈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2년 동안 그나마 큰 수요처와의 연결을 주저한 것.

결국 판교역은 10월 경부터 스크린도어를 뜯어낸 뒤, KTX와 광역전철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스크린도어를 설치하고 있다. 그마저도 지역과 정치권이 모두 나서 '스크린도어 재설치'를 요구하고 나선 끝에 얻어낸 결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차라리 선로 탓, 정책 탓이라도 할 수 있는 '니시큐슈 신칸센'이 양반으로 보인다.

이유도 전망도 다르지만, 현재는 똑같은 결과인 두 노선

니시큐슈 신칸센과 중부내륙선의 사례는 철도 건설에 있어 정책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본 정부는 '병행재래선' 문제의 해결을 사실상 신칸센의 수혜지역에 압박해오는 간편한 프로세스를 취해 왔지만, 그런 해결을 필요치 않는 지자체를 달랠 정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반면 한국은 노선에 대한 계획도 미리 나왔지만 착공이 늦었고, 그 노선이 개통하기 전까지 취할 수 있는 가성비가 좋은 '플랜 B'가 있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기간동안 그 플랜을 방치해뒀다. 이유도, 현재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결도 다르지만 결국 철도 정책에 있어 편의를 우선시하면 시민들의 불편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나마 한국이 나은 점이라면 일본의 '니시큐슈 신칸센'처럼 단절된 구간이 긴 시간동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2030년에는 그래도 수서역까지 가는 KTX가 개통될 것이라는 청사진 정도는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상의 모든 준비가 다 되었음에도 일부러 허리를 끊었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더 크다.

니시큐슈 신칸센은 지금도 호사가들에게 '일본 최대 명절'이라는 '오봉' 기간에도 매진이 될 수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듣곤 한다. 중부내륙선 KTX 역시 '추석·설 연휴에도 아무때나 탈 수 있는 유일한 열차'라는 조롱을 듣는다. 일단, 한국에서 나오는 그 조롱 뒤에는 막대한 혈세 출혈이 숨어있음을 깨닫길 바라는 마음이다.

태그:#니시큐슈신칸센, #일본철도, #신칸센, #중부내륙선, #K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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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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