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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파는 나라> 책표지
 <아이들을 파는 나라>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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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돈 때문에 아동 인권을 버리고 국제입양을 주도해온 국가와 사설입양기관의 역할을 고발하는 책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최대의 국제입양, 즉 아동수출국이다. 대한민국은 국제원조를 해 주는 세계10대 경제대국이지만 출산율은 세계 꼴찌다. 하지만 전 세계 국제입양인의 약 절반이 대한민국 출신이다. 즉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낳은 아동을 수출하여 돈을 버는 나라다. 사실 이 책은 지난 2019년에 나왔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최근에야 <아이들을 파는 나라>를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전홍기혜 현 <프레시안> 이사장(당시 기자), 이경은 (법학)박사, 국제입양인 제인 정 트랜카 세 명이다.

전홍기혜 기자가 국제입양 기사에 대한 심층취재를 기획할 때부터 이들은 역할을 분담했다. 국제법을 전공하고 국제입양 문제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경은 박사가 연구자로, 입양인 당사자이자 운동가 <피의 언어> 등 여러 권의 책을 쓴 제인 정 트렌카 작가가 입양인 입장에서 공동인터뷰, 조언, 기사 감수 등을 했으며 전홍기혜 기자가 취재와 기사로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도 아주 알차고 일목요연하다. 아래는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전홍기혜 이사장과 페북 메신저로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 처음 국제입양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동기는?
"2007년 '입양의 날'을 앞두고 <프레시안> 사무실로 해외입양인들을 지원하는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님과 제인 정 트렌카 작가가 찾아왔다. 당시에는 '국제입양은 선행'이라는 인식만 있었고, 해외입양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문제에 대해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해외입양에 대한 취재를 하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 <아이들 파는 나라 -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펴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 책은 <프레시안>에 2017년 7월부터 6개월간 보도된 '한국 해외입양 65년'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그해 봄에 입양인 필립 클레이씨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돼 힘든 삶을 이어가다 자살하는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추방 입양인, 입양인들의 국적 미취득, 양부모의 학대, 폭력 등에 따른 사망, 가족찾기의 어려움 등 해외입양 관련 문제가 왜, 어떻게, 얼마나 많이 발생했는지 수십편의 기사를 통해 보도했다. 해외입양 이슈에 대해 언론에서 이렇게 심층적으로 다룬 것은 처음이었고, 자연스럽게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내게 됐다."

당시 이 보도로 전홍기혜 기자는 2018년 인권보도상, 2017년 앰네스티 언론상을 받았다

- 미국이 한국의 국제입양에 미친 명암은?
"국제입양에서 미국과 한국은 '문제적 국가'다. 한국에서 입양 보낸 20만명(비공식까지 포함한 추산) 중 약 3분의 2가 미국으로 갔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동을 입양 보낸 나라이며, 미국은 가장 많은 아동을 입양한 나라다.

국제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1993년 만들어진 '헤이그 국제입양 협약'에 한국은 아직도 가입하지 못했다. 지난 2013년 가입 전 단계인 '서명'을 한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국내에서 이행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헤이그 협약은 한국이 민간기관에 사실상 일임하고 있는 입양 절차를 중앙당국이 책임질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미국도 수용국 중에선 가장 늦게 지난 2008년에야 헤이그협약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한국의 입양제도가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것에는 미국의 영향이 크다."

- 해리 홀트가 한국아동의 국제입양에 미친 공헌과 폐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해리 홀트는 종교적 신념을 갖고 6.25 직후 한국을 방문해 1955년 한국 아동 8명을 미국으로 입양해 데려갔다. 1956년엔 '홀트씨 양자회'라는 입양기관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입양 사업에 뛰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패전국의 전쟁고아들을 입양하던 정도에서 인종과 대륙을 뛰어넘는 대규모 국제입양이 처음으로 발생하게 된 지역이 한국이다. 세계를 구원하는 미국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의 전쟁고아를 입양한다는 서사는 해리 홀트 등 미국의 일부 기독교 세력이 만들었다.

정작 자신은 오스트리아 여성과 국제결혼한 이승만 대통령도 '일국일민주의'를 내세워 국제입양을 적극 권장했다. 미군 등 연합군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보낸다'는 명분으로 입양 보내도록 했다. 1955년-1961년 보건사회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혼혈아동 5485명 중 4185명이 국제입양됐다. 이승만 정부는 입양 부모가 아동의 본국을 방문하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대리입양제'를 승인해 대량 입양이 가능하도록 했다. '산업화된 입양'은 해리 홀트와 이승만 정권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한국 해외입양 65년’ 기획은 민언련의 ‘이달의 좋은 보도’, 국제엠네스티 언론상, 국가인권위 인권보도상, 대통령 표창(어린이날 유공자, 전홍기혜) 등을 수상했다. 사진은 제20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시상식(2017년)에서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전홍기혜(오른쪽), 이경은(가운데), 제인 정 트렌카 대표(왼쪽).
 ‘한국 해외입양 65년’ 기획은 민언련의 ‘이달의 좋은 보도’, 국제엠네스티 언론상, 국가인권위 인권보도상, 대통령 표창(어린이날 유공자, 전홍기혜) 등을 수상했다. 사진은 제20회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시상식(2017년)에서 소감을 발표하고 있는 전홍기혜(오른쪽), 이경은(가운데), 제인 정 트렌카 대표(왼쪽).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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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세계 최대 국제입양 국가가 된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
"한국에서 국제입양이 가장 많이 일어난 것은 6.25 직후가 아니라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1970-1980년대였다. 특히 1980년대 중후반엔 한해에 7000명-8000명의 아동이 해외로 입양됐다. 전체 출생아의 1%를 자국에서 키울 형편이 못 된다며 내보낸 나라가 당시 선진국만 개최한다는 올림픽을 1988년 개최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의 국제입양은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아기 매매'라며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한국이 최대 입양송출국이 된 이유는 입양이 하나의 '산업'이 됐기 때문이다. 국제입양 숫자는 가정을 필요로 하는 아동의 숫자와 무관하다. 한국을 두고 '아동수출국'이란 비난이 일자 국제입양 아동 숫자가 1990년대 들어 한해 2000명 수준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인위적 조절이다. 아이를 원하는 입양부모들의 수요는 동유럽, 중남미 등으로 이동했다."

- 정부 문서로 확인된 이른바 '입양 뒷돈' 의혹에 대해 입양 기관들은 여전히 "결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관련기사 : 여전히 "수수료 받은 적 없다"…해외 8개국 조사 착수). 하지만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8개국이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정부 문건에서 보건사회부가 '입양 알선비'를 받는다고 지목한 기관은 홀트, 한국, 동방, 대한 4곳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 일관되게 '뒷돈'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근 보도된 내용은 1980년대 4개 입양기관들이 정부가 제시한 입양수수료 상한선인 1450달러 이외에 4000-5000달러의 알선비를 받는다고 당시 보건사회부가 보고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홀트 등 입양기관들은 관련 보도에 대해 부인하면서 1980년대 당시 정부가 제시한 상한선인 1450달러만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책을 쓰면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2018년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 소개된 한국 아동 입양수수료는 2018년 최대 3만3360달러(약 4400만 원)였다. 중국 아동의 입양수수료는 최대 2만4850달러, 베트남은 2만3260달러, 필리핀은 2만2710달러, 아이티는 3만5700달러 등이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명시했다면 이 정도 금액을 받았으며, 송출국과 수용국 입양기관이 양부모로부터 받은 이 금액을 나눠가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가 현재 국제입양 중 발생한 인권침해와 관련해 조사를 하고 있다. 진실위에 이 문제와 관련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372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진실위에 입양될 당시 인권침해 여부를 판단해달라는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덴마크로 입양된 입양인들이 '덴마크 한인 권리 그룹'(DKRG)을 만들어 이를 주도했으며, 노르웨이,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입양된 입양인들도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입양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와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개입 여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진실위는 12월 6일 34명에 대한 '해외 입양 과정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개시 결정을 내렸다. 한국이 해외입양을 시작한 지 68년 만에 첫 정부 차원의 조사 결정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지만, 조사대상은 전체 신청자 372명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또 2기 진실화해위의 활동 기간이 내년 5월까지로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칠레는 지난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차원의 조사를 실시했다.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송출국 중에서는 칠레와 아일랜드(2020년)가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차원의 조사를 했다. 아동을 받은 수용국 중에 국가 차원의 조사를 실시했거나 진행 중인 나라는 스위스(2019), 덴마크(2020-21), 벨기에(2021), 네덜랜드(2021), 스웨덴(진행 중), 프랑스(진행 중), 노르웨이(2023년 예정) 등이다. 최근 스웨덴 보건사회부 입양위원회가 진실위를 방문한 것도 이 조사의 일환이다.

한국은 국제입양 주요 송출국이며, 송출국 중 현 시점에서 가장 크게 국력이 신장된 국가다. 지난 국제입양 역사 동안 쌓인 문제가 너무 많기 때문에 풀기 어렵다고 생각해 외면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입양인 한명 한명의 인생이 달린 문제다. 이제라도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진실화해위의 조사가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전홍기혜: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오마이뉴스>, <참여연대>를 거쳐 현재 <프레시안>에서 정치, 사회, 국제 문제에 대한 기사를 썼으며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을 지냈고 현재 이사장이다.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대한 심층보도 등으로 아동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2018년 제96회 어린이날 유공자)을 받았다. 저서에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관한 보고서> 등이 있다.

아이들 파는 나라 - 한국의 국제입양 실태에 관한 보고서

전홍기혜, 이경은, 제인 정 트렌카 (지은이), 오월의봄(2019)


태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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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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