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전하, 만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때는 바야흐로 1637년,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와 한 달 넘게 이어진 굶주림으로 인하여 남한산성 성벽을 의지하던 조선군은 이미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당대 최강의 청나라 팔 기병이 불과 8일 만에 한양을 함락하였고, 조선의 임금 인조는 혼란한 상황에 수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기약 없는 농성을 펼치고 있었다. 신료들은 주화파와 주전파로 갈라져 청과 싸울지 혹은 항복할지를 놓고 다퉜고, 조선의 국운은 청의 태종 홍타이지의 손에 맡겨진 상황이었다.

성남 구도심의 짜릿한 언덕길을 넘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산길은 언제 가도 운치가 있다. 북적거리는 거리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는 아파트들과 불과 한치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울창한 숲속에는 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개를 돌고 돌아 터널을 지나면 너른 터가 나오면서 여기서부터 광주라는 폴사인을 만나게 된다. 그렇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많은 경기도민의 사랑을 받는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에 있다. 

병자호란의 주 무대,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 최초로 도립공원에 지정된 유서깊은 문화재다. 현재도 경기도민의 나들이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경기도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남한산성의 전경 남한산성은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국 최초로 도립공원에 지정된 유서깊은 문화재다. 현재도 경기도민의 나들이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그 유명한 광주광역시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물론 한자는 다르다) 경기도 광주시의 존재감은 경기도 내에서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중부고속도로 나들목과 오컬트의 유행으로 광주시보다 이름값이 높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광주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유산과 역사적인 풍부함은 어느 경기도 도시 못지않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광주의 영역은 지금의 송파, 강동 일대와 하남, 성남시를 모두 포괄했던 도시였다. 고려시대의 경기남부와 충청도 일대를 합쳐 양광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여기서 광이 경기도의 광주를 뜻했으니 그 위상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원래 광주의 읍치는 지금의 하남시에 있는 광주향교 부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묘호란을 겪고 나서 재침에 대비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수축하게 되었고, 읍치와 광주 유수부도 남한산성 안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병자호란의 주 무대가 남한산성에서 열리게 된다. 이후에도 광주의 남한산성은 군사적 요충지이자 행정중심지로 줄곧 이어져 왔고, 일제강점기 초반까지도 광주군청이 성내에 있다가 1917년 지금의 장소로 이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광주에 속해 있던 많은 지역이 다른 도시들로 독립했지만 성남, 하남 등 수도권의 주요 도시와 지근거리에 있다. 하지만 광주를 전체적으로 보자면 도시의 면적에 비해 도회지의 규모는 크지 않다.

광주시를 남북으로 흐르는 경안천이 팔당댐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하기에 이 일대가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대부분 지역이 규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 광주시로 승격하고, 판교에서 여주로 이어지는 복선전철 경강선이 광주시를 관통하기에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곤지암 지역에는 도자기 박물관과 그리고 유명한 화담숲이 자리해 있다. 엘지 그룹에서 관리하는 화담숲은 리조트 내부에 위치해 정갈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수목원으로 유명하다.
▲ 아름다운 수목원 화담숲 곤지암 지역에는 도자기 박물관과 그리고 유명한 화담숲이 자리해 있다. 엘지 그룹에서 관리하는 화담숲은 리조트 내부에 위치해 정갈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수목원으로 유명하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광주시의 볼거리 하면 남한산성이 전부인 줄 아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이 도시만의 역사가 유구한 만큼 다양한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여있다. 먼저 광주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곤지암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머리 국밥집과 곤지암 명칭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는 곤지바위 그리고 관리가 깔끔하고, 정갈한 화담숲이 있다.

그리고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백자를 제작했던 도요지가 집중적으로 분포된 도시가 광주다. 도자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질 좋은 고령토가 많기도 하고, 수도 한양과 가까운 거리에 한강의 수운을 이용해서 운반의 문제도 해결되기에 왕실과 관청에 쓰이는 도자기를 제조했던 분원도 있었다. 
 
광주는 한강과 접해있기에 수운을 이용한 물자의 이동이 활발했던 도시였다. 그래서 왕실, 관청의 자기를 보급하던 분원도 위치해있었고, 많은 상인들이 활발히 거쳐가던 주요지점이었다.
▲ 팔당 물안개 공원의 풍경 광주는 한강과 접해있기에 수운을 이용한 물자의 이동이 활발했던 도시였다. 그래서 왕실, 관청의 자기를 보급하던 분원도 위치해있었고, 많은 상인들이 활발히 거쳐가던 주요지점이었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또한 광주는 천주교 신자라면 모를 수가 없는 매우 중요한 성지가 있기도 하다. 광주의 산골짜기 아래에 천진암에서 강학을 열어 천주교에 대한 교리를 서로 배우고 토론하면서 한국 천주교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역사가 깊은 도시인 광주인 만큼 관련 있는 인물들의 자취가 진하게 남아있다. 탄금대 전투의 신립과 조선 여류시인으로 명성을 떨쳤던 허난설헌의 묘가 있고, 우리나라 초대 국회의장을 지냈던 신익희 선생의 생가가 광주에 연고를 두었다. 광주와 관련된 역사 인물의 발자취를 쫓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광주는 한국 천주교가 태동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천진암이라는 곳에서 몰래 강학을 하며 교리를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 광주의 천진암 성지 광주는 한국 천주교가 태동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천진암이라는 곳에서 몰래 강학을 하며 교리를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닭백숙, 산채정식, 손두부... 입이 즐거운 여행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 가서 자세히 하기로 하고, 남한산성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하자. 일명 남한산성의 종로라 불리는 산성로터리 일대가 나타난다. 이쪽 일대에 주차장과 식당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남한산성으로 여행 온 대다수의 탐방객들은 산성 트레킹을 즐긴 후 이 일대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백숙 또는 산채요리를 즐긴 후 하산을 한다. 남한산성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 몇 가지가 있다. 일명 남한산성 3대 음식으로 불리는 닭백숙과 산채정식 그리고 손두부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남부에서 수원 다음으로 번성했던 장이 서기도 했었고, 행정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했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남한산성을 찾는 객들을 상대로 백숙도 팔고 했던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남한산성은 1950년대 중반에 우리나라 최초로 도립공원에 지정되었고, 1973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 서울, 경기 지역에 사는 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인기가 높았다. 그때는 아직 남한산성으로 들어가는 자동차 도로가 개통되지 않아 학생들은 지금의 광지원리 부근에서 동문까지 8킬로를 걸어 올라와야 했다고 한다.

이때 학생들이 머물렀던 곳이 백제장, 반월장을 비롯한 3군데였고, 지금도 그 명맥은 이어져서 산채정식을 비롯해 한정식집으로 인기가 높다. 또한 남한산성 하면 백숙이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행궁 앞에 백숙 거리가 따로 있지만 개인적으로 남한산성 아래에 있는 닭죽 거리를 추천한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먹거리 대신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남한산성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주먹 두부를 먹어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순두부를 면포에 싸서 주먹 정도의 크기로 한모씩 모양을 굳어냈다고 해서 그 이름으로 불리는데 두부의 식감이 순두부와 일반 두부 어느 중간쯤 되는 독특한 느낌이고, 간수 특유의 쓴맛은 덜하고 담백한 맛은 더 강하다.

식사 후에 남한산성의 탐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두부라고 해서 배가 덜 부르겠거니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지만 막상 두부만으로도 배가 꽤 부르다.  
 
남한산성에는 백숙을 비롯해 산채정식 두부요리 등 먹거리가 유명하다. 그 중에서 순두부를 주먹모양으로 만든 손두부가 나름 별미다.
▲ 남한산성의 먹거리 주먹두부  남한산성에는 백숙을 비롯해 산채정식 두부요리 등 먹거리가 유명하다. 그 중에서 순두부를 주먹모양으로 만든 손두부가 나름 별미다.
ⓒ 운민

관련사진보기

 
이제 배도 채웠으니 남한산성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둘러보기로 하자. 남한산성은 해발 480미터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1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하고 있으며 그 밖에도 옹성 3개, 문 4개, 암문 16개, 우물 80개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외성은 병자호란 이후 보강된 것으로써 본성과 시차를 두고 구축되었으며 이전 삼국시대부터 수축된 성벽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기별 성을 쌓는 기법을 특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성벽만 남아 있는 게 아니다. 행궁을 비롯하여 객사, 지휘소, 정자, 사당 등 200여 개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자연 환경과 더불어 수많은 이야기와 설화가 곁들어 있다. 다시 로터리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남한산성의 긴 여정을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일주일 후 작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ugzm87와 블로그 https://wonmin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강연, 취재, 출판 등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ugzm@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글을 쓴 작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시면 탁피디의 여행수다 또는 캡틴플레닛과 세계여행 팟캐스트에서도 찾아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별곡 시리즈는 http://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general_list.aspx?SRS_CD=0000013244에서 연재됩니다.


태그:#경기도, #경기도 여행, #광주, #광주여행, #운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현재 각종 여행 유명팟케스트와 한국관광공사 등 언론매체에 글을 기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편> <멀고도 가까운 경기도 : 경기별곡2편>, 경기별곡 3편 저자. kbs, mbc, ebs 등 출연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