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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김포 도시철도의 혼잡 논란이 뜨겁다.
 김포 도시철도의 혼잡 논란이 뜨겁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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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최악의 혼잡'을 기록하고 있는 '김포골드라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최근엔 차내가 너무 혼잡한 탓에 열차 내에서 호흡곤란을 겪었다는 시민의 증언이 나오는가 하면, 경기도·김포시·서울시 등이 대책 마련에 나서는 등 수도권 교통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김포골드라인은 기존 열차보다 공사비가 저렴한 경전철로 개통돼 기대를 모았지만, 넘쳐나는 수요에 반해 너무 작은 열차로 인해 콩나물시루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가까운 일본에도 김포골드라인과 모든 면이 닮은 노선이 있다. 한 지역에서 도심을 연결하는 유일한 철도교통 수단이라는 점도, 저렴한 공사비를 이유로 경전철 모델을 채택했다는 점도, 한 국가에서 전국적인 논란거리가 될 정도로 '최악의 혼잡'을 기록하고 있는 전철이라는 점까지 닮았다. 그야말로 '데칼코마니' 노선이다.

'베드타운'의 유일한 출근길, 닛포리·토네리 라이너

일본 도쿄의 닛포리역. 한국의 2호선을 닮은 JR 야마노테선, 치바와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케이세이 본선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붐비는 광역전철 노선 중 하나인 조반선 등이 만나는 교통 요지인 닛포리역에선 '이' 노선으로 환승할 수 있다는 안내 역시 만날 수 있다. 바로 '닛포리·토네리 라이너'(日暮里·舎人ライナー)다. 

야마노테선, 조반선의 승강장이 큰 것에 비해 닛포리·토네리 라이너 닛포리역의 승강장은 그렇지 못하다. 한 지역의 유일한 전철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크기다. 그나마 닛포리역은 많은 승객이 타고 내리기 때문인지 중간 정차역보다는 승강장이 약간 넓다.
 
2008년 개통한 경전철 노선인 닛포리·토네리 라이너는 김포 도시철도의 선배 격 되는 노선이다. 혼잡도와 대책 면에서 상당수가 비슷하다.
 2008년 개통한 경전철 노선인 닛포리·토네리 라이너는 김포 도시철도의 선배 격 되는 노선이다. 혼잡도와 대책 면에서 상당수가 비슷하다.
ⓒ 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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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들어오는 열차도 폭이 꽤 좁다. 부산 지하철 4호선 그리고 의정부경전철과 비슷한 고무차륜(타이어 바퀴) 경전철 열차로 운행된다. 일반적인 철도보다 소음이 적고 유지보수가 쉽지만, 수송 인원이 적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런 탓에 열차는 5량 편성이지만, 정원은 260명 정도(김포 도시철도는 180여 명)에 불과하단다.

열차는 닛포리역을 출발해 니시닛포리역을 지나 아다치 구 방향으로 향한다. 아라카와 강을 건너 아다치 구로 진입하니, 창 밖에는 맨션이며, 주택이 빈틈 없이 꽉꽉 들어차 있다. '니시아라이다이시니시역'에 진입할 때는 한국의 주공아파트와 사뭇 닮은 맨션 단지인 '코호쿠6초메단지'도 눈에 띈다. 

이 노선도 김포도시철도처럼 평시와 출퇴근 시간의 수요 차이가 크다. 평시에는 7~8분에 한 번 정도 열차가 다니는데, 출근 시간의 배차간격은 3분 30초란다. 그마저도 개통 당시에는 5분이었는데, 수요 폭증으로 문제가 되자 텀을 줄인 것이다.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역세권에 딱 붙어 있는 '코호쿠 6초메 단지'의 모습. 한국의 대형 아파트단지와 닮은 모습이 눈에 띈다.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역세권에 딱 붙어 있는 '코호쿠 6초메 단지'의 모습. 한국의 대형 아파트단지와 닮은 모습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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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치 구의 인구는 60만 명이 넘는다. 심지어 도쿄 도의 집계에 따르면 20%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다치 구에서 다른 지역으로 출퇴근한단다. 전형적인 '베드타운'이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철도 노선들 역시 도쿄 도심 방향으로만 뻗어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철 차량으로 운행되는 '도부 철도', '츠쿠바 익스프레스'와는 달리 이 노선은 경전철 노선이기에 혼잡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특히 종점인 미누마다이신스이코엔역의 사정도 좋지 못하다. 기존 역세권 수요에 더해 환승 수요도 많다. 도쿄의 위성도시인 가와구치시나 소카시의 철도 교통 음영 지역에서 이 역과 이어지는 시내버스를 운행하기 때문이다. 결국 종점에서부터 열차가 꽉 찬 채로 중간역을 지날 수밖에 없다.

'지하철' 엎어지고 경전철... 수요폭발 대처도 '데칼코마니'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시작도 김포 도시철도와 비슷하다. 아다치 구 서부의 택지개발이 한창 이루어져 시민들이 교통난을 겪던 1970년대 지역 정치인이 제안한 것이 그 시작이다. 특히 1985년 도쿄 도의 지하철 난보쿠 선의 연장 계획에 지금의 라이너 노선이 포함되었으나, 재정 문제로 인해 경전철로 전환되었다.

김포 도시철도 역시 지하철 5호선, 9호선 등 여러 노선의 연장을 검토하다가 재정 문제로 인해 경전철로 전환되었다. 노선이 만들어진 계기마저도 '데칼코마니'였던 셈이다.

우여곡절 끝에 1997년 첫 삽을 뜬 뒤 2008년 완공된 닛포리·토네리 라이너. 개통 초기부터 이용객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도쿄 도에서는 개통 당시 하루 최대 5만1000명이 닛포리·토네리 라이너를 이용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2019년에는 무려 9만737명이 닛포리·토네리 라이너를 이용했다.

예측의 두 배에 가까운 시민들이 이 노선을 이용한 것, 즉 '예측 실패'였다. 실제 수요에 비해 열차의 수용량은 턱없이 적다 보니 여러 문제가 불거졌다. 특히 지하철처럼 좌석이 가로로 한 줄씩 배치된 '롱 시트'가 아닌, 특급열차 등에 쓰이는 '크로스시트'로 배치된 것이 문제였다.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차량 내 모습. 차량의 정원은 260명 남짓이다. 매일 9만 명,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출퇴근 시간에 타고 내린다기에는 믿기 어려운 수치다.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차량 내 모습. 차량의 정원은 260명 남짓이다. 매일 9만 명, 그 중에서도 대다수가 출퇴근 시간에 타고 내린다기에는 믿기 어려운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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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혼잡 때 열차가 수송할 수 있는 인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탔을 때의 사고를 우려해 크로스시트로 배치했다고는 하지만, 크로스시트의 단점은 좌석이 공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 입석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열차가 터져나간다'는 시민들의 항의 속에 개통 3년 만에 열차 좌석 구성이 '롱 시트'로 바뀌었다.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수요가 끊임없이 폭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교통 음영지역에 들어온 '유일한 철도 노선'이라는 점이다. 아다치 구 일대는 도쿄에서 가장 교통이 혼잡한 지역으로 꼽힌다. 궤도 교통이 빈약한데 거주 인구는 많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개통 초기에는 자신의 차량이나 버스, 멀리 떨어진 전철역을 이용하던 인구도 점점 라이너 노선으로 넘어온 것이다.

특히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개통으로 인해 역세권의 개발이 촉진되면서 수요가 점점 늘고 있다. 인근 부동산 자료에 따르면,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개통 이후 매년 5~6개의 신축 맨션이 역세권 지역에 지어지고 있다. 도쿄 23구 내에 있으면서도 주변 지역에 비해 지가가 저렴해 혼잡은 둘째치고라도, '빠른 출퇴근'을 원하는 시민들이 이곳을 찾는다.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의 혼잡도는 도쿄 도내 여느 노선들의 혼잡도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19 범유행 기간에는 한국의 수도권 4호선과 비슷한 위치의 도쿄 지하철인 도자이선, 도쿄 도심을 관통하는 광역전철인 츄오선의 혼잡도를 뛰어넘으며 일본에서 가장 혼잡한 철도 노선으로 악명을 날렸다.

'승차가 위험하다', '열차 몇 대는 보내는 것이 기본'이라는 불만도 쏟아졌지만, 대처는 미진했다. 혼잡하지 않은 시간대인 새벽·심야시간대에 닛포리·토네리 라이너를 이용하면 맛집 쿠폰을 준다는 이벤트가 펼쳐지기도 했고, 노선과 같은 경로를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해 달라는 대처를 도쿄 도가 내놓기도 했다.

김포시와 서울특별시의 대처도 도쿄 도의 과거 대처와 다른 것이 없다. 김포시는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증편하고, 특별 버스노선을 개통하는 등 대처에 나섰고, 서울특별시는 버스전용차로의 개통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이런 혼잡 상태에서 운행을 이어가니 열차가 '만신창이'일 수밖에 없었다.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에 수송량을 더욱 높인 새로운 열차가 투입되면서 기존 열차가 개통 14년 만에 퇴역 절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퇴역 사유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는 '한계 중량보다 많은 중량이 열차에 가해져 무리가 갔기 때문'이었다. 보통 철도 차량의 수명이 20~25년인 것을 감안하면, 짧은 기간에 퇴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새로운 열차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였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출근 시간이면 열차 안은 꽉 차기는 마찬가지. 아다치 구 주민들은 배차 간격의 축소와 차량 확대, 열차 운행 칸 증가를 도쿄 도 교통국에 요구하고 있으나, 도쿄 도는 "칸 증가를 위한 추가적인 공사가 어렵고, 차량기지 용량이 부족하다"며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좋은 해외 사례만 보았던 참사... '견학'이 무슨 소용 있었나
 
'닛포리·토네리 라이너' 역과 열차의 모습. 역 뒤로 보이는 맨션들이 결국 '잠재적인 이용객'인 셈이다.
 '닛포리·토네리 라이너' 역과 열차의 모습. 역 뒤로 보이는 맨션들이 결국 '잠재적인 이용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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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김포 도시철도와 닛포리·토네리 라이너를 비교하는 이유가 있다. 과거 김포시와 김포시의회가 여러 차례 '해외의 선진 철도를 탐방하겠다'며 해외 출장 및 연수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2011년에는 김포시장이 홍콩을, 2012년에는 김포시의회가 일본 후쿠오카와 싱가포르를 다녀왔다.

당시에도 '외유성'이란 비판받았던 출장의 배움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방문한 곳들뿐만 아니라 여러 해외 사례를 조금만 더 분석했다면, 당시 일본 내에서 논란이었던 닛포리·토네리 라이너 사례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이 노선이 어떤 상황인지 알았다면, 김포시의 철도 건설 전략도 조금이나마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포 도시철도의 강행은 아쉬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지하철의 연장선으로 검토된 노선이 경전철로 전환될 때에는 경전철과 중전철의 수송량 차이에 따른 수요 예측에 더욱 신경써야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의 선례가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포 도시철도가 첫 삽을 뜬 2014년은 닛포리·토네리 라이너가 혼잡 논란 끝에 열차 시트를 떼어내는 촌극을 벌인 지 3년 후였기에, 더 아쉬움이 크다. 

김포 도시철도는 자연스럽게 일본에 있었던 '10년 선배'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심지어 승강장에 여유 공간이 없이 지어진 것도 닛포리·토네리 라이너와 똑같다. 시민들은 열차의 칸 수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공사가 필요해 쉽지 않다는 것이 김포시의 입장이다. 

오늘도 닛포리·토네리 라이너, 그리고 김포 도시철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닮은 듯 하지만, 두 열차 중 하나는 시민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에서 열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친 것은 누구의 탓일까.

태그:#김포 도시철도, #일본 철도, #닛포리 토네리 라이너, #수요 예측, #경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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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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