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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샀는데 벽돌이 왔어요.'
'연락처를 받았는데 없는 번호래요.'

도시 괴담처럼 떠도는 중고거래 피해 후기를 읽으면서, 무의식 중에 '중고거래'는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중고 휴대폰도 업체를 통해 구입하고, 버리기 아까운 옷들도 그냥 의류 수거함에 넣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러 자취를 하게 되었다.

냄비밥을 어느 정도 지을 줄 알게 되자, 밥솥이 애물단지가 되었다. 누구 줄 사람도 없고, 한두 번밖에 안 쓴 거라 버리기엔 아깝고, 버리는 방법도 모르겠다. 고민하다 며칠 전 직장 동료의 말이 생각났다.

"당O마켓 아세요? 엊그제 거기서 중고 유모차 거래했거든요. 애기들은 금방 커서 새 걸 사도 금방 버리게 되는데 당O에서 저렴하게 구입했어요."

하도 유튜브 광고에 많이 나와서 뇌리에 박혀 있던 네 글자, '당O마켓'. 초등학생 때 했던 벼룩시장 이후로 나의 첫 중고거래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밥솥
 밥솥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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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네 글자 답장 

"밥솥 팝니다. 몇 번 안 썼는데 크기가 너무 커서요. 밥맛 아주 좋습니다."

대충 남들이 올린 글을 보고 흉내만 내어 판매 글을 작성했다. 연락이 오길 기다리며 다른 게시물들을 구경했다. 그야말로 놀라웠다. 첫째로 우리 지역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고, 둘째로 그 다양하고 방대한 거래 제품들에 놀랐다. 옷, 가전제품은 물론이요, 직접 만든 두부까지. 나는 어느새 밥솥 판매는 잊어버리고 탐나는 물건들을 찜하기에 바빴다.

2시간 정도 지났을까, '당O!' 하는 문자 알람이 울렸다. 두근거리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물음표도 없이, 단 네 글자가 와 있었다. '어디에요'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아무것도 없는 프로필 사진, 대뜸 나의 주소를 물어보는 첫마디. '원래 다 이런 건가?' 벌벌 떨며 약속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랬더니 또 네 글자 답장이 왔다. 띄어쓰기도 없이 '지금 가요'.

너무나도 터프한 답장에 울상을 지으며 밥솥을 껴안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트럭에서 우람한 아저씨가 한 명 내렸다. 그리고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꾸벅 인사하시는 게 아닌가. "공장 식구들 밥 좀 지어주려고요."

겁먹은 게 무색할 정도로 수줍은 얼굴을 하며 묻지도 않은 말을 하셨다. 혹시 모르니까 안에 기스나 하자 없는지 살펴보시라고 했더니, "잘 되겠죠 뭐, 돈 여기 있습니다" 하고는 또 인사를 꾸벅 하고 사라지셨다.

갑자기 좀 전의 불안함은 싹 가시고 그 공간에 뿌듯함이 차올랐다. 버려질 뻔한 밥솥은 필요한 누군가의 품으로 갔고, 언제 받아봤나 싶은 현금 몇 장이 내 지갑을 풍요롭게 했다.

팔려고 들어갔는데, 털려서 나왔네 
 
 비대면 중고 거래
 비대면 중고 거래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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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앱에 재미를 붙인 나는 구매에도 도전했다. 흔치 않은 디자인의 무드등을 발견했다. 나의 자취방에 갖다 놓으면 완벽한 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 메시지를 받는 것도 떨리는데, 말을 거는 것은 더 떨린다. 판매자 분과 메시지를 주고받다, 시장에서도 안 해본 흥정을 한번 시도해봤다.

"혹시 OO원에 가능할까요? 지금 바로 가지러 가겠습니다."

읽음 표시가 사라진 뒤 5초가 5분처럼 느껴졌다. "네~ 가능합니다. OOO으로 오세요. ^^"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흥정이 싫어 시장을 가지 않았던 내가, 어른들이 말하는 정을 조금은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그리고 혹시 비대면 거래 가능하신가요? 물품은 앞에 놔뒀으니, 자전거 바구니에 돈을 넣어 주시면 됩니다^^"

나는 마치 밀거래를 하듯 약속한 물품을 입수하고 돈을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어 판매자에게 발송했다. "돈은 넣어 놨습니다. 물품 잘 가져갑니다^^" 2020년 아나바다 장터는 비대면 거래도 가능하다.

이웃의 얼굴을 알게 된다는 것

중고거래앱을 이용하기 전에는 이렇게 많은 동네 주민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가구 바꾸는 것을 좋아하여 소파 하나를 통 크게 나눔 하신 아주머니, 중고 물품을 모아 장사를 시작해보려는 사장님, 작은 살림을 꾸리기 시작한 신혼 부부 등 길거리에서 그냥 스쳤다면 몰랐을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다.

때로는 서로의 시간과 장소를 조율해야 하고, 거래가 성사되기까지 신경을 쏟아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의 밥솥이 어느 공장에서는 든든한 한 끼를 만들어 주고 있을 것이고, 탁자가 어느 신혼 부부의 따뜻한 밥상이 되어 있으리라는 것. 또 청소기가 주부의 든든한 일꾼이 되어주고 있으리라는 것.

이런 생각들을 하면 매순간 자취방에서 의미 없이 버려질 물건이 없는지 뒤져보게 된다. 이렇게 다들 중고거래 중독이 되어가나 보다. 자취방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게 된 오늘날, 나에게 불현듯 찾아온 중고거래앱은 이름 그대로 '당신 근처의 따뜻한 마켓'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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