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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원 돌파한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0억원을 돌파했다는 민간 조사업체의 분석이 나왔다. 부동산114는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0억509만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10억원을 넘겼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앞. 2020.8.12
 부동산114는 지난달 말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이 10억509만원을 기록해 처음으로 10억원을 넘겼다고 12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앞. 2020.8.12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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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니면서부터 집에서 독립했다. 아, 재수할 때도 학원 근처 고시원에서 생활했으니 독립했다고 봐야겠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누울 공간과 책상이 다였던 방 한 칸에서 부엌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곳이었다. 집은 학원이랑 멀었기에 왕복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으로 지낸 곳이지만, 고시원은 고시원이었다. 한 번씩은 외로움이 몰려왔다. 내가 요청했는지 엄마의 자발적인 걱정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루는 엄마가 왔다. 

밤늦게 학원을 마치고 엄마와 잠만 자고 아침 일찍 학원으로 먼저 가서 엄마가 가는 걸 못 봤다. 학원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오니 먹을 것과 내가 모아두었던 속옷과 양말이 깨끗하게 빨려서 침대와 책상과 의자에 나란히 널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울음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서울로 대학만 가면 엄마께 보답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외로웠던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다른 방 언니와 친해져서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하고,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도 옆옆방에 살아서 한 번씩 그 친구의 어머니가 챙겨온 간식을 나눠 먹은 고마운 추억들도 있다.)

고시원 옆 건물 1층에는 엄마 또래가 입는 옷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조금은 고급스러운 옷을 마네킹에 걸어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걸 보며 언젠간 엄마께 저런 멋진 옷 한 벌을 해드려야지 했다. 지방이 고향이었던 나는 힘든 재수를 거쳐 서울로 대학만 가면 꽃길이 펼쳐질 거라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이런 구질구질한 고시원 생활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라고. 서울로 대학만 가면 꽃길만 걸을 것 같다는 희망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2인 1실 기숙사 생활을 했다. 2학년 때는 막연하게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영화를 보면서 외국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한집에 살면 어떨까, 재밌을 거 같다는 막연한 꿈을 꿨다. 꿈대로 외국(독일)에 가서는 독일 가정집에서 방 하나를 얻어 사람들과 함께 지냈다. 1년 정도 있다가 한국에 다시 들어와서는 원룸에서 후배 1명과 같이 침대와 소파베드를 교대하며 1년을 살았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며 혼자 지냈는데 지내다 보니 그동안 누군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많아서 그랬는지 혼자 사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에 대해 좀 고민했다. 

부당해도 부당한 줄 모르고 살았다

대학 다닐 때 학교 근처 원룸에서 묻지마 폭행 사건을 겪은 경험도 한몫했다. 내가 사는 1층은 원룸, 2층부터 4층까지는 고시원 건물이었는데 밤늦게 나를 뒤따라오던 낯선 이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 입을 뒤에서 막았는데 내가 소리를 크게 지르자 손가락 사이로 소리가 엄청 크게 새어 나갔고, 당황한 그놈은 내 얼굴을 두 번 가격하고 도망쳤다. 나는 살려달라며 고시원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오고 나서야 고시원에 있던 한명 한명이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옆방에, 윗집에 누가 사는지 서로 몰랐다. 그 당시에는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입장을 바꿔서 나라도 밖에서 소리치는 사람이 있어도 선뜻 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옆방이나 앞방에 사는 사람을 서로 알았다면 통화를 해서 우리 같이 나가자! 했겠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비싼 집세를 피해, CCTV도 없는(원래 다세대 주택은 CCTV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개인들이 서로 알고 싶지도 않게 파편화되어있는,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도와주기도 힘든,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딱히 꼬집기도 힘든 공간에 우린 살고 있었다. 

이후 간이 크게도 난 1년을 그곳에서 더 살았다. 나의 사고를 알고 있는 건물주가 빨리 나가려고 하는 나에게 그래도 계약 기간은 채워야 한다고 한 것도 있었고, 건물주가 그렇게 강하게 나오니 나도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그 건물주도 참 나쁜 사람이었다며 아직도 미련하게 거기서 어떻게 더 살았냐고 이 얘기만 나오면 타박을 주지만, 그 시절은 그랬다.

직장이든 집이든 부당한 것을 당해도 부당한지 모르고 살았다. 당시에는 별로 무섭지 않다며 살았지만 그전에는 통풍되라고 창문을 자주 열어놨는데 이후엔 창문을 꼭꼭 닫았다.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갈 때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해 집에 같이 가주는 경찰과 자주 대동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무서웠던 것 같다. 계약 기간이 만료될 즈음 나는 새로운 곳을 찾았다.
 
 드라마 <청춘시대2>.
 드라마 <청춘시대2>.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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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네이버 카페에서 같이 살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찾아가 보았다. 나보다 어린 여성이 홍대를 다니며 근처 투룸인 집을 구했는데 방 1개에서 각자 지내며 거실, 화장실, 부엌 등을 공유하는 개념인 '셰어하우스'를 제안했다. 그날 '하우스 메이트'를 알게 됐다. 첫날부터 그 여성과 대화가 잘 되었던 나는 그 집에 바로 들어가게 됐다. 

한국에 와서 거의 원룸 생활만 하다가 그렇게 그 동생과 1년 정도를 지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재개발로 비워야 한다는 말을 들었고, 우리는 그냥 주인의 말만 듣고 나와야 했다. 정든 집이라 아쉬웠지만 나보다 동생이 더 섭섭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왜냐면 창고 같은 곳이 하나 더 있었는데 미술을 하던 동생이 혼자 힘으로 벽지와 바닥을 새로 다 바꾸고 가구도 들여놔서 처음 모습은 하나도 생각 안 나게 꾸몄었다.

이후 동생은 그림 작업을 그곳에서 하기도 했고, 나와 같이 가끔 영화를 보기도 했다. 고흐의 방처럼 온통 밝은 노란색이었다. 그렇게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한테 통보를 받은 것이다. 진작 알았다면 동생이 그렇게 고생하진 않았을 텐데. 언젠가는 나가게 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그 시간이 올 줄 몰랐던 것 같다. 나는 또 다른 집을 알아봐야 했고, 다시 네이버 카페를 통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우스메이트에게 고소당하기까지

동생과 지냈던 기억이 좋아서 하우스메이트가 있는 집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한 집은 하우스 메이트를 구하는 건 아니었고 방이 3개인 월셋집이었다. 규모가 크니 월세금도 컸기에 내가 갈 곳으로는 무리지만 구경이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갔는데, 탁 트인 거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원룸 투룸만 보다가 스리룸의 거실을 보니 너무 마음에 들었다.

혼자서는 살기 힘들지만 내가 하우스 메이트를 구해서 살면 어떨까? 엄마는 하우스 메이트를 못 구해서 네가 방세를 혼자 내야 하면 그 감당을 어떻게 할래, 라고 말했다. 그때 심정은 도박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금방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은 좀 있었다. 위치도 괜찮았고, 방 3개 모두 큰 편이었다. 그렇게 난 원룸 투룸을 거쳐 스리룸 집에 입성했다. 그전에 같이 살던 동생은 프랑스로 떠났다. 다행히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네이버 카페를 통해 하우스 메이트를 금방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하우스 메이트들과 지냈는데 나는 딱히 계약서에 기간 명시를 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서로 사정이 생길 수도 있기에 나가기 한 달 전에만 알려주면 나도 그사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다 보니 방 1개에 사는 사람은 좀 오래 살고, 다른 방 1개는 좀 유동적인 편이었는데, 결국 살다보니 사단이 생겼다.

경찰에게 전화가 왔다. "용산경찰서입니다." 나는 피식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심상치가 않았다. 약 한 달 전에 집에서 나간 하메(하우스메이트)가 나를 '주거침입'으로 고소한 것이다. 반년 정도를 같이 살며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라 막내라고 챙겨줬는데, 나갈 때 보증금 문제로 나를 좀 미워했다.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복수를 한 것이었다. 옷을 그 친구 방에 넣어준 걸 갖고 말이다. 우린 그 전에도 택배니 뭐니 서로의 방에 자주 왕래를 하였다. 나는 당연히 아무런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태가 꽤 심각했다.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던) 경찰서에서 전화를 받고 나는 어차피 아무런 죄가 없으니까 별 이상 없겠지 하고 경찰서에 갔다. 2시간 남짓한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내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어떻게 거실과 부엌, 화장실을 공유하는 집에서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간 것이 주거침입이 될 수 있는 걸까? 형사에게 집 구조나 고소한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는 맥락은 중요하지 않았다. 방을 따로 쓰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갔다는 자체를 침입으로 보았다.

"보통 이 정도는 사건 접수가 안 된다고 말을 하고 아예 안 받을 수도 있는데, 이번 경우는 그쪽에서 신문고에 글을 올렸어요. 조사를 안 할 수가 없게끔"이란 말을 전했다. 이후 검사도 그때 형사와 비슷한 입장으로 공유하는 공간 외에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침입으로 간주했다.

나는 집 전체 사진을 일일이 찍어 직접 검사를 찾아가 설명했고, 다른 하메를 증인으로 그동안 각자의 방에 왕래하면서 있던 상태였음을 설명하고 나자 검사는 셰어하우스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는 것 같았다.

민달팽이유니온의 협조를 받아 왜 침입 성사가 되지 않는지 탄원서를 작성하고 다른 옆방 룸메이트에게도 증인으로서 진술서를 받아서 무죄를 받긴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꽤 지난했다. 그때 느낀 건 앞으로 셰어 개념은 특히 서울에서는 집값이 왕창 내려지지 않는 이상 계속 늘어날 텐데, 법은 너무 늦어서 그사이에 법으로 피해 보는 사람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 하메를 통해서 또 피해 보는 사람이 생길까봐 무고죄로 고소를 했다. 그러나 검사는 피곤했는지 같이 무혐의를 내렸다.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공동체라는 것도 알게 되고 공동체 탐방기 <우리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북콘서트를 다녀오기도 하는 등 관심이 많았다. 이후 더 많은 생각을 했다. 셰어하우스는 금액적인 부분을 나누는 것 외에 더 많은 것들이 오가는 공간이었다.

관련 자료를 좀 찾아보니 셰어하우스는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의 사건을 겪는 이들도 많을 텐데 좀 더 많은 논의의 장이 열리고 법과 제도도 거기에 발맞춰 변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간 10여 년간 이상 서울살이를 하며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앞으로 서울살이를 하는 청년들이 나보다는 좀 더 나은 길을 걷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겨본다.
 

덧붙이는 글 | 부동산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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