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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온한 아침
 평온한 아침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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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온 지도 어언 4년이 되어갑니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는 셰어하우스에서 살았어요. 보통은 '검트리'라고 불리는 호주 웹페이지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한국인 셰어하우스를 원할 때는 '호주나라'로 불리는 사이트를 통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먼저 호주에 있던 친구의 추천으로 노스스트라스필드라는 스트라스필드 한인 타운 옆에서 처음 셰어생활을 시작했어요. 

셰어하우스는 대략 사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이때 저는 처음 2인실 셰어하우스로 들어가 한 주에 130불을 주고 살았습니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만 살아 이런 공동체 생활, 셰어생활을 해본 적이 거의 없어 주변에서 서울의 어느 지역에 원룸 구해서 살려면 몇십만 원은 줘야 한다더라 등의 정보만 얼핏 들은 게 다였습니다. 

막막했지만... 생각이 단순해졌어요

이렇게 해외에 처음 나와보니, 어떤 집에 따라서 자금을 모으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됐습니다. 130불은 저렴한 편에 속하는데, 사실 이마저도 한국 돈으로 환산해 보면 50만 원은 되는 금액이라 처음엔 이걸 내가 스스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참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을 시작하고 나니 왜 주급으로 방값을 내는지도 알게 되더라고요. 이곳은 1주에 한 번씩 혹은 2주에 한 번씩 급여가 지급되는 곳이 많고, 어느 곳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시급이 적게는 14불에서 수당이 붙으면 30불 가까이도 벌 수 있었습니다. 호주 회사에서 일할 경우,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시급도 배로 올라가서 다 인정받으면 130불이라는 돈이 50만 원처럼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계산하면 한 주에 최소 10시간만 일해도 사는 데 문제는 없었어요. 10시간만 일해도 우선 먹고, 사는 생활이 가능해진다니 이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가요. 

이렇게 생각이 단순해진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한국에서의 부수적인 관계, 자기계발, 문화생활 등에서 벗어나 나 자신 하나에 더 초점을 맞춰서 살아야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고, 더 비용을 내면 나은 지역, 나은 주거 환경에서 살 수 있지만, 지내다 보니 어떤 환경이 나를 편하게 해주고 어떤 곳이면 만족하겠다 싶은 기준들이 내 안에서 생겨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또 우선 쉬면서 내가 원하는 걸 알아가고자 시작하게 된 호주 생활이었기에 이런 마음가짐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래, 1년 정도만 이렇게 잘 한번 지내보자.' 그리고 결혼까지 하게 됐고 지금은 셰어생활이 아닌 주택 같은 곳을 빌려서 살게 됐습니다. 

한국에 살았다면 집을 사거나 전세로도 살 텐데, 여기서는 '너는 얼마에 어떻게 살고 있니', '신혼집은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거야' 같은 질문을 자주 받을 일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둘이 살 곳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해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단칸방에서 어렵게 시작했어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겠다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질문을 안 하다 보니 내가 갖고 있고, 살 수 있는 형편에 맞게 살게 됐던 것 같아요. 다른 시각에서 보면 집도 없고, 좋은 지역도 아니고 엄청 좋은 집에서 사는 것도 아니에요. 신혼생활의 로망은 없다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근데 로망이 처음부터 현실이 되면 좋기만 할까요? 여기도 집값이 비싼 건 마찬가지예요. 특히 역세권인 곳은 비용이 만만찮기 때문에 적당히 외곽 지역이면서 일하는 곳과도 멀지 않은 곳으로 오게 됐습니다. 
 
 이렇게 살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렇게 살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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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생각이 이렇게까지 미치게 되었을까요? 이렇게 생활하는 게 결코 불행하기만 할까요? 왜 사서 남의 나라 가서 고생하고 있을까요? 큰 집에서 사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고, 자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고, 좋아하는 고양이들을 키우며 사는 현실은 엄청난 발전입니다.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합니다. 아파트보다는 단독으로 된 집 형태가 많습니다. 자신이 처음 마련한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그 공간을 리모델링해 페인트를 칠한다든지 정원을 가꿔 나의 공간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기본적으로 20~30년은 집을 고치고 살면서 자식들 결혼시키고 출가시킬 때까지 쭉 한 집에서 사는 호주 사람도 보았습니다. 집을 사기 위해 20~30년 모기지 대출을 받고 내 집 마련에 성공하기도 하고, 빚을 갚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싫어 마음 편하게 세를 내고 사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월세나 전세라는 집 구조에 대해서도 생각이 좀 유연해지게 됐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어떨까요? 

여기 사는 4년여 동안 중간중간 이사도 다니다 보니 점점 짐도 줄이게 되고, 본의 아니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게 됐습니다. 내가 가진 현실에 더 집중하며 감사하게 됐습니다. 가지고 있지 않은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조금씩 바꾸고 개선해가려는 태도, 호주 사람들처럼 큰 집에 살며 정원을 가꾸지는 못해도 거주할 곳이 있으며 최선을 다해 그 안에서 편의를 최대화하는 삶.
 
 햇살이 들어오는 아침 7시
 햇살이 들어오는 아침 7시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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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족들을 생각하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여기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가면 집을 전세로 구하거나 언젠가는 사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아둔 돈도 없이 당장 일을 바로 시작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 상황에서 초기 자본은 어떻게 감당하고 돌아가서 살아갈 수 있을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망설이게 됩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잘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를 위한 공간이 먼저인지? 거리가 먼저인지? 비싸도 편한 지역에 살고 싶은지?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인지? 지금 저는 주방에서 만들고 싶은 요리도 만들고 빵도 구울 수 있어서 그 자체에 기쁩니다. 햇살이 깨워주는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아침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덧붙이는 글 | 부동산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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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 거주하며 호주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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