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귀촌 후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지켜보고 채소들을 키워 먹는 기쁨에 몇 년이 어찌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취해 살았다.
 귀촌 후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지켜보고 채소들을 키워 먹는 기쁨에 몇 년이 어찌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취해 살았다.
ⓒ 송정순

관련사진보기

 
몇 년 전에 귀촌했다. 많은 이들의 꿈이기도 한 귀촌.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꿈을 꾸는 이도 많겠지만 행동으로 옮겨 '정말 잘했다'며 우리처럼 지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운 좋게도 살던 아파트 시세와 지금의 집값이 딱 맞아 이사할 수 있었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을 지켜보고 채소들을 키워 먹는 기쁨에 몇 년이 어찌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취해 살았다. 여명과 저녁노을 속에 하루를 열고 닫으며 자주 뭉클했다. 푸른 새벽 하늘가에 떠 있는 그믐달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가을 풀벌레 소리에 감동하고 개울 따라 한적한 길을 걸으면서 가만히 웃어보는 날들이 많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집안에서 맴도는 생활조차 갑갑하거나 지루한 줄 모르고 평온하게 지내던 나날의 안녕이 최근 깨져버렸다. 부동산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사람들은 술렁였고 내 마음도 덩달아 요동쳤다.

도시의 집값은 급등해서 살던 지역도 천정부지로 올랐다는데 이 지역은 소멸위험 지역에 들었다는 뉴스까지 접했다. 이웃했던 이들은 앉은 자리에서 축재되는 동안 대열에서 튕겨 나온 우리만 도약할 기회를 놓쳤다는 박탈감에 속이 쓰렸다. 한 마디로, 배가 아팠던 거다.

무리해서라도 '똘똘한 한 채'를 마련해놓고 왔어야 했는데...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을 해대면서 거듭 통탄하던 중에 딸이 글을 보내왔다. 우리 집의 가치를 확인시켜준 글.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집. 앞으로도 함께 누릴 우리들의 집. 위로가 되었다. 그래, 이거면 됐다!
 
 "1박 2일 동안 아이들은 물놀이장에서 실컷 놀았고 밭을 오가며 블루베리와 방울토마토를 따 먹었다."
 "1박 2일 동안 아이들은 물놀이장에서 실컷 놀았고 밭을 오가며 블루베리와 방울토마토를 따 먹었다."
ⓒ 송정순

관련사진보기

 
<우리들의 펜션>

"친구들이랑 모여 놀고 싶을 때는 말해. 비워줄게. 펜션처럼 이용해. 우리는 여행가고."

은퇴 후 여주에 터를 잡으신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제오늘, 집을 비워주고 아빠 엄마는 경북 문경의 친구 집으로 떠나셨다. 마당엔 작년에 사놓은 물놀이장을 설치하여 물을 받아놓고, 몇 가지 밑반찬을 마련해 놓으시고는.

1박 2일 동안 아이들은 물놀이장에서 실컷 놀았고 밭을 오가며 블루베리와 방울토마토를 따 먹었다. 벚나무 아래 걸린 해먹에 눕기도 하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다. 뒷동산을 오르고, 닭장에 가서 닭울음 소리를 들으며 계란도 꺼내왔다.

엄마의 로망으로 만들어진 다락방을 오르내렸다.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엄마들인 우리는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은 대가로 줄곧 아이들을 지켜보며 중재하고 끼니를 챙기며, 수다를 떨고 글을 쓰며 고되고도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전에도 내 집처럼 지인들을 초대하곤 했었다. 4년 전,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시험 기간에, 은퇴 후 전원생활을 궁금해하는 학년부 선생님들을 초대했다. 직장 동료인 누군가의 부모 집에 가다니, 모두 신기해하면서도 즐거워했다. 열 명 넘는 일행이 네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와서 고기와 새우를 구워 먹으며 놀다 갔다. 아빠뻘의 부장님은 아빠의 좋은 술친구가 되기도 했던 날이다.

한 번은 결혼을 앞둔 친구와 예비 신랑을 초대했다. 중학교 때부터 절친했던 친구라 엄마와도 친숙했다. 그러니까 친구의 결혼 소식을 누구보다 반겼던 엄마의 초대이기도 했다. 예비 신랑은 예비 장인, 장모를 만나는 심정으로 살짝 긴장하기도 했지만, 같이 밥 먹고 집을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좀 더 가까워졌다. 결혼 이후에도 남편들을 동반해서 종종 만나는데 이때의 이야길 하곤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더없이 좋은 놀이터가 된 친정에서, 작년엔 같이 육아하는 남편 친구들의 식구까지 세 가족이 뭉쳤다. 뜨거운 여름, 물놀이장을 미리 사두고서 아빠한테 설치를 부탁했다. 엄마는 여행 중이었고, 아빠는 우리와 함께 아이들의 물놀이를 지켜보며 고기 굽고 술을 드셨다. 세 가족 모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올해도 물놀이 한 번 하기로 했다.

나의 지인들 뿐 아니라, 사촌 오빠네 가족도 종종 놀러 오고, 동생도 회사 동료의 가족들과 오기도 했다. 이번 주말은 동생의 남편, 제부의 친구들이 예약되어 있다. 물론 아빠와 엄마의 지인들도 가끔 다녀가신다. 머물다 간 사람들은 모두가 좋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빠, 엄마가 첫눈에 반해 덜컥 계약한 집이다.

오래 전, 내가 결혼하기도 전부터 엄마는 늘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손자, 손녀에게 '외가'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다. 나와 여섯 살 터울인 동생은 누리지 못한 시골 생활을 일곱 살까지의 나는 온전히 누렸고, 그 시골의 감성이 내 평생을 좌우하고 있다고 믿는 엄마.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댔나. 5년 전, 아빠의 은퇴에 맞춰 엄마는 소원을 이루었다.

내 또래 대부분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고 결혼해서도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시골은 귀하다. 나의 아빠 엄마 세대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렇기에 내가, 내 아이가 누리는 시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다. 그리고 내 아이 혼자보다, 여럿이 어울릴 때 이 시골이 훨씬 재미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자꾸만 나의 지인들과 더불어 나의 친정, 시골을 공유하고 싶은 거다.

"엄마, 아빠, 오늘도 잘 놀다 왔어요. 고마워요! 또 놀러 갈게요!"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훨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집. 딸이 쓴 글을 통해 위로가 되었다.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집. 딸이 쓴 글을 통해 위로가 되었다.
ⓒ 송정순

관련사진보기

 
여기까지다. 읽고 또 읽었다. 마음을 다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딸의 글. 고맙다. '내 인생의 책'이라 일컫는 <무소유>도 펼쳐 든다. 수없이 읽어 외울 지경인 구구절절 옳은 말씀들. 소유보다는 풍성하게 존재하라던 일침을 떠받든다. 덧없는 일에 덧없는 생각을 쌓고 쌓느라 마음속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버리다니.

망상에 빠져 휘청대는 동안, 마당의 꽃들도 시들하고 짓물러버린 고추들도 수습하지 못하고 집안 곳곳이 잡초들로 뒤덮이고 나무들이나 꽃대들을 스칠 때마다 얼굴, 어깨 등 온몸이 거미줄에 휘감겼다.

정책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심 잡고 온전하게 살아내기가 얼마나 힘든 현실인지. 지난주에 다녀간 친구도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자기들이 정치를 잘못해놓고 보유세만 잔뜩 올려 힘들게 한다고. 없는 사람은 없는 사람대로 막막하고,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재산 지키기 힘드니, 부동산 때문에 죄다 화가 나 있는 듯하다.

터무니없이 뛰는 집값으로 영영 못 사게 될까봐 변두리 지역이라도 분양받았다는 조카. 이삼 년 전 구입해 전세 준 아파트가 최근 2억이나 뛰었다고 자랑하던 지인. 듣다 보면 전국이 투전판으로 변한 것 같다.

어쨌거나 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도록 내 마음 하나 단단히 붙들어 맬 일이다, 라고 쓰는 중에 갑작스런 어린이집 휴원으로 손주를 데리고 우리 집에 오겠다는 딸의 카톡을 받고 또 심란해진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멈추려나. 도대체 멈추기는 하는 걸까.

일단 들판으로 나가보자. 생각이 멈추는 곳, 구름이 한가로이 떠다니는 곳, 개울에 발 담그고 명상하다 문득 생각난 듯 홀연히 날아가는 왜가리를 볼 수 있는 곳. 목청껏 소리쳐 노래 불러도 '저 여자가 맛이 갔나?' 하며 흘겨볼 사람조차 없이 고요한 곳. 그 길을 매일 걷는다. 반복해서 부르는 나의 노래는, '버려라 훨훨~ 벗어라 훨훨~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훨~~~'

덧붙이는 글 | 부동산 때문에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