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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올해 창간 20주년을 맞아 '나의 스무살' 기사 공모를 진행합니다. 청춘이라지만 마냥 빛날 수는 없었던, 희망과 좌절이 뒤섞인 여러분의 스무살 이야기를 기다립니다.[편집자말]
"다녀오리다."
"조심히 다녀요. 그리고..."
"알았어요, 술 적당히 마시리라."
    

아내의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나는 미리 대답하고는 현관을 나섰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내의 표정이 이내 웃음으로 바뀌었다. 
        
밖으로 나오니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나는 큰 걸음으로 아파트를 벗어나 전철역으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어깨에 멘 배낭의 무게감이 전해져왔지만 그래도 좋았다. 운 좋게 자리에 앉은 후에야 한숨 돌린 나는 천안역까지 한 시간 반 정도 느긋한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반면 휴대폰 밴드에서는 친구들 목소리가 툭툭 튀어 오른다. 자신을 알리고 서로를 확인하느라 바빴다.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여행
 
 40년지기 친구들과 여행을 하다.
 40년지기 친구들과 여행을 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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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동창회나 사은회를 통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만남을 이어온 게 전부였다. 한창 일을 할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만남이 생활의 곁가지 정도였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우린 서로를 궁금해했다. 뒤를 돌아보게 되면서부터는 보고 싶은 얼굴이 늘어갔다. 자식들이 출가할 무렵부터 마음이 맞거나 시간이 되는 친구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낚시나 등산을 함께 하는 등 소소한 모임을 했다. 즉 곁가지에서 삶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거기에 일조를 한 것이 '네이버 밴드'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알람은 모임 일정부터 각자의 안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르느라 분주했다. '남자들 수다가 더 심하다'는 아내의 말처럼.
  
지난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재용이로부터 초대장이 날아왔다. 천안의 한 학술원에 내려가 지내던 재용이는 이틀 동안 자신과 함께 지내며 토종닭으로 원기도 회복하고 천안 구경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모인 열 명의 친구들이 오늘 천안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천안은 여행하기보다는 출장이나 여행 갈 때 잠시 들르는 곳이었다. 이번 기회에 머리로만 알고 있던 곳을 직접 가보리라는 치기 어린 결심을 했다. 특히 이번만큼은 누구의 남편이나 누구의 아빠에서 벗어나 내 모습 그대로를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천안역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재용이와 미리 도착한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들을 여행길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웠다. 우리들은 마치 대학 시절 MT 때처럼 장도 보고, 길을 걸으며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학술원의 첫인상은 조용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학술원을 둘러본 후 정자에 올라 자리를 잡고 둘러앉아 재용이가 준비해 놓은 음식을 먹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술잔을 주고받았다. 흥이 많은 천기를 시작으로 노래도 한 가락씩 뽑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세상을 안주 삼아 느긋함을 즐겼다.
      
기성세대를 비난하던 나, 기성세대로 살아가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이미 짜인 세상의 틀에 맞춰가는 삶이 전부였던 그때와 40여 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지금, 60이라는 숫자는 만족감보다 속절없음을 더 와 닿게 했다. 아마 삶의 덧없음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만큼은 정해진 길을 갈 거로 생각했어. 교지에 네 글이 실릴 때마다 선생님도, 우리도 깜짝 놀라곤 했었잖아. 너는 좀 특별했어. 나이에 맞지 않는 사고로 써 내려간 글은 지금 읽어봐도 와 닿거든. 언젠가 작가로 나타날 거라 믿었는데 왜 글을 쓰지 않은 거야? 능력 아깝게."
"능력은 무슨."
"먹고 사는 게 우선인 시대 아니었냐. 지금이라도 써 보는 게 어때? 시간도 많은데. 오히려 그동안 경험이 쌓여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야. 이제는 첫 문장을 쓰는 것부터 겁이 나... 한 잔하자."
 
 
 학생들이 집회를 마치고 거리로 나가려고 하자, 학교 내에 들어온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 (1987.5.28)
 학생들이 집회를 마치고 거리로 나가려고 하자, 학교 내에 들어온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있다. (1987.5.28)
ⓒ 고명진/한국방송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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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말에 머쓱해진 나는 술로 분위기를 바꿨다. 40여 년 전의 나는 모든 게 거침없었다.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마음을 통제하던 교복을 벗고, 낭만을 우선으로 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열정과 무한한 용기로 누가 덤벼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험 때가 되면 도서관에서 밤을 새워 공부하고, 학점 관리를 위해 교수님 주변을 맴돌았다. 생각이 다른 친구와 한 잔 술을 기울이며 밤샘 토론을 하기도 했다.

미팅에도 주선자로, 참가자로 열 일 제쳐두고 참석했다. 방학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스무 살의 나는 빛이 났다.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해낼 수 있는 '젊음'은 나를 살아있게 했다.
   
그러다가 책 대신 은밀하게 전해진 유인물을 손에 쥐고 독재 타도를 외치며 학교 밖으로 전진했다. 알싸한 최루탄 연기에 온몸 구석구석 울분을 채우며 우리의 힘으로 바뀔 내일을 꿈꾸었다. 더 나은 세상보다 자신들의 안위가 우선인 기성세대들을 비난할수록 행동은 더 과감해졌다. 

거침없었던 젊음은 어머니의 입원 소식과 함께 한풀 꺾였다. 혼자 힘으로 자식들을 키우며 살아온 그의 강인함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숨을 고르게 됐다. 어머니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셨을 때는 취업 준비로 살길이 급급해졌다. 그래도 당당했다. 지금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내리라는 무한한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세월이 흐르면서 빛나던 젊음은 조금씩 빛이 옅어졌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내가 해야 할 일로 폭이 좁아졌다. 그마저도 언젠가부터는 해내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어느새 나는 내가 그렇게 증오하던 기성세대로 살아내기 바쁜 날을 보내고 있었다.
    
'제2의 삶'을 위해 다시 도전하다
  
시골의 아침은 도시의 아침보다 일찍 시작된다. 깨워주는 이도 없고, 굳이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도 없는데 저절로 몸이 깨어난다.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근처 호수에서 어스름한 새벽을 맞이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너울지는 상념들을 떠올렸다. 책상 한쪽에 자리 잡은 빛바랜 교지를 지금껏 간직하고 있는 것은 그때의 자신을 언젠가는 마주 하고 싶은 바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바람 한 겹이 심연으로 스며들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돌아가니 재용이를 중심으로 역할 분담이 한창이다. 어제 먹고 난 자리를 치우는 것부터 백숙 준비까지.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이게 사람 사는 거지'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늦은 점심이었다. 또 한 겹 바람이 자잘한 웃음으로 가슴을 일렁인다.
 
 비록 지금의 나는 빛나는 젊음도, 무한한 열정과 용기도 지니지 못했지만 감히 말한다. 제2의 삶을 위해 다시 도전하겠노라고. 바람이 분다. 그동안 품고 있었던 펜을 꺼내어본다. 그리고 첫 단어를 써본다.
 비록 지금의 나는 빛나는 젊음도, 무한한 열정과 용기도 지니지 못했지만 감히 말한다. 제2의 삶을 위해 다시 도전하겠노라고. 바람이 분다. 그동안 품고 있었던 펜을 꺼내어본다. 그리고 첫 단어를 써본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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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두 번째 날을 보내고 우리는 현실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방향이 같은 친구들끼리 차를 나누어 타고 다음 만남을 약속했다. 어느새 우리는 예순의 나이로 돌아와 있었다. 예순을 넘기고 보니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많기를 바라는 나이를 절감하게 된다.

비록 지금의 나는 빛나는 젊음도, 무한한 열정과 용기도 지니지 못했지만 감히 말한다. 제2의 삶을 위해 다시 도전하겠노라고. 연륜과 경험으로 또 다른 내일을 열어가겠노라고.

바람이 분다. 그동안 품고 있었던 펜을 꺼내어본다. 그리고 첫 단어를 써본다. '바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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