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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8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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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내년 총선 전까지 북미정상회담을 피해달라'고 미국 측에 언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27일 YTN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월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을 때와, 이번 11월 나경원 원내대표가 미국에 가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등을 만났을 때 그런 일이 있었다.

YTN 보도에 대해 나경원 원내대표는 '볼턴 방한 때 그런 우려를 전달한 적이 있으며, 요청을 한 게 아니라 우려를 표명했다'고 해명했다. 비건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대신, 볼턴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한 것이다.

그렇게 말한 이유에 관해 그는 "2018년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열린 1차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 뒤 "이번 3차 미북회담마저 또다시 총선 직전에 열릴 경우 대한민국 안보를 크게 위협할 뿐 아니라 정상회담의 취지마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갖는 취지가 한국 총선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는 언급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김정은과 트럼프 둘 다 한국을 그다지 비중 있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총선 전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한국 안보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언급도 수긍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말이다.

한반도 평화는 온 국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바다. 기업들한테도 그렇고 투자자들한테도 그렇다. 남북 정상이든 북미 정상이든, 자주 만나야만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고 경제적 번영을 기약할 수 있다. 제2당 원내대표가 한반도 평화를 저해하는 그 같은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번 일에서 드러나듯이, 나경원 원내대표와 한국당은 '바람의 정치', '풍의 정치'에 아직 얽매여 있다. 한국당 선배들의 구태의연한 '북풍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유권자인 국민들에 대해 전근대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풍 정치의 역사

북풍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제15대 총선이 있었던 1996년이다. 4·11 총선 직전에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벌인 이상한 행동을 계기로 보수여당인 신한국당이 사상 최초로 서울에서 승리하고 1당 지위를 지켰다. 이 일은 국민들이 보수정당의 선거전략과 북한 변수의 연관성에 주목하도록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15대 총선 때 신한국당이 얻은 의석은 139석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 당명으로 나선 14대 총선 때의 149석보다 10석 적다.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민자당에서 갈라져 나간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 50석을 획득했다. 그래서 전체 299석 중에서 두 보수정당의 의석이 합계 189석이었다. 보수의 압승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총선 전에는 신한국당의 참패가 예상됐었다. 전년도인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패배한 데다가 15대 총선 직전인 1996년 3월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비리가 폭로됐기 때문이다. 김영삼의 집사로 불리던 장학로가 17개 기업으로부터 27억 6천만 원(수사결과 발표 당시 기준)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김영삼 정권이 위기에 빠지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총선 1주일 전인 그해 4월 4일부터 판문점에서 뜻밖의 일들이 벌어졌다.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이 '정전협정에 근거한 군사분계선 및 비무장지대에 관한 임무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일이 있었다. 비무장지대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식의 암시를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3일간 중무장한 군인들이 공동경비구역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훈련을 하다가 북쪽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이것이 신한국당과 일부 언론을 통해 '판문점 무력시위'라는 식으로 과장되게 전달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여타 선거 쟁점들이 희석되면서 신한국당의 총선 선전이 가능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신한국당을 도와준 셈이 되는 이 사건을 언론은 북풍으로 규정했다.

당시 정부는 부인했지만, 국민들은 김영삼 정부가 북한한테 뭔가를 제공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었다. 북한의 돌발 행동 직전에 진로그룹 관계자가 비밀 방북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런 의혹에 한층 더 힘이 실렸다.

1997년 대선 직전에는 더한 일도 있었다. 김영삼 청와대와 한나라당(1997.11.21 개칭) 측이 베이징에서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박충 참사를 만나 노골적으로 '무력 시위'를 주문하는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이른바 '총풍'으로 보다 더 많이 불린다.

이처럼 북풍은 김영삼 정권 때부터 주목을 끌었지만, 김영삼 때 처음 구사된 것은 아니다. 보수정당의 선거 전략에서 북한 변수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높아진 것은 제13대 대선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범인인 김현희가 13대 대선 하루 전인 12월 15일 입국한 배경을 두고 민주정의당(민정당)의 선거 전략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선거 전에 유권자들의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는 일은 1992년 제14대 대선 때도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가 그해 10월 6일 '이선실 간첩 사건' 혹은 '남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됐다.

북풍에 보수정당이 예민한 이유

이처럼 북풍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96년이지만, 보수여당의 선거전략에서 그 비중이 높아진 것은 1987년 6월항쟁 이후였다. 물론 그 전에도 보수여당은 북한 변수를 정치에 이용했지만, 1987년 6월항쟁 이후의 13대 대선 때부터는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이 같은 북풍 전략은 선거 직전에 북으로부터 바람을 유입해 유권자들의 의식을 바꾸는 전략이었다. 이를 다소 색다르게 변용한 전략이 김영삼 정부 때 선보였다. 1995년 6월 27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영삼 정부가 대북 쌀 지원을 갑자기 결행한 것은, 북한 변수를 선거에 이용하되 종전과 달리 화해 국면을 연출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이었다.

1987년 대선과 1992년 대선 때는 북에서 냉풍을 끌어들인 데 비해, 1995년 지방선거 때는 온풍을 끌어들이려 한 셈이다. 하지만 이 전략은 실패했다. 신한국당의 선거 패배가 그것을 보여준다.

이는 유권자들이 남북화해를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레 벌어진 신한국당의 변화를 유권자들이 냉소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풍을 유입하는 전략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뒤, 1997년 대선 때 다시 냉풍 유입 쪽으로 선회했지만 그 역시 실패했다.

평화적 정권 교체가 있은 1997년 이후로 보수정당은 민주당 정권의 대북관계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민주당 정권도 북한 변수를 선거에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2000년 제16대 총선 사흘 전인 4월 10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를 놓고 보수정당이 신북풍을 운운한 사실이나,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6·13 지방선거 전날 개최되고 올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한국당 대표경선 당일에 개최된 것을 두고 홍준표 전 대표가 음모론을 제기한 사실 등은 보수정당의 그 같은 우려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같은 정서가 이번에 나경원 원내대표한테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총선 때 북에서 온풍이 유입될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미국에 정상회담 자제를 요청하는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다. 자신들이 시작한 북풍에 대해 보수정당이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이다.

북풍이 선거전략에 본격 활용된 게 1987년 13대 대선 때부터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13대 대선은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에게 굴복한 6월항쟁 반년 뒤에 치러졌다. 그 전까지 보수정당은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무기로 위압적인 분위기로 국민을 억눌렀다. 그런 방식이 6월항쟁 이후에는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됐다. 종전 방식으로는 선거 승리를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의 선거 전략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도 하지 않던 정책 선거를 시도할 수는 없었다. 과거에 묶여 있는 그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책을 내놓는 것은 어색할 뿐만 아니라, 그나마 갖고 있던 보수층 지지마저 약화시킬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보수층 유권자들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중도파 유권자들에게 냉풍을 끼얹어 공포심을 주는 것뿐이었다. 

냉풍을 끌어오는 것이든 온풍을 차단하는 것이든, 그들이 구태의연한 사고의 노예임을 보여준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그들이 국민들을 여전히 우민(愚民)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도 차이가 없다. 그들이 시도하는 '바람의 정치'는 '습한 냄새 나는 바람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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