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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살 때 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용을 염두에 두고 사지, 표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서재는 복잡한데 필요하지 않은 책을 표지가 예쁘다고 사지 않는다. 반대로 꼭 필요한 책은 표지가 1950년대 국정 교과서와 비슷해도 산다.

표지가 예쁘냐 아니냐는 책을 사고 나서야 하는 생각이다. 표지 디자인이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표지 디자인을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이 없을까?

그건 아니다. 그 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예쁘고 눈에 띄는 표지는 고객들이 한 번이라도 눈길을 주지만 아예 독자들의 '접근성'을 원천 차단하는 표지도 있다. 예쁜 표지는 출판사에서 이 책을 신경을 많이 써서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좋아하는 책이 표지가 예쁘면 금상첨화인 것은 당연하다.

표지만 보고 책을 사는 독자들은 많지 않다. 다만 독자가 그 책을 살지 말지를 고려하는 기회는 더 자주 얻는다. 결국, 표지 디자인은 '은근히' 책 구매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어느 날 오후에 표지는 독서 생활에 있어서 '마이너'한 분야라고 생각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실 소파에서 아내는 좋아하는 '국카스텐' 노래에 심취해 있었고 나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을 쓴 '미카미 엔'과 서재가 무너질 정도로 책을 많이 소장하는 '구라타 히데유키'가 쓴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를 읽고 있었다. 좀 더 집중해서 읽으려고 책을 들고 서재에 들어가려는 찰라. 아내가 "앗, 잠깐만" 하고 나를 불러 세웠다. 바로 책 제목을 물었다. 제목을 알려주었더니 금방 실망한다.

아마도 표지를 보고 본인에게 재미있을 것(내가 보기엔 그다지 예쁜 표지는 아니다) 같았던 모양이다. 서재로 들어오면서 '잘 만든 표지는 이런 효과가 있구나' 감탄했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독자들이 한번이라도 눈길을 준다면 출판사에서 표지를 예쁘고 눈에 띄게 디자인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고 욕심을 부려서 리뷰 랍시고 스포일러를 표지에 하면 독자들이 가장 혐오하니까 유념해야 한다.

추리소설인데 표지에 범인 그림을 그려놓은 예도 있다. 반전 소설이면서 '역사상 최고의 반전'이라고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을 살 때 표지를 신경을 쓰지 않는 나도 절대로 사지 않는 책의 표지가 영화 포스트인 경우다. 굳이 표지를 생각한다면 앞표지나 뒤표지 보다는 책등의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책등이 예쁘다고 무작정 사는 것은 아니다.

독자들은 책 표지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것은 주로 읽을 때 뿐이다. 우리가 사는 대부분 책은 책등이 보이는 채로 보관되고 책 주인은 책등을 주로 본다. 책을 읽은 시간은 잠깐이고 책을 보관하는 시간은 길다. 서재에 있다 보면 본의 아니게 책등 디자인을 눈여겨보게 된다.

책등 디자인이 가장 수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단연 <열린책들 문학 전집>이다. 관리의 삼성이라면 디자인의 열린책들이다. 물론 열린책들이 내는 단행본도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표지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나도 오직 표지가 예뻐서 안 사고는 못 배길 정도다. <열린책들 문학전집>은 대체로 화사하고 수채화 같은 느낌이 난다.

<열린책들 문학전집>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등 디자인은 <을유문화사>다. 장정판인 데다 책등이 고급스럽다. 마치 원목으로 책등을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이다. 눈에 띄는 것보다는 중후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제격이다.

민음사 문학 전집
 민음사 문학 전집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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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문학 전집>은 앞표지보다 책등 디자인이 더 보기 좋은 유일한 사례다. 너무 요란하지도 점잖지도 않아서 모든 세대를 가리지 않고 좋아할 만하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번역을 했다고 하는데 책등 디자인이야말로 새로운 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고 본다.

한길사에서 나오는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의 책등은 깔끔하고 정갈하다. 디자인이랄 것도 없이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글자만 인쇄되어 있어서 다소 심심하다고 생각은 되겠지만 두고 볼수록 눈에 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책등은 친근감이 넘친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만화로 만들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인데 책등을 보면 화사한 원색이 주를 이룬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마치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 같은 화사한 책 등 디자인은 이 책을 소장하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자주 펼쳐보고 싶게 만드는 책 등이다.


[휴머니스트] [2015년최신개정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완간 세트 (전20권)

, 휴머니스트(2015)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 전104권 세트

민음사 편집부 엮음, 민음사(2004)


한길그레이트북스 세트 - 전100권

한길사 편집부 엮음, 한길사(2008)


태그:#표지, #책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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