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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끝자락에서 김하나 작가가 쓴 <말하기를 말하기>를 읽었다. 연휴가 시작되자 편집자가 혼신의 마무리를 해서 넘겨준 초고 교정지를 제일 먼저 만졌고, 이은혜 편집자가 쓴 <읽는 직업>을 읽고 나서, 미시마 유키오의 <봄눈>을 공을 들여서 읽었다. 

급하게 해야 할 일을 하고, 빨리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나서야 <말하기를 말하기>를 펼친 셈이다. 사반세기를 말하는 직업으로 살다 보니 '말하기'가 지겨워졌고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는 글이 더 재미나며, 말보다는 행동을 더 신뢰하는 습관이 쌓여간다.

학교라는 좁은 사회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김하나 작가가 거쳐온 카피라이터나 팟캐스트 진행자라는 직업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매력적인 일을 하는 이분은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우선 김하나 작가가 어린 시절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광고를 만들고 대중들이 읽을 책을 쓰고 강연을 하는 분은 외향적인 성격을 타고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자기 목소리 내는 것을 무서워 한 사람이 말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니 신기한 반전이다.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글은 모름지기 이렇게 써야 한다. 독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실로 독자들에게 선빵을 날려야 한다.

'걷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에 감탄을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나 중요한 기술인가. 걷는 방법에 따라서 그 사람의 감정이나 건강상태가 한눈에 보인다. 걷기는 인간의 처음이자 마지막 운동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인상은 걷는 방법에서 기인하지 않나. 어떻게 걷는지를 보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 것 같다. 걷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교는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바르게 걷는 학생이 바르지 않는 삶을 살기 어려운 것 같다. 

자전거 타기와 말하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에도 동의한다. 학교에서 자전거 타기를 배운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교사는 학생들에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훈계하지만 정작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과정은 없다. 교무실에서 말을 못되고 버릇없이 하는 학생을 뒷담화 하지만 학교는 '말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시험을 잘 치는 방법이 아니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실제로 부딪치는 문제와 익히면 인생이 더 행복해지는 실생활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이 책의 부록에는 김하나 작가가 직접 그린 마인드맵이 실려 있는데 사실은 본문에서 마인드맵을 이야기하길래 궁금했던 차였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형 인간과 존재형 인간을 구분한다. 강연하는 상황을 예로 들자면, 소유형 인간은 발표할 내용을 그대로 원고로 만들었다가 읽기만 하는 사람이다. 원고를 소유하려 드는 사람들이다. 

김하나 작가는 말하자면 존재형 인간인데 강연을 할 내용을 원고보다는 머리속으로 그린다. 키워드 중심으로 이미지를 그리고 강연할 주제와 관련된 배경자료도 중요하게 여긴다. 강연을 마치고 나면 자기 성찰을 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창의력을 키운다. 
 
표지 <말하기를 말하기> 표지
▲ 표지 <말하기를 말하기> 표지
ⓒ 콜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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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형 인간은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강연이 조금만 틀어져도 횡설수설하게 되고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한다. 물론 준비한 원고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청중들은 아무런 감동이나 공감을 얻지 못한다. 

김하나 선생 같은 존재형 강사는 키워드 중심으로 큰 틀을 생각하기 때문에 지엽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매끈하고 공감을 주는 강연을 한다. 마인드 맵을 그리기 귀찮다면 키워드 중심의 짧은 메모만으로도 좋은 강연은 가능하다. 폭 넓게 자료를 준비하고 읽고 나서 키워드를 써보면 실제 강연장에서는 키워드만 보아도 이야기는 술술 풀린다. 물론 천재가 아닌 이상 한두 마디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지만 대세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쪼란 무엇인가'라는 꼭지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성우 교육과정에서 들은 말이라는데, '쪼'는 명령조, 부탁조에 쓰이는 '조'를 말한다. 나아가 아나운서조, 뉴스 앵커조, 영업사원조도 존재하는데 나로 말하자면 '선생조'에 해당되겠다. 그러고보니 강연을 할 때 청중들을 마치 학생처럼 여기고 말끝마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있었던 것 같다. 내 강연을 들은 청중들이 불쾌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얼굴이 화끈 그린다. 

말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는 말에 무릎을 쳤다. 눈치가 발달된 우리나라는 눈치 빠른 사람이 많지만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 눈치가 틀린 경우가 더 많았다. 다른 사람의 속을 눈치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매우 확률이 낮은 게임이다. 오해와 문제가 생길 수 밖에없다. 

나는 글을 쓸 때 항상 내가 생각하고 그리고 있는 상황을 독자들이 궁금증이나 오해를 가지지 않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기 위해서 노력한다. 가령 시장에서 몹시 재미있고 황당한 장면을 보았다면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내가 본 장면과 똑같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 애쓴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황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독자나 청중들은 되묻기 마련이다. 내가 분주하고 시끄러운 시장에서 본 웃긴 사건을 글이나 말로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걸 해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글이자 강연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의 이해는 글 쓰는 사람의 책임이다.

'설득은 매혹을 이기지 못한다'. <말하기를 말하기>에서 여운을 남긴 구절이었다. 영어교사로서 나는 왜 영어를 공부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잘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 영어를 잘하면 인생이 얼마나 더 즐거워지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강연자로서 나는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지 잔소리만 해댔지 고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재미난 것인지 충분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만 읽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하는 책이 있다. <말하기를 말하기>가 그런 책이다. 

말하기를 말하기 - 제대로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김하나 (지은이), 콜라주(2020)


태그:#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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