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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길 벽화에 아이들이 써놓은 재치있는 낙서.
▲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마을길 벽화에 아이들이 써놓은 재치있는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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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아이, 농촌 아이가 함께 다니는 송화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방과후공부방으로 가면서 지나다니는 마을길. 지난 여름 춘천교대생들과 같이 벽화도 그려넣었다.
▲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도시 아이, 농촌 아이가 함께 다니는 송화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방과후공부방으로 가면서 지나다니는 마을길. 지난 여름 춘천교대생들과 같이 벽화도 그려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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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점점 시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강원 춘천시 사북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면소재지에선 다소 떨어진 고탄마을에는 '별빛산골교육센터'가 있다. 별빛산골교육센터는, 갈수록 아이들 수가 줄어드는 농촌마을과, 도시에서 교육적 한계를 느낀 아이들과 부모들을 연결시켜주는 다리 같은 곳이다.

도시 아이들이 일정 기간 부모 곁을 떠나 이 마을 작은 학교로 전학 와서 새로운 배움과 만남을 경험하는 산골유학센터, 그리고 그렇게 찾아온 아이들과 지역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지내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키워가는 방과후공부방을 운영한다.

마을 아이들에게 '산골샘'이라 불리는 별빛산골교육센터 윤요왕 대표는, 2003년 여기로 귀농을 했다. 집 짓고 농사지으며 지내다가, 초등학생 한 아이가 하교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일을 계기로, 자신이 인권운동을 해온 사람으로서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들었고, 마을 부모들과 아이들을 같이 키우자는 마음을 모으게 됐다.

방과후나 돌봄교실이 없던 당시 겨울과 여름방학 한 달 동안 학교 교실을 빌리고, 부모들은 도시락을 싸주고 회비 2만 원씩 내서, 방학교실을 열었다. 그러자 학기 중에도 매일 하면 좋겠다는 반응에, 마을회관 2층을 빌려서 공부방을 시작했고, 지역아동센터로 등록해서 안정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을 아이들이 점점 줄고 있었다. 지역에 있는 송화초등학교는 2007년 학생 수가 15명으로 3복식 학급(1~2학년 한 반, 3~4학년 한 반, 5~6학년 한 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윤 대표가 마을 이장이 되어서 보니, 아이들은 점점 시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학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교육잡지 <민들레>를 통해 산촌유학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초등학생이 1년씩 부모랑 떨어져서 지역의 공교육에 다니면서 시골생활을 한다?' 먼저 방학 캠프를 3년 동안 진행하면서 도시 아이들과 부모들을 만나 가능성을 봤다. 2010년 처음으로 산골유학생 네 명을 받아 두 농가에서 처음 시작했다. 4명, 7명, 15명, 20명…, 해마다 신청 학생이 늘었고, 지금 25명이 한 농가에 두세 명씩 여덟 농가에서 살고 있다.

"한 아이가 목이 다 쉬었더라고요. 왜 그런가 했더니, 여기 와서 말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요즘 학교에서 말 한 마디 안 하고 자기 이름이 한 번도 불리지 못한 채 유리벽 안에서 지내는 학생들도 있어요. 도시 교육 속에서 견뎌내기 어려운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부모들은 생업에 바쁘고, 또 모든 부모가 부모 교육을 받은 게 아니어서 한계가 있어요. 시골에 와서 지내면 학생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으니 스트레스를 덜 받죠."

2010년 산골유학생 네 명을 받아 가능성을 엿보다

춘천 사북면 고탄리에 자리한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춘천 사북면 고탄리에 자리한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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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산골유학은, 별도로 학생들 기숙사를 두지 않고, 센터가 지정한 농가에 들어가 기본적인 숙식을 하는 방식이다. 학생들 입장에서 충분히 마을을 경험하도록 해주려는 뜻이다.

해마다 2월 중순이 되면 그해 유학생이 정해지고, 센터는 학생들이 함께 생활할 또래와 농가를 배치한다. 기본적으로 1년씩이지만, 한 번 온 아이들은 2~3년씩 이어서 지낸다고 한다.

기존에 해오던 농가가 아이들 돌보기에 적절한지 판단하고 새로이 참여할 농가가 있는지 소통하고 조율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 생활 관련한 도시 부모들과의 상담도 센터가 도맡는다. "서로 쓰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농촌유학이 지속가능하려면 '마을'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농촌유학이 자칫 마을과 관계없이 섬처럼 고립될 수도 있으니까요. 먼저 마을이 있으니까, 교육도 할 수 있는 거죠. 다만 아이들이 소외되거나 도구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죠."

고탄마을에 있는 송화초등학교 학생들은 오후 4시 학교가 파하면 전교생 50여 명이 마을길을 따라 걸어서 별빛산골교육센터로 온다. 농촌에서는 학생들 집이 멀리 떨어져 있고, 부모들도 농사로 바쁘기 때문에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산골유학을 온 아이, 지역에 살아가는 아이 가르지 않고 섞여서 자연스럽게 누구나 공부방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다 같이 저녁밥상을 나누고, 7시쯤 각자 집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마을 어린이들이 나무작업을 배우는 마을 목공실
▲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마을 어린이들이 나무작업을 배우는 마을 목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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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목공실에 함께 작업해서 꾸민 마을 도서관
▲ 춘천별빛산골교육센터 마을목공실에 함께 작업해서 꾸민 마을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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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프로그램으로 이것저것 해보다가 저희가 원칙으로 세운 게 있어요. 유럽에는 목공, 제빵, 재봉틀 수업이 교과과정에 들어가 있어요.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가르친다는 교육철학이 녹아 있는 거예요.

영어수학만 가르쳐서 국가경쟁력이 생기지 못하죠. 그래서 학교에서 안 가르치는 걸 우리가 하는 거예요. 텃밭, 목공, 도자기, 바느질, 뜨개질을 배우고 통기타, 댄스, 장구 등 다양한 예체능 동아리 활동도 해요.

그런데 센터를 마을 아이들도 같이 이용하고, 마을 농가에서 숙박하는 것만으로 마을공동체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센터 활동의 또 하나 축으로 마을과 접점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마을어르신들과 점심 나눔이나 경로잔치로 만나기도 하고, '산골마을119'도 해요. 농촌에서는 뭐 하나 고장 나도 출장비가 비싸요. 옛날 마을은 상호부조가 되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죠. 형광등 하나 갈기도 쉽지 않은 어르신들이 연락하시면, 저희가 찾아가서 겨울에 수도관도 녹이고, 가스 안 되거나 전기 나갔을 때 도와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에게 목공실이 있으니까, 경로당에 필요한 책상이나 신발장, 텔레비전 거치대도 만들어서 갖다드렸어요. 냇가 청소도 하고, 마을 옛이야기 복원도 생각하고 있어요."

공동체성이 되살아나는 마을, 참다운 관계와 배움으로 이끄는 교육, 이 두 가지를 경험한 학생들은 이후 배움과 삶의 선택도 달라질 것이다. 졸업과 함께 아쉬운 마음으로 농가와 헤어지고 도시로 돌아갔어도, 중학생이 되어서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방학이면 어김없이 찾아와서 후배들과 섞여 여름캠프에 참여한다고 한다.

센터 교사들은 여기를 거쳐 간 지역 아이들, 도시 아이들에게, 중등 이후 교육을 함께 고민하며, 다양한 배움의 선택지들을 연결해주고자 한다. 별빛산골교육센터는, 도시에 몰려 숨 막히게 돌아가는 획일화된 교육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되고 다른 배움과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통로이다.

덧붙이는 글 |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아름다운마을신문> 제70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마을공동체교육, #온마을학교, #산촌유학, #마을공동체, #아름다운마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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