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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은 생존력이나 증식력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다.
 뱀은 생존력이나 증식력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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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지난해 여러 마리 잡아 없앴다고 했는데..."

두어 해전 시골 생활을 시작한 주부 최씨는 징그러운 뱀이 계속 집 주변에 출몰하는 바람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어린 뱀들이 나타나는 걸 보면 최소한 큰놈 암수 한 마리씩은 있다는 뜻일 거예요."

그는 남편과 뱀의 증식을 막을 만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단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뱀은 생존력이나 증식력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다. 한 예로 환경오염이 많이 된 지역에서는 뱀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최씨 집 근처처럼 뱀이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곳에서, 포획이 꾸준히 이뤄지는데도 불구하고 지속해서 출몰한다면 뱀이 비상수단을 사용한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다름 아닌 '처녀 생식'이다. 처녀 생식을 할 경우 수컷 없이 암컷 한 마리만 살아남아 있어도 자손을 이어갈 수 있다.

상당수 곤충은 말할 것도 없고 뱀이나 도마뱀, 일부 상어와 갑각류들의 경우도 암컷 혼자서 정자 없이, 즉 교미하지 않고 새끼를 낳을 수 있다. 학자들은 왜 일부 생명체들이 암수 교접이라는 수단 외에 추가로 암컷만의 생식 방법을 갖게 됐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절멸 위기에 처하기 쉽거나, 고립된 환경에서 놓이기 쉬운 동물들의 경우 자손이 끊기지 않게 하려고 처녀 생식이라는 방식을 진화상에서 얻은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암수의 교합 없이 처녀 생식만으로 번식한다면 유전자 풀(pool)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전자 풀이 줄어들면, 다양성이 그만큼 떨어지게 되고 해당 생명체는 장기적으로 생존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 처녀 생식을 할 수 있는 대다수의 생명체가 비상 상황에서만 처녀 생식을 할 뿐, 보통은 암수 교미를 선호한다는 점도 이 같은 사실을 반증한다.

포유류 같은 고등동물의 경우 자연상태에서 처녀 생식을 하는 예는 보고된 바 없다. 물론 최근 유전공학 기술 등의 발전으로 이른바 '클론' 세포를 이용해 양이나 소 등을 인공적으로 복제할 수는 있지만, 이는 자연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처녀 생식과는 사뭇 다르다. 단적인 차이로 인공적인 복제는 체세포를 공여한 생명체와 거의 유전적으로 동일한 생명체를 탄생시키지만, 처녀 생식을 할 경우 '엄마'와는 유전적으로 크게 다른 생명체가 태어난다.

사람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면, 남성을 클론 방식으로 인공 복제한다면 남성이, 여성의 체세포로 클론 복제한다면 여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반면 자연적으로 처녀 생식을 하는 생명체들이 낳는 새끼의 성별은 인위적인 클론 복제와는 전혀 딴판이다.

단적인 예로, 인도네시아 등지에 서식하는 왕도마뱀은 잦은 처녀 생식으로 학자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동물인데, 처녀 생식 방식으로 새끼를 낳으면 무조건 수컷만 태어난다. 왕도마뱀은 수컷과 짝짓기를 할 수 없는 위기에 이런 식의 처녀 생식으로 수컷을 낳은 뒤 이들과 다시 교미함으로써 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포유류 같은 고등 동물의 경우 처녀 생식의 사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처녀 생식을 한다 해도 사람의 예처럼 여성(암컷)이 여성만 낳는 식이어서 만일에라도 있을 수 있는 자손의 절멸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처녀 생식이 일부 생명체에 의해서만 선택적으로 이뤄지는 건 '조물주의 뜻'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위클리공감(korea.kr/gonggam)에도 실렸습니다. 위클리공감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행하는 정책주간지 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처녀생식, #뱀,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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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6학년에 진입. 그러나 정신 연령은 여전히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북미에서 승차 유랑인 생활하기도.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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