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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 파소도블레> 저자 최규화, 이현진, 김지현, 이주영 기자(오른쪽부터)
 <난지도 파소도블레> 저자 최규화, 이현진, 김지현, 이주영 기자(오른쪽부터)
ⓒ 한국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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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남이 정해준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면 미각 혼이 비정상이 돼버릴 수도 있다. 가끔은 '슬퍼할 시간도 없는 벌꿀'처럼 달콤한 음식도, 말랑한 푸딩도, 기름진 중국집 음식도 먹어줘야 한다. 전체 음식을 다 먹어줘야 건강한 기운이 온다.

평소 '엄격, 진지, 근엄'할 것만 같은 기자들이 '뉴스'란 틀에서 해방돼 수다를 떨었다. '뉴스'에만 갇힌 글쓰기로 작문 혼이 비정상 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 추측된다. 읽어보니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을 '개드립' 본능을 '그간 어찌 억눌렀을까'란 측은지심이 샘솟았다. 그들도 사람인 것을.

<난지도 파소도블레>의 공저자들은 '노처녀 재판'이 두렵고, 카페에서 재미삼아 본 사주를 은근히 신경 쓰며, 신혼집 구하기 위해 열심히 발품 파는 젊은이들이었다. 단지 직업이 '기자'일 뿐이다.

저자들은 언론사 지망생들에게 책이 별 도움 되지 않으리라 '여는 글'에서 못 박았다. 아마 부푼 가슴을 안고 기자가 쓴 책을 사볼지 모를 후배들이, '속았다'란 생각으로 소비자원에 신고할까 두려웠으리라. 그러나 책에는 진짜배기 조언들이 숨어있다.

물론 매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기자로 살아가며 겪는 취재와 편집 과정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모든 일에는 밝고 어두운 두 면이 있는 법. 이들의 사는 이야기는 '언론학'이나 '기사작성론'에서 배울 수 없는 조언들이다.

'저자 소개에서 기자를 '잉여'로 바꾼다 해도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모자란 것 많은 사회 초년생 네 명이 살아왔고 살아가는 게 내용의 전부다. 말과 글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던 우리는 여기서 수다를 떨기로 했다. 기사의 필수 요소인 육하원칙을 신경 쓰지 않고, 그놈의 뉴스! 뉴스에서 해방되어 자판 두들기는 대로 쓰다 보니 내용도 중구난방이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 여는 글 중에서

보다시피 '중구난방'이란다. 다만 자신들은 육하원칙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게 고질병인지 책에 배어있더라. 안타까웠다. 아, 이 병은 정녕 불치병이었단 말인가.

복어를 앞에 두고 왜 먹질 못하니, 왜!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난지도 파소도블레>
▲ 책표지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난지도 파소도블레>
ⓒ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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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자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참고하며 '개드립'을 쳐야 하는 '맞춤법 강박'에 시달린다고 하니 중증이다. 혹시 지인 중 마음에 안 드는 편집기자가 있거든 메신저로 '괴자번호'. '에어컨 시래기'. '임신공격' 따위의 단어를 보내보자. 효과는 대단하리라.

사실 그냥 웃어넘기면 그만인 일들이다. 물론 나도 '아니 이런 국어 파괴의 현장! 당장 따져야겠군' 하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도 남들처럼 그냥 보고 재밌다고 웃지만 그 다음, 웃고 나서 그냥 '넘어가는 게' 힘들다는 말이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 본문 중에서

위 중증 불치병이 편집기자의 몫이라면, 초보 취재기자의 애환도 묻어난다. 도통 입에 붙지 않는 '선배'란 단어 때문이다.

정치부 기자들은 의원을 비롯한 취재원들에게 넉살 좋게 '선배'라고 부른다. 그러니 70대 국회의원을 20대 기자가 '선배'라고 부르는 상황도 발생한다. <난지도 파소도블레>에 참여한 한 정치부 기자도 처음에 이게 곤혹스러웠단다. 화장실에서 혼자 모노드라마를 찍듯 "선배! 점심 먹어요"를 따로 연습하기도 했다. 그러니 장차 정치부 기자를 꿈꾼다면 유념하도록 하자.

또 정치부 기자의 덕목으로 막강한 주량을 꼽았다. '특종'이 술자리에서 흘러나오기도 하니, 술자리에서도 정신 꽉 잡고 있어야 한다. '취재 정신'은 식사자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복어를 앞에 두고도 먹지 못한 사연이 아련하다. 수저를 쥐어야 할 손이 식탁 밑에서 하나라도 놓칠까 받아 적기 바빠서였다. 마감 맞추느라 식사를 거르는 건 예사다.

'결국 나는 '불편한 밥 먹기'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불편한 식사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길 바란다(고 쓰고 '그래도 편하게 밥 먹으며 일하고 싶다'라고 읽는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 본문 중에서

연예기자는 더 심각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칭찬하면 '개념 기자' 그렇지 않으면 '기레기'가 되고 만다. "나도 너희 편인데 왜 우리 프로를 까느냐"란 황당한 프레임은 덤이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쌍년"이란 쪽지를 받아도 이유를 묻지 못한다.

사회문제부터 풋풋한 러브스토리까지, 훌륭한 '잡탕밥'

한 연예인의 자살 기사에서는, 내용보다 제목에 붙일 '사망' '숨져' '자살'이란 단어를 놓고 고심해야 한다. 대형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에 어떤 단어가 오를지 몰라서다. 기자에겐 웬만한 정상회담 후 채택될 성명에서 사용할 표현을 고르는 문제만큼이나 심각하다. 지금의 이 고민이 조회 수 만 단위를 좌우한다.

책은 이 시대의 청년들이 겪는 '성장통'도 어루만진다. 저자들이 딱 '그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겼을 때의 그 기쁨, 청혼할 때의 그 설렘, 집을 구하기 위한 발품에 스민 고민을 편하게 풀었다. 저자들과 수다를 떠는 느낌이다.

<난지도 파소도블레>의 지면을 빌려 청혼을 한 기자는 '옆지기'에게 한 꼭지를 썼다. 풋풋한 감성이 파도친다. 참고로 이 기자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다니며 자신을 스스로 '대머리 털보 드워프'라고 칭한다.

하지만 역시 글의 힘은 대단하다. 비록 산동네에 신접살림을 차렸지만, 함께 '바닷가 근처 평화로운 집'처럼 살자며 청혼한 글이다. 아, '풋풋'도 하여라.

'여자친구의 표현에 따르면, 나는 그녀에게 '집 같은 사람'이 됐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바다 같은 사람'이 됐다. 때로는 거세게 파도쳐도, 결국은 땅을 어루만지는 그런 사람, 꾸밈없이 솔직하고, 언제나 나를 감싸 안아 주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까. 그리고 우리는 '바닷가 근처 평화로운 집' 같은 풍경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 <난지도 파소도블레> 본문 중에서

이처럼 달콤한 러브스토리도 엿볼 수 있다. 조금 무거울 수 있는 사회문제도 곁들여 있으니 손색없는 '코스요리' 한 권이 탄생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자 자신들은 '고급진 코스요리'란 표현보다 '잡탕밥'이란 단어를 더 선호할지 모르겠다. 책의 소제목처럼 '솔직궁상'에는 B급 어감이 더 착착 입에 감기는 법이니까.

참, 한 가지 덧붙이자면 혹시 <오마이뉴스>에 '맺힌 게 많아' 전화를 할 때는 고민을 좀 하자. "빨갱이"나 "개마이"는 이제 식상하니 뭔가 참신한 단어를 고민해보도록. 책을 쓴 기자 넷 중 셋은 저 단어를 언급하며 너무나 '진부하다'고 평했다. 오죽하면 "빨갱이"가 인사 같고, 자신을 키운 2할은 '전화 폭언'이라고 했겠나. 물론 기사에 대한 생산적 토론은 언제나 환영이란다.

덧붙이는 글 | <난지도 파소도블레> (이현진·최규화·김지현·이주영 지음 / 작은책 펴냄 / 2015.11.01 /1만 3000원)



난지도 파소도블레 -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이현진 외 지음, 작은책(2015)


태그:#난지도 파소도블레, #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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