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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 기자 말

낮과 밤의 옌지역. 조석족 자치구라 모국어를 많이 들을 수 있다.
 낮과 밤의 옌지역. 조석족 자치구라 모국어를 많이 들을 수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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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백두산행을 포기하고 옌지로 가기위해 기차를 알아보니 기차시간이 애매했다. 고민하고 있으니 기사가 인당 50위안(한화 약 9000원)에 목적지 근처 도시인 안투로 데려다 준다는 제안을 한다. 그곳에서 옌지까지 버스로 가깝다고 해 결국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기사는 우리에 대해 궁금증이 많았다. 한국의 트로트나 북한얘기 등을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좀 지겨워져 눈길을 밖으로 돌리니 나무며 땅이 꺼멓게 그을려 있었다. 여기도 한국 못지않게 건조해 날이 건조해 산불이 번졌다고 한다. 그런데 흥이 나 얘기하던 아저씨가 갑자기 조용하다. 미심쩍어 거울을 보니 아저씨의 눈이 허옇게 뒤집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졸음이 아니라 수면운전이었다!

"슈슈! 니쑤이씽바! 카이쳐젼머쑤이지아오너! (아저씨! 일어나요! 운전 중에 졸면 어떡해요!)

그제야 깜짝 놀라며 깼지만 여전히 졸린 기색이 역력했다. 소름이다. 결국 도착할 때까지 감시하며 끊임없이 말을 시켜야했다. 그렇게 필사적인 노력으로 무사히 안투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하지만 버스는 5분 뒤 출발이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때 아저씨가 차에서 내려 뭐라 소리치자 터미널 입구에서 승무원이 손짓을 하며 뛰어 오란다. 중국은 터미널이나 역에 들어가려면 항상 짐 검사를 해야 한다. 상당히 귀찮은 과정이다. 가방을 보이려하자 하자 필요 없다며 매표소로 데려다 준다. 급하게 표를 사니 매표원이 승강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이미 검표원이 승강장 입구에서 이리 오라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 우리는 순식간에 버스에 탑승했다. 사실 그 짧은 시간 안에 표를 사고 버스를 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륙다운 모두의 협력(?)으로 승차하는 기적을 이뤘다. 헉헉 거리며 버스에 앉아서야 웃음이 나온다. 창밖으로 승합차 기사에게 손을 흔들자, 하품을 하며 화답한다.

백두산 별미라는 산천어를 찾아서

처음 보는 순간 한국버스로 착각했다.
 처음 보는 순간 한국버스로 착각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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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에 있는 옌지(연길)는 조선족 자치주다. 하얼빈을 가기 위해 잠시 들른 도시지만, 중국속의 한국이란 말을 많이 들었기에 방문해 보고 싶던 곳이다. 그리고 이 곳을 찾은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백두산에서 자생한다는 물고기 '산천어' 맛을 보고 싶었다. 시간과 장소에 치여 백두산에서 먹지 못한 한을 옌지에서 풀기로 했다. 옌지가 고향인 조선족 친구에게 물어보니 서시장이란 곳에서 판다고 했다.

곧장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서시장으로 향했다. 창밖풍경은 온통 한자와 한글의 혼돈이었다. 중국어가 한글로 직역되어 한 눈에 읽기 힘든 간판이 즐비했다. 사람들의 말투는 억양 때문인지 북한 같기도 했다. 익숙하지만 묘한 이질감. 중국과는 다른 사회주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서시장에 도착하니 김치나 막걸리 같은 한국 음식이 널려 있다. 오랜만에 보는 고향음식에 눈이 이리저리 돌아간다. 먹고 마시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다시 산천어를 찾아 나섰다. 근처를 찬찬히 살폈지만 횟집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발길을 멈춰 상인에게 길을 물었다.

번화한 옌지 시내. 이정표에도 한국어가 써져 있어 중국어를 몰라도 여행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번화한 옌지 시내. 이정표에도 한국어가 써져 있어 중국어를 몰라도 여행하는데 큰 불편이 없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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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원이샤, 짜이날마이셩위피엔?(저기요, 여기 횟집은 어디 있어요)?"

"혹시 한국분이세요? 저도 한국 사람이에요."

놀랍게도 한국말이 돌아왔다. 상인은 한국에서 건너와 옷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곳에선 한국어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다며, 덕분에 중국어가 늘지 않는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가 알려준 곳으로 가니 반갑게도 몇 군데의 횟집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산천어를 파는 곳은 없다. 슬슬 똥고집이 생기며 오기가 솟아났다. 눈에 보이는 슈퍼에 들어가 주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조선족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산천어를 찾고 있다고? 이 근처에 파는 데가 있을 텐데... 그나저나 그 맛도 없는 걸 먹어서 뭐하려고?"

맛이 없다는 말에 움찔했지만, 파는 곳이 있다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그때 어디선가 아주머니 남편이 나서더니 친구가 산천어를 판다며 데려다 준다고 한다. 이미 이성이 반쯤 날아간 터라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차에 오르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모르는 사람 차에 겁도 없이 덥석 타다니. 초등학생도 안 하는 멍청한 짓이었다.

산천어로 받은 상처를 감자탕으로 치유하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뒤섞인 서시장. 중국에서 만나는 색다른 한국이다.
 한국어와 중국어가 뒤섞인 서시장. 중국에서 만나는 색다른 한국이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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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도착한 곳은 시내의 작은 호텔 음식점이었다. 가슴을 쓸며 따라 들어가니 메뉴판을 펼치며 고르란다. 그런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참 눈치를 보다가 일단 주문을 하기로 했다. 2인분 정도를 시키려 하자 아저씨가 능청스레 입을 열었다.

"디엔더쩌머샤오젼머능츠산거런. 짜이디엔바.(그렇게 적게 시켜서 어떻게 세 사람이 먹어? 더 많이 시켜)"

우리는 당황해서 서로 눈만 깜빡거렸다. 데려다 준 아저씨도 대접해야 되는 상황이다. 미안하다 말하고 다시 주문하려 하는데, 갑자기 종업원이 말을 바꾼다. 산천어는 세트메뉴에만 포함되어 먹고 싶지 않은 음식까지 모두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은 무려 400위안(약 7만2000원)에 달했다.

옆에 아저씨는 배가 고프다며 어서 시키라고 재촉한다. 진퇴양난이다. 가난한 유학생들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게다가 식당에선 우리가 외국인임을 안 순간부터 말이 바뀌었다. 얼마의 돈을 더 치러야할지 모르는 상황. 결국 난색을 표하며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어나자 아저씨가 대노한다. 얼굴빛이 어두워지더니 욕설을 한바탕 내뱉고 나가 버린 것.

산천어 대신 먹게 된 감자탕. 중국에서 맛보는 고행 음식은 언제나 정겹다.
 산천어 대신 먹게 된 감자탕. 중국에서 맛보는 고행 음식은 언제나 정겹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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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와 객기가 부른 참상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산천어는 여행사에서 준비하는 특식으로 따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생선이 아니었다. 후회가 밀려온다. 걷다 보니 다시 서시장이다. 우두커니 서로 신세한탄을 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한국인이냐며 말을 걸어온다. 한국인이 많긴 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 사정을 들은 아저씨는 웃으며 자신이 파는 감자탕은 어떠냐며 물었다. 방금 안 좋은 일을 겪어 순간 날이 섰지만, 하루 내내 배를 곯은 터라 속는 셈치고 가보기로 했다. 우려와 다르게, 사장님은 학생이라며 살뜰히 챙겨 주었다. 가격할인에 서비스 인심까지 넉넉했다. 덕분에 지친 옌지에서의 마지막을 뜨끈한 감자탕으로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그제야 불빛으로 물든 옌지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뱃속이 따뜻해지자 이 곳에서의 고생도 추억으로 되새겨진다. 산천어, 그게 뭐라고 이 난리를 떨었담. 가장 한국적인 감자탕으로 몸과 마음이 행복해졌고, 옌지의 야경은 고향 하늘처럼 촉촉이 젖어온다.


태그:#중국, #중국유학, #옌지, #연길, #산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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